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칫국 마시기

응원봉

한국 사회에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라는 재미있는 속담이 있다. 예전에는 귀한 떡을 주거나 받는 일이 흔치 않았다. 누군가 “떡을 줄게” 혹은 “떡 줄지도 몰라”라는 말을 꺼내면, 받는 쪽에서는 벌써 그 떡을 먹을 상황을 상상하며 들뜨곤 했다. 따라서 떡 받을 걸 전제로 미리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것은 성급한 기대를 상징한다.

겉으로는 헛된 기대를 미리 한다는 것을 뜻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자기중심적 확신과 성급한 감정 소비에 대한 경계를 내포한다. 즉, 단순한 기대보다는 자기만의 가정에 몰입하는 심리를 비판한다. 우리는 자기 바람이 강하면, 그 바람을 현실 가능성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확인보다 상상을 앞세우고, 그 상상에 감정을 미리 다 써버리는 것이다.

결국 모든 기대는 상대의 의사와 현실 확인 위에서 세워져야 하지만, 이 김칫국 마시기 속담은 아직 쓰지도 않은 답장을 먼저 읽는 사람, 아직 심지도 않은 씨앗의 열매를 따는 사람, 그 성급한 기쁨이 남기는 쓴맛에 관한 이야기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읽다 보면, 이 김칫국 마시기에 딱 들어맞는 해프닝이 발생하여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핍은 에스텔러에게 까이고 나서, 비디에게 청혼하기 위해서 런던을 떠난다. 핍은 비디를 만나 포옹하면서 눈물을 흘리지만, 비디는 “난 조와 결혼했단다!”라고 이야기한다. 만약에 핍이 비디의 결혼 소식을 듣기 전에 청혼을 했다면, 핍의 손가락은 얼마나 오그라들었을까?

핍은 비디를 만나기도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 결혼 생활의 그림을 완성해 놓았다. 비디와 함께라면,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미래형 확신을 갖고 길을 걸었다. 그는 아직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마음속에서는 이미 비디에게서 “좋아요”라는 대답을 들은 셈이었다.

실제로 만나서 포옹하며 눈물을 흘린 것은 청혼의 성공을 기정 사실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비디가 건넨 말은 “난 조와 결혼했단다!”였고, 기대의 성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결국 핍의 경우, 김칫국은 길 위에서 느꼈던 뭉클함, 설렘, 그리고 자신감이었고, 떡은 비디의 청혼 수락이었다. 떡이 없으니, 그 모든 감정은 씁쓸한 허망함으로 변했다.

나에게도 학창 시절, 김칫국 마시기 해프닝이 있었다. 고딩이 된 후에 나는 2명의 친구와 같이 등교했다. 친구들 중 하나는 영화 ‘친구’의 유오성을 닮았고, 나머지는 정운택을 닮았다. 우리들은 6번 버스를 탔다. 그 버스는 우리 학교에 도착하기 전에는 J 모 여고를 들렀고, 도착 후에는 D 모 여고와 K 모 여고를 들렀다.

우리들은 버스에 타자마자, 다음 정거장부터 여학생들이 타는 지를 눈이 빠져라 지켜봤다. 4월 하순이 되자, 다음 정거장에서 3명의 여학생이 연이어 탔다. 정운택 친구가 제일 먼저 승차한 여학생을 찍었다. 나도 이에 질세라, 두 번째 탄 여학생을 찍었고, 유오성 친구는 맨 마지막 여학생을 찍었다. 세 명의 여학생들은 이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혹시라도 평소보다 일찍 만났더라도, 우리는 매일 동일한 시각에 버스를 탔다. 이 상황은 2학년 때까지 이어졌다. 갑자기 12월부터 내가 찍은 여학생이 6번 버스에서 보이지 않았다. 정운택 친구는 내 염장을 지르기 시작했다. “네 여친, 토껴부렀다.” 남들이 내 친구의 놀림을 들었으면, 내가 여자 친구에게 까였다고 여겼을 것이다.

3학년이 된 우리는 12시까지 학교에서 잡혀 있었다. 다만, 시험을 치른 토요일에는 오후 6시에 끝났다. 3월 시험 후 마지막 토요일 오후 6:15에 6번 버스를 탔다. 거기에는 그토록 보이지 않았던 내가 찍은 여학생이 이미 대학생이 된 채로 타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보다 1년 선배였다. 정운택 친구는 다시 한번 나발을 불어댔다. “야 너는 연상의 여인을 찍었었네!” 그 자식은 내 귀에 대고, “내 젊음을 엮어서 내 영혼을 엮어서/사랑했던 여인 연상의 여인” 윤민호의 노래 ‘연상의 연인’을 반복해서 불렀다. 만약에, 내가 자자의 ‘버스 안에서’ 상황을 그리면서,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다면, 상상하기도 끔찍하다.

나도 핍처럼 현실의 사실을 차분히 확인하기보다는, 미래를 먼저 머릿속에 그려놓고 김칫국부터 마셨던 걸까? 내 젊은 날을 회고해 보면, 나는 살짝 김칫국 마시기 쉬운 편이었다.

나는 현실의 디테일보다는 가능성이나 이야기성에 더 끌렸다. 그래서 작은 단서나 우연에서도 아름다운 미래라는 서사를 쉽게 덧씌웠다. 나는 낭만파라 자부하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감정을 미리 투자했다. 내 마음속에서 이미 자신을 한 편의 이야기 주인공으로 설정해 놓고 사건을 맞춰 해석했다.

나를 변호하자면, 감정 몰입이 빠르고, 가능성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경향이 있어서, 김칫국 마시기에 취약하다. 하지만 이게 반드시 단점만은 아니다. 이러한 성향은 창작력이나 관계의 온기로 발휘되면 매력적인 장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김칫국 마시기를 회피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김칫국을 찻잔으로 바꾸면 어떨까? 김칫국은 떡을 전제로 하지만, 차는 그냥 즐길 수 있다. 즉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단순히 현재의 경험을 즐기면 된다.

그동안 읽었던 책 중에서 엄청난 구라를 꺼낸다. 바로 에리히 프롬의 ‘존재적 양식’이다. 대학자는 ‘존재적 양식’을 “무언가를 경험하고 살아내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태도”라고 선언했다. 따라서 나는 떡의 유무와 무관하게 차를 마시는 순간을 즐기리라!

위대한 유산:찰스 디킨스 지음/이인규 옮김/민음사/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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