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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는가

가면

톨스토이는 자신의 단편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람에게 무엇이 있고,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를 배워라.”라고 외친다. 그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고,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아는 힘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답한다.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아는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두 번째 답에 나는 사뭇 놀란다. 톨스토이는 왜 이 화두를 던졌을까? 사람의 삶이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 여행이라서 그런가?

요즘 한국인들은 대략 83년 정도를 살고 있다. 일수로 계산해 보면, 30,300일이다. 아버지는 82년 7개월을 사셨으니, 30,000일의 시간 여행을 하셨고, 어머니는 80년 2개월을 사셨으니, 29,000일의 시간 여행을 하셨다. 나도 한국인들의 평균인 30,000일 정도를 살아가지 않을까? 나는 아직 20,000일의 시간 여행을 마치지는 않았다.

시간 여행 속의 인간은 왜 필요한 것을 알 수 없을까?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 수 없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청나라 초기인 17세기 중반, 장조는 자신의 산문집 ‘유몽영’에서 “소년의 독서는 문틈으로 달을 엿보는 것과 같고, 중년의 독서는 뜰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장년의 독서는 누각 위에서 달을 구경하는 것과 같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대략 30,000일 정도를 사는데, 처음 만 일은 문틈으로 달 구경하듯 급하게 살고, 다음 만 일은 마당에서 달 구경하듯 처지에 둘러싸여 살며, 마지막 만 일이 되어서야 누각 위에서 달 구경하듯 여유롭게 산다’라고, ‘유몽영’의 경구를 변주하고 싶다.

첫 번째 만 일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채, 좁은 문틈 사이로 삶을 엿보며 달리듯 살아간다. 이 시기에는 욕망, 불안, 충동이 강하다. 무엇을 원하는 지도,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르면서, 무언가를 쫓고, 이루고,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두 번째 만 일에는 직업과 가족이라는 구조 안에서 일정한 자리를 갖게 된다. 더는 달이 희미하게 보이지 않고, 자신의 마당 위에 환히 떠 있으나, 여전히 달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 시기에는 관계, 책임 등에 둘러싸여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아가고 있을까?

세 번째 만 일이 되면, 높고 고요한 누각에 올라, 삶을 내려다보면서, 달의 형체와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볼 수 있을까? 이 시기를 여행하는 동안에,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영원하지 않은지 깨달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시를 읊어 본다.

달을 따라 걷는 삶

처음 만 일,

문틈 사이로 달을 본다

흐릿한 희망과 조급한 욕망이

작은 틈새를 비집고 달려 나온다

나는 달을 향해 달리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반짝이는 것이라면

홀라당 반해 버린다

다음 만 일,

마당에서 달을 올려다본다

여전히 달은 멀기만 하다

가끔은 구름에 가려

내가 달을 보고 있는지도 잊어버린다

마지막 만 일,

나는 누각에 올라

달을 다시 바라다본다

이제는 달을 쫓지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빛이 아니라, 그늘을

달은 멀지 않고,

그곳까지 걷지 않아도

이미 내 안에는 달이 있었네!

우리는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없기에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오직 사랑으로 달에 이을 수 있네!

그렇다면, 30,000일을 넘어선 삶은 어떠할까? 교향곡 3막이 끝나고 청중의 부름에 호응하는 앙코르 연주일까? 열정과 혼란의 교향곡 1악장에 이어, 조화와 불협의 삶을 연주하는 2악장, 통찰의 아름다움을 은은하게 노래하는 3악장이 끝나고, 객석은 숨을 죽인다. 무대는 잠시 정적에 잠긴다. 그때 어디선가 ‘앙코르!’라는 한 마디가 흘러나온다. 이에 무대 위의 연주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지막 곡을 노래한다.

30,000일을 넘어선 여행은 증명해야 할 것도, 쟁취해야 할 것도 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마침내 ‘스스로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시작된다. 그것은 누구의 요청도 아닌, 진심이 흘러넘치는 자유로운 연주다. 연주자 자신도 모르게 벅찬 감동이 올라온다.

앙코르의 삶

교향곡은 끝났지만,

나는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박수가 아니라

내 안에 울리는 앙코르

이제야 내 마음의 음표로,

나는 삶의 마지막 장을

다시, 처음처럼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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