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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믿어!

- '할말하않'의 경지를 향해

by 시나브로 모모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화장실에 가야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신체의 기능이 하나 둘 떨어지는 일에 익숙해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날도 졸린 눈 부비며 아침에 가까운 7시 즈음 둘째 아들 방 옆에 있는 화장실을 가는 길이었다. 그때였다. 황급히 베개밑으로 감추는 둘째 녀석의 손놀림을 본 것은. 게슴츠레 뜬 눈에도 보일 건 다 보인다.


"00이 휴대폰 한 거야?"

"응? 으응...."

"휴대폰으로 뭐했어?"

"어...어... 배경화면 바꾸려고 사진 찾았어."

"엄마가 다시 물을게.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거짓말한 것까지 잘못이 하나 더 느는 거야. 휴대폰으로 뭐했어?"

"음.... 그러니까... 어..."


아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두서가 맞지 않는 단어들을 띄엄띄엄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나는 주저하는 아이의 답을 기다렸고, 녀석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 답했다.

"oo아, 엄마는 너를 믿어. 네가 한 말이니까 믿어. 너도 너를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믿는다'는 말처럼 무거운 말이 또 있을까.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어머니!!"라고 외쳤던 스카이캐슬의 선생님 말처럼 믿음이 힘을 가질 때는 "조건없는" 절대성이 따를 때이다.

나는 그 조건없는 절대적인 믿음을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들은 모두 삼켰다. 왜?

그것이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교육적이냐 아니냐는 차치하고 이 확신에 찬 믿음과 그것을 표현하는 일은 확실한 변화를 이끌어 낸다.

많은 부모들이, 교사들이 '조언'을 한다. 재미있게도 자식들과 아이들은 이것을 '잔소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잔소리를 하게 되는가.


얼마 전, 공동육아를 했던 둘째와 동갑내기 친구 A의 가족이 집에 놀러왔다. '엘리트 축구의 길'로 들어선 A의 진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A의 엄마가 한숨을 쉬면 말한다.

"레슨 라이딩하는 것보다 남편이 A한테 잔소리하는 것 때문에 더 미치겠어!!"

A엄마의 말인 즉슨, A를 라이딩하면 자연스럽게 연습 경기나 훈련을 보게 되는데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A의 부족한 부분, 개선해야 할 점들을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 계속 조언-이라 쓰고 잔소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A의 아빠에게 물었다.


"근데, 그래서 A가 조언을 듣고 나아졌어?"

"아니~!!"


문제는 바로 이거다. 그렇게 수십번, 입이 닳도록 이야기를 했는데도 상대는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간섭하고, 부족한 점만 지적하고 비난했다는 '감정'만 남을 것이다. 진짜 감정의 앙금이 남았는지 우리집에서 A와 A의 아빠는 여러 차례 '싸.웠.다.'!! 잘못에 대한 '훈육이나 지도'가 아니라 대등하게 '말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빠도 지난번에 잘못했잖아, 그러니까 나도 잘못할 수 있지!'라는 패턴으로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있었다. 여기에 자신의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자기반성은 없다. 너와 나는 피차일반이니 서로 지적질하지 말고 끝내자는, 언뜻 들으면 홀딱 빠져드는 아전인수의 궤변에 부모는 무릎을 꿇게 된다.

부모는 '친구'가 아니다. 부모는 격의없이 장난치고 싸우기도 하는 친구의 위치가 아니라, 단호한 권위로 교육하는 어른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단호한 권위는 '조건없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둘째가 휴대폰을 하다 걸렸을 때, 엘리트 축구에 뛰어든 아들의 부족함을 목격했을 때

부모가 가져야할 태도의 바탕은 바로 조건없는 믿음이다. 우리는 아이를 너무 사랑하고, 아이의 미래에 대해 그 누구보다 욕심이 많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다. 더구나 우리는 '해 봐서 알고, 안해봐도 아는' 대단한 어른들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비난과 조언을 넘나드는 많은 이야기들을 해 줄 수 있다.

그러니, 부모들이여(어른들이여~)

제발 아이들을 믿어주자. '믿지, 믿는데~'라고 토달지 말고 진짜 믿어 주자. 종교가 힘이 센 이유는 신에 대한 조건없는 절대적 믿음을 가진 이들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아이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조건없는 믿음을 표현하자.

여기서 또한가지 중요한 것은 "표현하자"는 부분이다. 조건없는 믿음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자칫 방임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부모는 가장 가깝게, 오랫동안 아이를 돌보고 교육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적절한 "표현"도 중요하다.


다시 둘째의 몰래 휴대폰 사용 사건으로 돌아와서, 우리 가족은 원래 휴대폰 사용 시간에 관한 규칙이 있었고, 최근 우리도 취침 전 휴대폰 릴스를 보는 경우가 잦아 문제라고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서 얼마 후 가족 대화 중에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 가족 모두 자기 전에 2층 거실에 휴대폰을 두는 게 어떨까? 엄마는 휴대폰을 보고싶은 유혹에 빠지기 쉬운 거 같아."

"아빠도 자기 전에 가볍게 휴대폰을 켰다가 1시간 넘게 동영상 본 적이 있어. 휴대폰을 스스로 통제하는 게 쉽지 않더라."


우리는 일방적으로 아이에게만 규칙을 강요하지 않는다. 부모도 규칙을 지키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대등한 존재임을 드러냈지만, 동시에 휴대폰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교육적인 입장은 단호하게 권위를 가지고 표현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그것이 합당하다고 여기면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자신이 합의한 규칙을 어겼을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 부모가 말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다"는 말은 아이에게 무겁고, 크게 와 닿는다.


그럼 또 사람들이 묻겠지.

"아이가 몰래 휴대폰 사용하기를 다시는 안할 거라고 믿으세요?"

(이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불신하고 있다. 중증이다 ㅎㅎ)


설마 우리 아이가 몰폰 경력이 처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이는 앞으로도 몇 번을 또 할 것이다. 그때가 중요하다. 많은 부모들이 그때 자존심이 상해하거나 배신감을 느낀다. 부모말이 말같지 않냐거나,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감정 폭발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학급담임을 할 때도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심지어 그런 녀석들의 숫자는 더 많아 심리적 타격이 만만치 않다.

그런 어른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말을 전하자면,

"아이들은 원래 그렇다. 그래도 믿으면 조금씩 변화한다. 다시 돌아기긴 하는데 원래의 자리보다는 조금더 내쪽으로 몇 센티 움직인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배운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함께 노력하는 사람이 있고, 조건없는 믿음을 주는 어른이 있는 한, 크게 엇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다는 인식은 할 것이다. 그 부끄러움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조건없는 믿음을 가지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A의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빠니까 잔소리하지. 남이면 하냐!"

그렇다면 이제는 내 자식을 남이라 여기고 이렇게 말해보자.


"내가 부모니까 할말하않(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어). 널 믿는다."


p.s 마음에 쌓아둔 잔소리는 병이 될 수 있으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칠 수 있는 나만의 대나무숲을 찾아 볼 것!! 단, 서로의 남편과 아내를 대나무숲으로 만들지는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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