파시즘 교육을 받은 나

일타강사

유튜브 방송에서 현재 한국 사회의 혼돈을 진단하고 있는 김누리 교수의 설명을 듣는다. 그는 지금 혼돈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한국의 파시즘 교육을 꼽는다. 나는 그의 설명을 듣기 전에는 파시즘은 1930년~1940년대의 유물이라고만 생각하며, 설마 90여 년이 지난 현재 우리 사회와는 관련이 없으리라 예단한다.

그가 질문한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32년간 한국인의 내면에 새겨놓은 파시즘이 청산됐을까요?” 나는 그의 질문에 말문이 턱 막힌다. 그리고 그는 바로 답한다. “우리는 책 몇 권 읽고 민주주의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바뀌리라고 착각을 한 거예요. 우리는 전혀 바뀌지 않았죠.” 나는 그의 지적에 무언가로 머리를 세차게 두들겨 맞은 것 같다. 그의 답변에 반박할 수 없다. 그는 파시즘 교육의 기준을 제시한다. 경쟁, 경쟁에 따른 우열 및 우열에 의한 지배가 그것이다.


나는 박정희, 전두환 및 노태우의 정권 동안에 초, 중, 고 교육 12년을 받았다. 지금부터 가장 기억이 생생한 고등학교 교육 3년을 회고한다. 1학년 1학기에 대해서는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러다가 1학년 2학기에 입결에 대단히 열정적인 교장 선생님이 부임한다. 그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우리의 대학 입결에 쏟아부었다.

그가 제일 먼저 도입한 제도는 ‘버즈(buzz) 학습’이다. ‘buzz’를 영어 사전에서 검색하면, “윙윙거리는 소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버즈 학습’이란 친구들끼리 서로 설명해 주면서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서로 설명해 주는 상황을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로 표현한 것이다.

즉, 버즈학습이란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 모르는 문제를 즉석에서 물어볼 수 있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에게 설명해 줌으로써, 복습을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공부 방법이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학급을 8 분단으로 나눈다. 그리고 각 분단 별로 8명을 배열하고, 8명의 등수를 매겨 공부를 못하는 학생과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짝꿍으로 배치한다.

이렇게 배치되면, 1 분단 1번에는 반에서 1등이 배치되고, 2 분단 1번에는 2등, 3 분단 1번에는 3등이 차례로 자리 잡는다. 반대로 1 분단 8번에는 반에서 뒤에서 1등이고, 2 분단 8번에는 뒤에서 2등, 3 분단 8번에는 뒤에서 3등이 차례로 배열된다. 이러한 분단 배치표는 선생님 탁자에 놓여 있다. 선생님은 분단 배치표를 보는 순간 학생들의 학급 내 성적 순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교장 선생님의 교육 이론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동의하는 사항은 누군가에서 설명해 주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복습 방법이라는 것뿐이다. 나는 3년 내내 설명하는 훈련을 받은 덕분으로, 대학에 입학해서는 튜터 알바를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교장 선생님은 각 반을 돌면서, “337”을 외친다. 첫 번째 ‘3’은 각 반에서 3명을 서울대에 입학시키는 목표이다. 두 번째 ‘3’은 각 반에서 3명을 고대와 연대에 입학시키는 목표이다. 세 번째 ‘7’은 각 반의 대학 진학률을 70% 이상으로 높이는 목표이다.


교장 선생님은 부임하신 첫 해 겨울방학부터 우등반을 운영한다. 반에서 10명씩 선발하여, 학교 도서관에서 각 자리를 지정한다. 그리고 2달 내내 영어 보충 수업과 수학 보충 수업을 거의 무료 수준으로 제공하고, 그 이후에는 저녁 10시까지 자율 학습이라는 명목으로 타율 학습을 진행한다.

3학년 때는 저녁 12시까지 공부하다가 3명씩 모여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간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모의고사를 치른 주의 일요일 하루만 쉰다. 나는 광주에서 서울로 토끼고 싶은 욕망으로 묵묵히 견딘다. 하지만 나와 같은 욕망이 부족한 친구들은 매우 괴로워하며, 어떻게든 땡땡이를 친다. 월요일마다, 철저한 감독 선생님은 주말에 땡땡이를 친 친구들에게 가혹한 몽둥이 대가를 선물한다.

이렇게 용을 쓰지만, 내 기억으로는 ‘33’은 달성하지 못하고, ‘7’만 달성한다. ‘337’ 목표에 매몰되어, 반에서 6등까지는 상향 지원을 부추기지만, 7등 이하는 하향 지원을 권장한다.


나는 대통령 직접 선거를 쟁취해 낸 610 항쟁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획기적으로 완성될 것으로 예상해 보지만, 나 자신도 1987년 당시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다.

38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에 아직도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증거는 우리 주위에 널려 있다. 직장 상사들과 중국집을 가서 점심 회식을 한다. 그러면서 가장 높은 상사는 “맘껏 먹어”라고 호기롭게 얘기하다가, “나는 짜장면”을 외친다. 이 와중에, 누군가 “저는 잡탕밥이요”라고 주문하면, 그는 엄청난 눈총을 받으며, ‘눈치 없는 놈’이라고 핀잔을 받는다.


고딩 3년을 회고해 보니, 나도 파시즘 교육을 받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교장 선생님이 학교의 리소스를 우등반에 몰아준 덕분으로 서울에 있는 상위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 사회의 지배 엘리트에 진입하지는 못했지만, 나도 한때는 그 지배 엘리트를 동경한 적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지배 엘리트의 권한은 막강하지만, 책임은 미미했기 때문이다.

현재 나에게는 우리 사회의 혼돈을 해결할 솔루션을 제시할 능력은 없다. 나는 비록 파시즘 교육을 받았고 아직도 민주주의의 개념을 완전히 내재화하지 못했지만, 우리의 20대 30대 후배들에게서 희망의 실마리를 본다.


44년 전의 계엄령 트라우마로 인해서 너무 불안한 마음에, 나는 12/7(토) 오후에 여의도 광장으로 나간다. 엄청난 인파로 인해서, 대방역에서 내려서 걷는다. 이미 저 멀리 여의도 광장에서 함성이 들린다. 뜻밖에도 다 같이 부르는 노래는 지드래곤의 ‘삐딱하게’다.

내 대학 시절에 시위 광장에 나가면, 그때의 분위기는 너무 엄근진이었다. 나는 그런 엄숙함이 너무 싫어서,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지금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다. 우리의 후배들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응원봉을 손에 쥐고, 자신의 인생을 건 시위마저도 즐길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서둘러 여의도역을 지나 국회의사당역으로 향한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20대 30대들은 생기발랄하게 자신만의 깃발을 만들어 와서, 흔들고 있다. 내 시선을 바로 사로잡은 글귀가 눈가 띈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민중의 분노를!” 나는 인생 4학년이 돼서야 겨우 한 줄 읽을까 말까 했던 ‘일리아스’를 우리의 20대 30대들은 자유자재로 변주할 수 있다니!

나는 유심히 우리의 20대 30대들을 관조한다. 그들의 손에 들고 있는 응원봉은 단지 빛나는 물건을 흔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그 밤의 어둠 속에서,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빛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그 응원봉은 단지 아이돌을 향한 열정의 상징이 아니다. 그들 삶의 한 조각이다. 그들이 기꺼이 가장 소중한 것을 들고 나왔다는 건, 오늘의 시위가 그만큼 절실하고 진심이었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한국인의 정서로 한을 떠올렸고, 그 한은 한국인의 깊은 내면을 응축한 어둠의 샘물이라 여겼다. 이제 한은 흥이라는 이름으로 그 어둠을 뚫고 솟구쳐 오르는 광명의 불꽃이 되었다. 흥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억눌린 감정의 밑바닥에서 삶을 향한 열정이 끓어 넘칠 때, 몸짓으로, 가락으로, 집단 속에서 한마음으로 피어나는 자발적인 에너지다.

개인의 흥이 광장에 모인 이웃의 장단과 어울릴 때, 그 흥은 집단의 것으로 확장된다. 탈춤, 농악, 굿 그리고 판소리, 이 모두는 흥이 어울림으로 꽃 피운 민중의 예술이며, 슬픔 속에 기쁨을, 고난 속에 해방감을 길어 올린 자발적인 축제이다.

그러므로 흥은 억압의 그늘 속에서 서로의 눈빛을 마주치며 피어난 연대의 웃음이고, 한의 짙은 그림자를 잠시 잊게 해 주는 하늘을 향한 뜀박질이다. 한이 눌러앉은 마음의 무게라면, 흥은 그것을 날려 보내는 함성이며, 무너진 감정을 다시 세우는 한국인의 감정적 자생력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20대 30대들이 광장에서 응원봉을 흔드는 것은 억눌린 감정의 심연에서 솟아오르는 새로운 흥의 형태이자, 현대적 한풀이의 몸짓이다. 과거의 마당놀이가 벼랑 끝 삶에서 공동체가 엮은 위로의 의례였다면, 지금의 응원봉은 우리의 20대 30대들이 각자의 외로움을 손에 쥐고 광장에서 비로소 하나 되어 살아 있음을 외치는 빛의 북소리다.

그들이 흔드는 응원봉은 학업의 중압, 관계의 단절 같은 작고 고단한 한들을 음악과 떼창, 박수와 조명으로 태워 보내는 21세의 흥이라 할 수 있다. 무대를 보는 눈빛 속에는 동경이 아니라 동질감이 있고, 떼창은 구경꾼의 침묵이 아닌 주인공의 선언이며, 응원봉의 물결을 개별적 존재들이 잠시나마 ‘우리는 함께다’라고 외치는 집단적 엑스터시, 즉, 흥의 현대적 재현이라 할 것이다.


감정을 해방시키는 새로운 시대의 광장에서, 어떤 이는 태극기를, 어떤 이는 촛불을, 그리고 우리의 20대 30대들은 응원봉을 들고 있다. 이것은 세대를 구분 짓는 기호가 아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언어를 말하겠다는 몸짓이다. “나도 여기에 있어. 한국 사회를, 미래를 위해서!”라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외침이다.

어쩌면 우리 20대 30대들의 응원봉은 그들에게 민주주의가 먼 추상어가 아니라, 자신이 열렬히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함께 빛나야 하는 무엇이라는 걸 처절히 알려주는 표상이다.


그리하여 응원봉은 단지 무대를 밝히는 도구가 아니라, 광장의 심장을 두드리는 불빛이 되고, 우리의 20대 30대들은 이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한민국 역사의 한 줄을 써 내려가고 있다.

내가 학창 시절에 배웠던, 그래서 그렇게 부러워했던 민주주의의 다양성이 바로 이것이다. 아! 나는 체화하지도 못했던 민주주의를, 우리의 20대 30대들은 자신만의 서사로 완성해 나가고 있다. 김누리 교수에게 외치고 싶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우리의 20대 30대들이 희망적으로 이끌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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