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전 날 먹지 못한 로피아 초밥 생각에 아침으로 로피아에서 초밥을 사다 먹기로 했다. 초밥 9피스에 1390엔이었다. 아침에 문 열자마자 사온 초밥이라 회가 신선했다. 특히 내 입맛을 사로잡은 건 가리비 초밥이었는데, 입에 넣자마자 가리비 관자가 쫀득하게 씹히면서도 질기지 않았다. 오히려 씹을수록 녹아내리며 조개향이 와사비와 어우러지는 느낌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간단히 배를 채우고 호텔을 나섰다. 아침부터 더운 것이 분명 오늘도 푹푹 찔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친구와 어제부터 돌아다니며 이야기한 것이 있었다. 어느 거리, 골목을 가든 간에 그 풍경이 그림같았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그 특별한 감정.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다. 평범한 풍경조차 어릴 적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본 배경 같아 이상하게 느껴졌다. 분명 평범한 장소인데도, 우리나라와는 다른 느낌이 물씬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 차이점을 쉽사리 찾기는 어려웠다.
오늘은 웬일로 계획이 있었다. 난조인이라는 절에 가는 것이었는데 큰 와불상이 있다길래 꼭 보고 싶었다.
난조인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빠르게 지나쳐가는 바깥 풍경과 가만히 앉아있는 나, 마치 나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웜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의해 전철의 속도가 빛의 속도에 비해 매우 느리므로 기차 밖이든 안이든 시간이 같아야 하지만 밖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빛의 속도로 달리는 듯 시간이 팽창되는 기분이었다.
난조인 역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맞이한 것은 푸르른 나무와 목조 지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역 건물은 전통적인 일본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었고, 그 주변의 자연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기차역의 간판은 일본어로만 적혀 있었지만, 그 자체로도 멋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역의 내부는 단순했다. 출구가 하나뿐이어서 바로 개찰구로 이어져 있었다. 70세는 되어보이는 할아버지분이 개찰구에서 일일이 표를 확인하고 걷어가셨다.
역에 도착했을 뿐인데 내가 느낀 분위기는 한편의 예술 작품 같은 느낌이었다. 그저 일상적인 풍경인 듯 하지만서도 속에서 특별함을 찾을 수 있었다. 난조인으로 가는 발길이 가벼워졌다.
기차역에서 나와 난조인이 어디인지 찾지 않아도 사람들이 가는대로 따라가면 그곳이 난조인일 것 같았다. 앞으로 배낭을 맨 서양인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도 길을 아는지 모르지만 그를 믿고 따라갔다. 예상대로 난조인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났고 순탄하게 입장하였다.
20분정도 산길을 걸어올라가니 와불상이 나타났다.
와불상을 마주했을 때의 감정은 경이로웠다. 부처님이 마치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듯한 위엄이 느껴졌고, 그 존재감은 나를 압도했다. 불상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편안함과 동시에 깊은 사색을 유도하는 듯했다.
잔잔한 미소와 모든 것을 포용할 것만 같은 표정. 30초 정도 바라보고 있으면 이 공간에 부처님과 나만 존재하는 듯한 착각이 일어난다.
둘째로, 앞에 수많은 청동 사리들이 세워져 있었다. 세월을 못이겨 푸르게 변한 청동사리는 특유의 광택을 내며 과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했다. 사리 앞면에 날짜가 쓰여 있었는데 하루에 한 개씩 세워놓은 듯했다. 해당 사리가 무슨 목적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뜻이 깊어보였다.
더운 날씨에 산행 아닌 산행을 했더니 진이 빠졌다. 와불상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지고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었다. 내려가기 전 와불상에 고개를 숙이고 마음 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나와 가족의 건강, 순탄하게 지나가길 빌며 지금 일본에 자유로이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해했다.
하카타로 복귀해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체감 온도가 35도까지 올라감은 점심 메뉴로 시원한 소바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였다. 어디서 소바를 먹을지 따위는 정하지 않았으나 소바로 정한 순간 금방 찾았고 어느 골목골목으로 들어가야만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건물 자체가 목조건물이어서 딱 보아도 세월이 깃들어보였다. 그 중에 시스템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화하는 것이 부러웠다. 우리나라의 한옥은 소수만이 지키면서 살거나 오히려 관광 상품화시켜 장사를 하고 있는 반면 일본인들은 정말 전통 가옥에 살거나 생업을 유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일본만의 색다른 느낌이 드는 것이 목조건물때문이냐고 물어본다면, 그것만은 아니었다.
소바가 처음 나와 국물만 찍어먹었을 때, 당황했다. 국물이 싱겁기도 했으나 딱 떨어지는 맛이었다. 뒷끝이 없었고 깔끔한 간장에 물 풀어놓은 느낌이었다. 또 한국에서 먹는 판모밀과는 다르게 간 무를 주지 않았다. 간 무의 원천이 일본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던가? 면은 한국에서 먹는 정도보다 조금 더 탄력이 있었지만, 말라붙어 딱딱한 것이 아니라 면 자체가 더 단단했다. 우리나라에서 파는 메밀 면과 메밀의 함유량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면를 푹 담가먹엇더니 간은 딱 맞았다. 오히려 푹 찍어먹는 것을 고려해서 싱겁게 만든 것인가 싶었다. 와사비를 전부 풀었더니 짭짤하면서도 알싸한 맛을 면이 머금고 올라와 조화를 이루었다.
우리나라말로 튀김 덮밥으로 불리는, 텐동은 새로웠다. 깻잎 튀김은 바삭하며 부스러졌고 가지 튀김은 물컹하면서도 단단했다. 단호박과 새우 튀김까지 네 종류의 튀김만으로 밥을 비울 수 있음은 그만큼 튀김과 밥에 뿌려진 간장 소스가 조화롭다는 반증이다.
점심으로 먹은 소바와 텐동은 1000엔이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8700원정도였는데 같은 퀄리티의 음식을 우리나라에서 먹으려면 15,000원에서 18,000원까지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GDP가 더 높지만 우리나라의 가격이 두 배이상 비싼 것에 대하여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본에서는 모밀과 튀김덮밥이 일상식이라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도 백반 6,000원에서 8,000원정도에 팔지 않느냐'라는 논리가 떠오르긴 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메밀과 튀김 재료를 팔지 않는것도 아니고, 소바와 튀김덮밥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많이 알려진 음식들이라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가격이 두배 차이씩이나 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느꼈다.
생각해보니 두 번째 이유로는 일본은 거의 10년간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한 나라라는 점이다. 일본의 인플레이션율이 궁금하여 검색해보니 1999년부터 2013년까지 인플레율이 1%를 넘지 않았다. 오히려 디플레이션이 일어난 기간이 더 길었다. 인플레이션율이 모든 항목을 반영하진 않겠지만 이 정도면 왜 이렇게 가격이 싼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점심을 먹고 텐진으로 발을 돌렸다. 텐진에 가니 우리나라와 모습이 비슷했다. 3,4층 건물에 각종 브랜드 가게가 들어서 있었고 도로를 따라 인도에 큰 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가로수길과 풍경이 비슷했다. 이때까지 일본이 우리나라와 다르다고 생각되었었는데 텐진 번화가에서 만큼은 달랐다.
텐진 거리에 들어서고 조금 걸으니 옆에 신사가 위치해있었다. 서울 가로수길에 뜬금없이 한옥으로 지어진 절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엥?'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왜인지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았다. 텐진의 거리를 걷다 보니 사람들의 활기찬 에너지가 느껴졌다. 다양한 문화가 혼합되어 있어 시선이 끌리는 요소들이 많았다.
텐진 거리를 활보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었다. 저녁 식사로는 야끼니꾸를 가기로 했다. 사실 야끼니꾸는 나와 친구가 일본을 다시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오사카에서 맛집을 찾아 들어가려 했지만 자리가 없어 실패하고 들어간 야끼니꾸 집이 너무 맛있었다. 한화로 약 8000원 정도 되는 가격에 소갈비살 8조각과 200엔 아사히 생맥주는 돈이 궁했던 나와 친구들에게는 천국이었다. 또 도톰한 우설을 구워서 먹었을 때 씹히는 우설만의 독특한 식감과 달달한 간장 소스 맛을 잊을 수 없었다.
그 집에 준하는 야끼니꾸를 찾기는 쉽지 않았고 텐진 근처의 적당한 야끼니꾸로 발걸음을 향했다. 가격이 비싼 탓에 많이 먹지는 못했다. 대신 맛은 보장되어 있었다. 늑간살은 입에서 녹았고 우설은 여전한 식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달달한 간장 소스만큼은 전국이 같은 제품을 사용하는지 맛이 똑같았다. 하지만 인생에서 맛은 그 순간뿐인 것일까. 오사카에서 느낀 감동이 밀려올만큼의 맛은 다시 오지 않았다.
나름대로 만족하고 입가심으로 냉면을 시켜보았는데 새콤하게 간한 것이 괜찮았다. 그런데 야끼니꾸 집에 왜 냉면을 파는지 궁금해 검색해보니 야끼니꾸의 유래가 재일 교포들이 일본에서 한국의 고기구이 문화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생긴 단어라고 한다. 어쩐지 김치도 파는 것이 이상하다 했다.
식당에서 제공하는 후식으로 푸딩을 먹어주고 식당을 나왔다.
호텔로 돌아가며 오늘을 되돌아보았다. 여행기를 작성하려고 중간중간 메모장에 메모한 것이 떠올랐다. 준비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여행을 다니다 한 생각을 적어두는 것은 여러모로 여행을 기억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여 바로 시작했다. 처음 이렇게 길게 써보는 글쓰기이지만 쓰다보면 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