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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맥베스는 나에게 다가오는가

민낯

2024년 12월 3일, 예년의 연말처럼 송년회 술자리를 끝내고 10시 즈음 집으로 돌아와 비몽사몽 꿈나라에 들어가기 직전, 황급히 아내가 나를 깨우며, 외친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어!”

나는 아내의 외침에 놀라, 실눈을 뜨며, 물어본다. “에이, 설마” 그러는 사이에 거실로 끌려 나와 TV를 틀어보니, 그가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송중기처럼, 나도 인생 2회 차로 1980년에 다시 태어난 건가?


일단, 스마트폰을 열어보니, 단톡방으로 온갖 속보가 쏟아지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서 국회 주변 도로에 장갑차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오늘의 상황이 최근에 읽은 한강 작가의 ‘소년의 온다’와 겹쳐진다. 이 드라마틱한 사건이 저녁에 들이킨 술기운을 급격하게 몰아낸다.

2024년 비상계엄에 대해서 외신에서 다양하게 평가한 기사를 읽다가, ‘그의 부인은 한국의 레이디 맥베스’라는 타이틀이 눈에 확 들어온다. ‘맥베스’ 어릴 때 읽어봤지만, 내용이 어렴풋하여, 바로 민음사의 ‘맥베스’를 구매한다.


맥베스는 132페이지의 분량이지만, 시적 대사를 통해서 인간의 욕망과 죽음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맥베스를 42세(1606년)에 발표했지만, 인생을 달관한 스님처럼, 심오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맥베스의 쿠테타와 12월 3일 비상계엄은 묘하게 닮아있다. 맥베스는 반란군을 진압한 공으로 ‘덩컨’ 왕으로부터 ‘코도 영주’로 봉해지고, 권력욕에 빠지면서 ‘덩컨’ 왕을 살해하여 왕좌를 차지하지만, 아무런 가치나 의미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12월 3일 비상계엄은 그 자신이 최고의 권력자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2024년이 저무는 시점에 대한민국의 헌법을 무참히 무너뜨리고 있다.


맥베스에서는 인간의 부정적인 단면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덩컨 왕은 자신을 배반했던 신하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의 얼굴에서/마음씨를 알아내는 기술은 없구나.”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도 덩컨의 대사 같은 사건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얼굴에서는 자신의 본심을 숨긴 채 거짓이나 아부를 말하지만, 이내 뒤통수를 치고 자신의 발언을 뒤집기 일쑤다.


한편, 맥베스에는 중요한 사건 사이사이에 셰익스피어의 보석 같은 충고가 숨겨져 있다. “술이란/욕망은 일으켜 놓고 능력을 빼앗습죠.” 우리 사회는 술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한 편이다.

예를 들면,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유지하면서 술에 쩔어 있더라도 평범하게 넘길 수 있지만, 담배에 쩔어 있으면 백안시할 것이다. 참 묘하게 우리 사회가 술을 대하는 태도와 담배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이중적이다. 아마도 제사를 마치고, 제사 술을 나눠 마시던 전통 때문에 그러지 않을까?


또한, 우리 사회는 내면의 이야기를 하는 데 주저해서 그런지, 말짱한 상태에서는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있어서, 술의 도움을 받아서 평소 말하기 힘든 자신의 마음을 종종 발설하곤 한다. 심지어는 사랑의 고백마저도 술의 힘을 빌려서 시도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충고처럼, 술이 욕망을 일으켜 놓고 능력을 빼앗아버려, 사랑의 고백은 완전히 엉망이 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랑의 마음마저도 술의 힘에 의존해서 연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살짝 비겁해 보인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는 심정으로 사랑의 고백을 전하며 연인의 반응을 말짱한 상태에서 지켜보는 것이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맥베스 부인이 죽은 후에 맥더프와 결전의 의지가 완전히 꺾이면서, 맥베스가 되뇌는 넋두리를 맥베스의 책꼽문으로 제시하고 싶다.


“인생이란 그림자가 걷는 것,

배우처럼 무대에서 한동안 활개치고

안달하다 사라져 버리는 것”


맥베스 제호를 가리고 읽었으면, 법륜 스님이 설법했다고 착각할 뻔했다. 42살의 셰익스피어는 이미 인생을 달관하고 있다. 나도 맥베스처럼 다른 사람들의 위에 군림하고 싶기도 하고, 존경받고 싶기도 하다. 다만 나는 상상의 나래가 타인의 권리와 만나는 지점을 넘어가지 않도록 부단히 고민한다.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 사고를 싸지르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죄의식을 느끼지만, 나중에는 자신이 저지른 사고의 죗값에 짓눌려 그 자신을 공포로 몰아간다. 그러다 패닉 상태에 빠지며 이판사판 끝장을 보려고 할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실패한 사람들을 여러 번 만났다. 그중 어떤 이는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수긍하며 조용히 사라졌지만, 대다수는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내며, 상상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꼬장을 부렸다.

나는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420여 년 전(1606년)에 발표한 맥베스를 이렇게 절절히 읽게 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가 있다. 나는 이별 노래를 좋아하지 않지만, 알리의 ‘365일’ 가사가 너무도 강렬해서 잊을 수 없다.


“우리 이별을 말한 지 겨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어

~~ 일주일, 일주일이 되던 날, 노래 속 가사가 모두 내 얘기 같고

드라마 영화 속에 나오는 삼류 사랑 얘기가 모두 다 내 얘기만 같아”


아마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없었더라면 나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이렇게 절절하게 이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제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놀란 마음을 잘 추스르길 바랄 뿐이다. 나는 칼 마르크스의 외침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를 되뇌며, 두 번째 희극의 종영을 기다린다.


맥베스: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최종철 옮김/민음사/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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