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
이시구로 소설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에서는 주인공 오노가 예술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피력하고 있다. “화가가 포착하고자 하는 가장 섬세하고 부서지기 쉬운 아름다움이 해가 진 뒤 환락의 집 안에 떠돈다네. 내가 부유하는 세상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 이유는 나 자신이 그 가치를 믿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네. 한 세계의 아름다움, 그것의 진짜 유효성을 의심하는 한 그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향유하기란 어렵다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나서, ‘예술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예술이란 가장 섬세하고 부서지기 쉬운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것인가? 나는 미술이나 음악에는 문외한이어서, 문학에 집중해서 사유한다.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를 다 읽고 나서, 문학을 정의해 본다. 나에게 문학은 가장 연약한 떨림을 포착하는 것이다.
어릴 때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작품을 좋아했다. 그러나 다양한 장르의 문학 작품을 읽고 난 요즘, 문학은 빛나는 기쁨이 아니라 아련한 슬픔의 자리에서 더 큰 위안을 준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작가 자신의 시각에서 가장 연약한 슬픔을 포착해 낸 작품에 눈길이 간다.
학창 시절에는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내 마음에 훅 들어왔던 시는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이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김영랑도 한낮의 바람결처럼 미세한 떨림,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고요한 마음의 결을 시어에 영혼처럼 눌러 담은, 가장 연약한 떨림의 결정체를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에서는 외침도 없고, 사건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존재의 미묘한 떨림, 살아 있음의 섬세한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잠시 투명해지는 순간을 마주한다. 햇살, 샘물, 고운 봄길, 그 모든 사물이 김영랑 자신의 눈 안에서 존재의 떨림을 간직한 언어로 바뀌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우리 모두 한 번쯤 삶의 고요한 날,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는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연약 하지만, 지극히 아름다운 떨림의 노래라 하겠다.
최근에 읽은 문학 작품 중에서 ‘가장 연약한 떨림을 포착해 낸 것’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희랍어 시간’이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한국 사회의 가장 연약한 떨림을 포착했고, ‘희랍어 시간’에서는 개인의 가장 연약한 떨림을 포착했다.
나는 ‘소년이 온다’ 중 “우리가 반드시 패배할 거라고 상황실장은 말했다지요. 반드시 죽을 것이며,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지요. 그는 계속 말했다지요.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이라고 말하는 대사에서 가장 떨린다.
그의 말은 죽음을 앞에 둔 자가 내뱉는 오만한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죽음을 받아들인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삶의 가장 순수한 떨림이다. 한 사람의 존재가 패배와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윤리와 생명의 가치를 확인하고, 그것을 찬란한 감각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단순한 도덕적 감각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해 무너뜨릴 수 있었던 마지막 경계, 그러나 끝내 지켜낸 인간성의 심연이다. 그 경계를 지켜낸 순간, 그는 세상 누구보다도 고요하게 떨리는 내면의 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이마에 박힌 보석’이라는 표현은 신화적인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번쩍이는 단 한 번의 명료함, 즉, ‘나는 지금, 나의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살고 있다’는 존재의 절정을 묘사한 것이다.
‘소년이 온다’는 이처럼,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조차 그 틈새에 숨겨진 떨림의 순간들, 한 사람의 마음이 고요하게 불타오르는 장면들을 치열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 대사는 바로 죽음을 앞둔 인간이 보여준 가장 연약하고 찬란한 떨림, 그리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붙들어낸 한강의 윤리적 절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강은 우리가 평소 잊고 살아가는 가장 연약하지만 가장 용감한 인간의 진실을 한 문장 한 문장 속에 조용히,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을 떨림으로 새겨 두었다.
한편, ‘희랍어 시간’ 중 “시간. 보르헤스가 자신을 태우는 불이라고 불렀던 것. 그 수수께끼를, 한순간 쏘아져 영원히 날아가는 화살을, 그 안에서 불붙은 채 소멸에 맞서는 생명을 너는 맨손으로 만지고 싶어 했지.”라고 희랍어 강사가 유명을 달리한 여자 친구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가장 떨린다.
이 문장은 바로 죽은 이를 향한 가장 깊고 조용한 사랑의 언어이며, 동시에 한 인간의 가장 연약한 떨림을 포착하려는 궁극의 시선이다. 이 회고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다. 희랍어 강사는 여자 친구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어떻게 시간을 살아냈는가, 어떻게 존재의 불길 속에서 자신의 생을 다 태우며 끝까지 응시했는가를, 슬픔을 머금고 경외롭게 바라본다.
그녀는 시간이라는 불, 즉 소멸로 달려가는 생의 본질을 알고 있었고, 그 불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맨손으로 느끼려 했다. 그것은 곧 존재의 가장 연약한 진동, 말하자면 죽음을 의식한 삶의 떨림이다.
희랍어 강사는 그 떨림을 되새김질하듯 회고한다. 그가 기억하는 그녀는 거대한 삶의 메시지를 외친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한 순간의 불꽃, 타오르다 꺼지는 존재의 미세한 숨결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고자 하는 그의 회상은, 결국 그녀의 떨림을 다시 살려내는 행위, 즉 예술의 방식으로 애도하는 기도이다. 희랍어 강사가 사랑했던 가장 빛났던 생의 떨림을 자신의 내면으로 껴안고, 언어로, 기억으로, 존재로 붙들어놓은 순간이다.
나에게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은 고요한 아침 햇살처럼 다가오는 빛나는 기쁨의 떨림이다. 그러나 그 기쁨은 들뜬 환희가 아니라, 마치 이슬 한 방울이 나뭇잎 위에 머물다 햇살에 사라지는 순간 같은, 덧없고 연약하지만 너무도 정결한 기쁨이다.
이 시가 주는 기쁨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행복이 아니다. 어떤 성취나 대가로 얻은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내면의 조용한 맑음, 존재의 순간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맑음에서 피어나는 기쁨이다.
김영랑은 자연과 감정이 맞닿은 지점에서 삶이 지금 여기 있음의 아름다움을 감지했고, 그 감지의 순간을 섬세한 언어로 길어 올렸다. 그리하여 그의 시에서 한 사람의 내면이 떨리듯, 조용히 환하게 살아 있는 기쁨의 떨림을 듣게 된다.
반면에,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희랍어 시간’은 나에게 아련한 슬픔의 떨림으로 다가온다. 이 두 작품은 마치 기억의 가장 깊은 곳에 스며든 빛바랜 체온, 곧 아련한 슬픔의 떨림으로 진동한다.
그러나 그 슬픔은 울부짖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장면도 소란스럽지 않다. 오히려 말을 잃은 침묵 속에서, 울음 너머의 정적 속에서, 한 사람의 존재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난 감정의 흔적처럼 떨리고, 흐리고, 사라지지 않고 머문다.
이 두 작품은 슬픔이지만 무너지지 않고, 떨림이지만 흐트러지지 않는다. 아련함, 그것은 완전히 사라지지도, 완전히 붙들 수도 없으며, 한강은 바로 그 존재의 반쯤 어디선가, 사라져 가는 그림자를 가장 조용한 언어로 포착한다.
나는 삶의 끝자락과 죽음의 입구 사이, 그 섬세한 경계를 그리는 한강의 문장을 읽으며, 떨고 있다. 한강은 존재가 남긴 마지막 체온을, 문학이 껴안을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슬픔으로 노래한다. 그 슬픔은 때로는 아프지만, 너무도 아련하여, 어떤 희망보다도 깊고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머문다.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가즈오 이시구로 지음/김남주 옮김/민음사/2015
소년이 온다:한강 지음/창비/2014
희랍어 시간:한강 지음/문학동네/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