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
타이거즈의 열렬한 팬으로 2024년도 어김없이 한국 시리즈 5차전 경기를 초조하게 지켜본다. 2024년의 프로야구 마감을 알리는 중저음의 차분한 멘트가 TV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다. “광주, 우리 시대 가장 큰 아픔을 야구로 극복한 도시에서 타이거즈는 운명이자 자랑이었습니다. 그런 기아 타이거즈가 7년 만에 프로야구 챔피언에 오릅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1982년부터 대략 2,500회 정도의 야구 경기를 지켜봤고, 그중에서 100 경기 정도를 직관한 것 같다. 1985년 무더운 여름밤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야구장을 찾는다. 무등 경기장에 들어서니, 관중석은 낡고 어두침침하다. 대부분의 관중은 배 나온 아저씨들이다. 경기 시작부터 아저씨들은 거나하게 취한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나와 친구는 살짝 쫄아서 다소곳이 좌측 외야석에 앉는다. 좌측 외야석에 자리를 잡으면서 혹시라도 홈런볼을 주울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타이거즈 중견수 김일권”을 외치며, 한 아저씨가 훈계를 시작한다. 김일권 선수는 꿋꿋하게 잘 참는다. 이닝이 바뀌고 다른 아저씨가 이번에는 청보 핀토스 중견수 ‘김우근’에게 엄청난 욕설을 해댄다. 김우근 선수는 타이거즈에서 청보 핀토스로 트레이드된 선수다. 그 욕설만 들으면 김우근 선수는 프로야구 선수 중에서 가장 나쁜 매국노다. 김우근 선수가 참다못해 관중을 째려본다. 욕을 한 아저씨가 한층 더 소리치며, 컵라면 쓰레기를 던진다.
경기는 4회 말에 송일섭 선수의 만루 홈런 한방으로 이미 승부가 기운다. 유일한 응원 도구는 호루라기뿐이다. 관중은 오로지 호루라기 구령에 맞춰 337 박수를 열심히 친다. 나랑 친구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컵라면을 열심히 밀어 넣는다.
6회 말 즈음이 되니, 흥이 난 아저씨들이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을 구슬프게 열창한다. 이 장면이 너무 생경하다. 타이거즈가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데, 이 아저씨들은 왜 이렇게 서글픈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 걸까?
어릴 적에 어머니랑 이모들이 동네 어르신 회갑 잔치 날이나 결혼식 뒤풀이에서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 것을 자주 들었다. 그때도 목포의 눈물은 다들 구슬프게 불렀다. 그 이후로 ‘목포의 눈물’은 우리 어머니들의 한을 위로하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승리의 분위기에서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이 너무도 구성지게 ‘목포의 눈물’을 제창하고 있는 이 모순적인 순간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대학에 입학하여 서울로 올라온 이후에도 꾸준히 타이거즈 야구 경기를 시청한다. 여유가 생겨 잠실 야구장을 찾으면, 두산과의 경기에는 2/3 이상이 타이거즈 팬이다. 마치 무등 경기장 같다. 경기가 6회나 7회로 접어들어 타이거즈가 이기고 있으면, 어김없이 ‘목포의 눈물’이 들린다.
1997년 이후에는 회사에 다니며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야구장을 자주 찾지 못한다. 그러다가 2000년에 들어서며 다시 야구를 관람하니, 이제는 타이거즈 경기에서 ‘목포의 눈물’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아들이 태어난 후에도, 꾸준히 야구를 본다. 하루는 6살이 된 아들이 묻는다. “왜 아빠는 야구를 직접 하지 않고, TV로 보기만 하세요?” 그래서 아들에게 묻는다. “야구해보고 싶어?” 그러자 아들은 싱긋 웃으며 답한다. “당근이죠.”
아들을 데리고 이마트로 간다. 일단, 유아용 야구공 3개와, 추신수 글러브랑, 류현진 글러브를 산다. 즉시 아파트 놀이터로 가서 캐치볼을 시작한다. 아들은 야구를 처음 해보니, 마구 폭투를 던지며, 빨리 야구공을 주워 오라고 명령한다. 아들은 내가 엉성하게 뛰어가는 것을 보고 까르르 웃는다.
쿠팡에서, 티볼 세트, 알루미늄 배트 및 포수 미트까지 싸지른다. 남들이 보면, 야구 전지훈련 가는 줄 알 정도로 다양하게 야구 장비를 구매한다. 이후에 바닷가로 놀러 갈 때마다 야구 장비 세트를 가지고 간다. 물론 아들의 야구 실력은 항상 제자리다.
아들은 꾸준히 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관련되는 야구 서적도 보며, 궁금한 야구 룰이나 야구 전략을 질문한다. 덩달아 야구 관련 지식이나 전략을 찾아보며, 예전보다 더 다양하게 야구를 알아 간다. 공부한 야구 관련 정보를 아낌없이 아들에게 전수한다. 아들의 야구 실력은 젬병이지만, 현란한 말솜씨로 야구 지식을 질러대니, 아들 친구들은 아들이 야구 감독인 줄 안다.
야구는 미국의 국민 스포츠다. 야구가 지금처럼 미국 전역에서 뿌리내리게 된 것은 남북 전쟁 후에 급속히 도시화가 진행되면서부터다. 미국은 1860년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이민자가 물밀듯이 유입됐고, 시골에서 도시로 자국민들이 이주했다.
이러한 미국 도시에서 야구는 새로운 정착지에 대한 애향심을 고취시키는 매개체였다. 새로운 도시에 정착한 시민들은 민족, 인종, 종교,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누구나 그 도시의 야구팀을 응원하며, 공동체 일원이라는 연대감을 키워갔다. 미국인들은 제1 차 세계 대전 및 제2 차 세계 대전이 진행 중에도 쉬지 않고 프로야구 경기를 진행했던 것을 보면, 미국인들의 야구 사랑이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야구, 축구, 농구 및 배구를 4대 스포츠로 꼽고 있다. 야구를 제외한 3개의 종목은 플레이어가 공을 목표 지점에 도달시키면 득점이 주어지지만, 야구만은 플레이어가 달려서 홈에 도달해야만 득점이 주어진다.
야구를 축구, 농구 및 배구와 곰곰이 비교하면, 야구가 얼마나 독특한지를 알게 된다. 야구는 플레이어 개인들에게는 동등한 기회를 주면서, 각 플레이어들의 능력을 최대한 보장한다. 반면에 축구, 농구 및 배구는 플레이어들에게 동등하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능력이 출중한 소수의 플레이어들에게 기회를 몰아주는 것이 승리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나머지 플레이어들에게는 아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한 명의 스타플레이어에게 모든 기회를 몰아주더라도 승리할 수 있을 정도다.
야구에서도 투수는 한 명만으로 진행할 수 있지만, 타자들은 반드시 1번부터 9번까지 9명으로 구성해야만 한다. 타자들은 1번부터 9번까지 순차적으로 타석을 부여받고, 자신의 타석에서 능력에 따라 1루타, 2루타, 3루타 및 홈런을 칠 수 있다. 타자들은 1루, 2루, 또는 3루에 출루해서 다음 타자의 타격에 따라 다음 베이스를 순차적으로 밟고 달려서 홈에 도달하면 득점이 인정되고, 많은 득점을 올리는 팀이 승리한다.
그런데 안타가 연속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아무리 여러 번 베이스에 출루한다고 하더라도 득점을 올리지 못한다. 반면에 홈런은 한 번에 1루, 2루, 3루 및 홈을 돌며 바로 득점을 올릴 수 있다. 이 얼마나 자본주의적인가? 심지어는 1루, 2루, 또는 3루에 출루한 타자는 다음 베이스를 훔칠 수도 있다. 도루는 득점을 올리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따라서 야구는 중국과 쿠바를 제외한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는 기피의 스포츠 종목이다. 평등을 강조하는 공산주의 국가의 신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중국은 프로야구는 운영하지 않지만,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는 야구 국가대표팀을 출전시키고 있다.
미국 다음으로 야구가 인기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1854년 미국에 의해서 개항된 일본에는 요코하마에 미 해군이 주둔한다. 미 해군들은 요코하마 항구 빈터에 야구장을 그려놓고 야구 경기를 진행했고, 일본인들은 그들을 지켜봤다. 그러다가 1896년 일본에서 최초로 고등학교 야구팀과 미 해군으로 구성된 야구팀이 경기를 치렀고, 일본팀이 완승을 거둔다.
이 승리를 일본 전역에 알리며, 일본 자신들의 능력이 서양과 동일한 수준이라 생각한다. 이 야구 승리에 고취된 일본은 군국주의에 열을 올리고, 엄청난 수준으로 무장한다. 급기야는 러일전쟁에서도 승리한다. 그들은 러일전쟁의 승리에 야구 정신이 큰 몫을 차지했다고까지 자랑한다. 김봉중 교수님은 유튜브 방송에서 “야구 때문에 나라를 잃어버린 셈이다”라고 말한다. 에이 설마.
일본 프로야구의 인기를 2002년 한일 월드컵 기간에 실감한다. 일본 프로야구는 한일 월드컵이 기간인 5/31~6/30 동안 리그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 진행된다. 심지어 월드컵 경기 시간과 겹치는 경우에도 프로야구 경기 시간을 조정하지 않는다. 물론 프로야구 관중 수도 감소되지 않는다. 뉴스 화면에 비친 도쿄돔의 프로야구 관중은 거의 만원이다.
한국 프로야구도 5/31~6/30 동안 리그를 중단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직격탄을 맞는다. 관중 수와 TV 시청률이 급감한다. 한국 대표팀이 축구 경기를 하는 날에 진행된 프로야구에는 관중이 1,000명도 입장하지 않는다. 월드컵이 끝난 7월이 되어서야 관중 수가 회복된다.
한편, 미국, 일본 다음으로 야구가 인기 있는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5 공화국 정부는 자신들의 민주적 정당성의 취약함을 잘 알고 있었다. 5공 정부는 정치적 불만과 민주화 요구를 잠재우기 위해서 3S 정책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특히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결국 5공 정부는 3S 정책의 일환으로 1982년 프로야구를 출범시킨다. 당시 한국의 1인당 GDP는 2,000$였다. 프로야구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려면 1인당 GDP가 최소 10,000$는 되어야 한다고 우려하지만, 한국에서는 프로야구가 가장 성공한 스포츠 종목이 된다. 심지어 2024년에는 영화의 인기를 위협할 정도다.
과연 한국에서는 어떻게 프로야구가 성공했을까? 프로야구 정착에 1등 공신은 지역 연고제라고 생각한다. 1982년 한국 야구위원회는 서울을 기반으로 MBC 청룡, 대전을 기반으로 OB 베어스, 대구를 기반으로 삼성 라이온즈, 부산을 기반으로 롯데 자이언츠, 광주를 기반으로 해태 타이거즈, 인천을 기반으로 삼미 슈퍼스타즈를 출범시킨다.
한국 사회는 1970년대 급격히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이주했다. 1980년대에는 야구장을 찾으며, 고향 친구들과 고향 야구팀을 목 놓아 응원하며,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랬다.
한국 사회에서 지방 사람들의 수도권 이주 정도를 알 수 있는 지표가 있다. 1980년대에는 프로야구 정규 시즌에 입장한 관중 수익을 홈팀과 원정팀이 80:20 비율로 분배했다. 수도권 팀 경기에 입장한 관중에는 순수하게 홈팀을 응원하는 팬들만 있지 않고, 원정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상당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원정팀은 자신들의 몫을 주장했고, 한국 야구위원회는 원정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팬들의 수치를 산정해서 관중 수익을 배분하는 비율을 80:20으로 정한 것이다. 이것은 미국에서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수익 방식이다. 물론 지금의 관중 수익은 전적으로 홈팀이 가져가는 방식으로 변경됐다고 한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아들이랑 캐치볼을 할 시간이 없다. 2024년에는 딱 2번 직관을 갔을 뿐이다. 5월에 잠실 경기장을 가니, 39년 전의 무등 경기장과는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르다. 일단, 배 나온 아저씨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관중이 생기발랄한 20대와 30대다. 더욱 놀라운 점은 태반이 여성이다.
소주 냄새는 전혀 나지 않고,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중간중간에 타이거즈 투수가 삼진을 잡을 때마다, ‘삐끼삐끼’ 댄스를 춘다. 아들에게 예전 타이거즈 경기장에서는 ‘목포의 눈물’이 흘러나왔다고 이야기하니, 어리둥절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목포의 눈물’을 부르지 않으니, 예전 배 나온 아저씨들이 ‘목포의 눈물’을 애절하게 불렀던 심정이 이해된다.
그 아저씨들은 야구장에서 목포의 눈물을 목 놓아 부르면서 사회적이나 정치적으로 받은 억울함을 날려 버렸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래 1990년대 후반까지 5월 18일에는 광주에서 프로야구가 개최되지 않았다. 한국 야구위원회는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핑계를 댔다.
스포츠는 스포츠 자체로 즐겨야 한다. 스포츠에 정치적인 색채가 끼는 순간 어떻게 뒤틀릴지 예상할 수 없다. 물론 1980년대 타이거즈는 호남 사람들에게 신경 안정제이자 유일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커다란 선물이었다.
이제 ‘우리 시대 가장 큰 아픔을 야구로 극복한 도시에서 타이거즈는 운명이자 자랑이었던 광주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우리의 배 나온 아저씨들이 목포의 눈물을 목 놓아 부르던 시대에서, 우리의 아들 딸들이 생기발랄하게 삐끼삐끼 댄스를 추는 시대로 자연스럽게 옮아가고 있다.
야구장에서 광주의 아픔을 노래했던 시기에, 우리의 선배들은 야구 자체를 즐기지 못했다. 야구를 즐길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당신들의 한을 맘껏 풀 수 있던 야구장을 그저 좋아했다. 타이거즈가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목포의 눈물을 제창하는 것이 어색하다는 것을 인식했지만, 야구 자체를 즐기지는 못했다.
야구는 오묘하고도 알쏭달쏭한 스포츠다. 대부분의 스포츠 감독을 Head Coach로 표기하지만, 야구만은 감독을 manager로 지칭한다. 야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서 너무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여, 그 다양한 변수를 관리하는 것이 야구 감독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선수로 한 획을 그었고, 은퇴한 후에는 프로야구 해설에 매진하고 있는 이순철 위원은 중계석에 들어설 때마다 외친다. “야구는 알 수 없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으니, 이제까지 대략 55년 정도 야구장에 있었다. 그런 그가 야구는 알 수 없다고 한다면, 과연 누가 야구를 알 수 있을까?
야구 관계자들은 야구를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순철 위원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의 인생이 맘먹은 대로 되지 않듯, 야구도 절대로 맘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이제는 야구 자체를 감상하며, 야구의 오묘함을 즐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