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행운

응원봉

2025년 광복절을 열흘 앞두고, 뜻밖의 우편물이 집으로 배달된다. 우편물을 보낸 사람은 행안부 장관 윤호중이다. 고딩 2학년 아들이 광복절 경축 행사에 뽑혀서, 당일 9:10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입구로 신분증을 지참하고 오란다.

나에게 광복절의 가장 큰 의미는 아내의 생일이다. 아내랑 맞이하는 34번째 생일 중에서, 이번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 아들이 우리에게 오기 전에는, 봄에는 화이트데이에, 여름에는 아내 생일에, 가을에는 결혼기념일에, 겨울에는 크리스마스에 우리만의 파티를 열었다. 그때 나는 사랑꾼으로 불렸다. 친구들은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서, 나에게 경고했다.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그들의 예상처럼, 지금은 봄 파티를 생략하고 있다.


광복절 아침이 밝아 온다. 나는 먼저 미역국을 끓이고, 쌀밥을 앉힌다. 물론, 나는 미역국을 손수 완벽하게 끓일 정도로 요리는 잘하지는 못한다. 오뚝이 즉석 미역국 3개를 정수에 풀고, 아내가 미리 손질해 냉동한 전복을 마늘과 함께 넣어 불에 올린다. 아내와 아들은 아직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다. 조용히 제과점으로 간다. 순백색의 케이크를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벌써 시곗바늘은 8을 지나고 있다. 서둘러 생일상을 차린다. 아들은 생일 파티 준비를 한다.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아내는 생일 축하송에 맞춰 불을 끈다. 우리는 전복미역국과 쌀밥을 가득 입속에 밀어 넣는다.


아들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우리는 집을 나선다. 나는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송강호처럼 앞차 제치기 신공을 발휘한다. 조수석에 탄 아내는 겁이 나는지, 오른쪽 위의 손잡이를 꼭 잡는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된 신공으로 추월한다.

광복절 당일에는 세종문화회관 인근이 봉쇄되어, 우리는 경복궁 주차장으로 향한다. 아직 도착 전인데도, 9시가 돼버렸다. 아내와 아들은 주차장 입구에 내린다. 나는 차를 주차하고 출구로 향하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온다. “대강당 입구 맞은편에 있는 팬케이크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어.”


카페는 아침을 먹으러 온 손님으로 가득 차 있다. 아내가 유튜브를 켜고, 광복절 생중계를 시청한다. 아직 리허설 중이다. 아내는 아들이 생일 카드를 쓰지 않은 데 대해서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다 갑자기 아내가 질문을 던진다. “이번에는 왜 생일 카드 안 썼어?” 나는 쭈뼛쭈뼛 해진다. 아내의 공격이 이어진다. “당신이 안 쓰니까, 아들도 안 쓰잖아?”

할 말이 없어진 나는 반격한다. “뎁데꼬깔이야.” 뎁데꼬깔은 전라도 속담으로, ‘똥 낀 놈이 성낸다’는 여담과 비슷하다. 원래 뎁데꼬깔은 아내의 주 레퍼토리였지만, 어느 날 말해보니, 너무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할 말이 없어질 때마다 내 보도의 전가가 됐다.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 나를 흘겨본다. 이럴 때는, 일단 자리를 피하고 본다.


광복절 경축 행사가 거의 끝날 무렵, 웨이터가 우리에게 멘트를 남긴다. “카페 이용 시간은 2시간입니다. 11:18분이 2시간입니다.” 10분 남짓 남았다. 밖을 보니, 비가 나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11:12에 카페를 나선다. 아내는 아들을 기다리고, 나는 우산을 사러 내려간다.

우산을 사서 돌아가다 보니, 평소 방송에 자주 나오는 야당 국회의원이 내 옆을 지나간다. 살짝 연예인 같다. 아들은 광복절 경축사의 디테일을 이야기하며, 이미 흥분해 있다. 우리는 예약 한정식 식당으로 향한다. 예약 룸에 들어서니, 아들이 아내에게 생일 카드를 내민다. 아내는 아침의 서운함이 풀리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던 점원이 우리에게 묻는다. “사모님 생일이에요?” 아들이 바로 대답한다. “오늘은 엄마 생일이에요.” 식사를 한참 하고 있는 중에, 그 점원이 예상 밖의 선물을 가져온다. 바로 육회 세 접시다. 그중 하나에는 가운데 초를 꽂아 왔다. 센스쟁이다. 우리는 모든 접시의 음식을 다 쓸어 넣는다. 아내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오늘도 너무 많이 먹었어, 우리 청계천 산책하자!”

밖으로 향하는데, 여우비가 내린다. 여우비 덕분에 햇볕이 따갑지 않다. 여우비가 바로 오늘의 세 번째 행운인가? 우리는 청계천 아래로 내려간다. 사람들이 청계천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냇가에 고무신 벗어놓고/흐르는 냇물에 발 담그고/언제쯤 그 애가 징검다리를 건널까 하며/가슴은 두근거렸죠”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가 절로 떠오른다. 예민은 이 노래를 황순원이 쓴 ‘소나기’의 주인공 소년을 상상하고 만들지 않았을까?

‘소나기’를 처음 읽는 순간, 황초시의 증손녀는 나에게 첫사랑의 로망으로 자리 잡았다. 그녀는 여름날의 찰나, 금방 스쳐 지나갔지만, 그 순간 엄청난 인상을 남겼다. 나는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 아내도 황초시의 증손녀 같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황초시의 증손녀와는 완전히 달랐다. 아내는 우리의 관계를 능동적으로 이끌었고, 즉흥적이며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웃음을 쏟아 냈다. 나는 이런 톡톡 튀는 발랄함이 사랑스러웠고, 지금도 좋다.


두 개의 여름

첫여름,

수줍게 깜빡이던 눈

말없이 웃는 얼굴에

나는 조용히 멈췄다


두 번째 여름,

거리 한가운데

예고 없이 쏟아지는 웃음


나는 알았다

이제 내 심장은

톡톡 튀는 발랄함을 품는다


아들이 광복절 경축 행사에 뽑힌 행운에, 연달아 이어지는 두 번의 행운이 겹치며 엮어진 여름날의 단막극은, 달콤하면서 쌉쌀한 오묘함을 선물한다. 이 환상적인 여름날 단막극은 나를 소년 시절의 로망으로 데려간다. 나는 청계천을 산책하며, 낭만적인 분위기에 젖는다. 어느덧 식당 건물이 보인다. 2025년 광복절 단막극은 이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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