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
2025년 8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에 ‘케데헌의 Golden’ 뮤직비디오를 여유롭게 감상한다. 처음에는 가사가 잘 들리지 않지만, 그 와중에 “영원히 깨질 수 없는”이 또렷이 들린다. 수차례 반복해서 감상한다. 역경을 이겨낸 화자에게서 ‘한국’이 느껴지며, 나도 모르게 울컥해진다.
도입부의 ‘ghost’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의 한국이다. IMF 사태 이후,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이 희미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이 시절 한국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보다는,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의심하던 고스트였다.
두 개의 삶 중 하나는 분단된 국가, 개발도상국의 그림자 속에서 고스트 같은 삶이었다. 다른 하나는 글로벌 무대 위에 서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문화와 기술로 세계의 중심이 되는 골든한 삶이다. 한국은 지금, 숨김과 드러남 사이에서 두 개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It’s our moment.”의 외침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빛날 시간이라는 결단의 목소리이자, 현재를 찬란하게 붙드는 선언이다. ‘my’가 아니라 ‘our’라는 점이 중요하다.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함께 이룬 순간,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성취인 것이다.
곡 전체가 영어로 흐르다가 “영원히 깨질 수 없는”이 불쑥 등장하는 순간, ‘우리는 빛나고, 영원히 부서지지 않겠다’라는 선언에 폐부 아래에서 뜨거운 감격이 밀려온다.
‘골든’은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지만, “영원히 깨질 수 없는”의 가사는 케이팝 팬들에게는 친근한 언어적 신호다. 해외 청자에게는 이국적이면서도 힘 있는 포인트이고, 한국 청자에게는 이건 진짜 우리 이야기라는 자부심을 선물하고 있다.
마지막 행의 “live like the girl they all see”는 ‘골든’의 긴 여정을 정리하는 다짐이다. 한국은 고스트로 불리며 타인의 낙인 속에서 살았다. 그러다 우리의 자신을 드러내면서, 실제의 우리와 일치시키기 시작한다. ‘the girl they all see’는 세상이 꿈꾸고 기다린 진짜 우리의 모습이다.
나는 ‘the girl they all see’에서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하는 ‘아이 단계’가 읽힌다. 낙타의 시대에 한국은 가난과 분단 속에서 짐을 짊어졌다. 생존에 매달려야 했던 한국은 니체의 낙타처럼, 무겁고 버거운 짐을 끌었다.
압축 성장과 민주화 운동 시기에 한국은 사자적 투쟁 상태였다. 억압과 불평등, 낡은 질서를 거부하며, “나는 자유를 원한다.”를 외쳤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사자는 부정의 힘이 강한 상태, 아직 창조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서구를 모방하거나, 타자를 향해 우월을 겨루지 않는다. 드뎌 우리는 과거의 짐과 싸움에서 벗어나, 자기 긍정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아이 단계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케데헌 뮤직 비디오를 보면서, 우리의 갓 패션에 주목한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쓰던 갓은 주로 말총을 얇게 꼬아 만든 투명하고 가벼운 모자였다. 이 소재와 형태가 서양인의 눈에는 아주 독특하게 비치고 있다.
갓은 신분을 상징하면서도, 동시에 자신과 세상 사이의 경계를 설정하는 도구였다. 서양인들이 볼 때, 투명하면서도 단단한 갓은 동양적 절제와 미학을 압축한 아이콘이다. 이제 갓은 단순한 모자가 아니라, 한국적 정체성과 미학, 그리고 세계가 흥미롭게 바라보는 문화적 오브제가 되었다. 나는 새로운 놀이를 꿈꾸는 ‘대한민국이라는 아이’를 노래한다.
황금빛 아이
한때 나는 유령
짐을 진 낙타처럼 보이지 않았네
분노의 사자 되어
세상의 이름을 외면했네
이제, 웃으며 선언한다
“바로 지금이 우리의 순간이야”
나는 아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새로운 놀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