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아나키즘 ⑮ - 모더와 해커: 유저의 권한 탈환

게임을 뜯고, 다시 쓰고, 시스템에 저항하는 사람들

by 엠알

게임은 원래 ‘정해진 세상’이다.


개발자가 규칙을 만들고, 환경을 설계하고, 목적을 설정한다. 유저는 그 틀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결국은 허락된 행동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구조에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있다.


모더(Modder), 해커(Hacker), 혹은 더 넓게는 게임을 ‘다시 쓰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발상은 이렇게 시작한다.


“왜 이 게임은 이래야만 하지?”


“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놀 수 없는 거지?”


이 글은 그 질문의 정당성을 다룬다. 모더와 해커는 단순한 유저가 아니다. 그들은 게임에 내재된 권위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와 가능성을 실험하는 디지털 아나키스트다.


모딩은 ‘개입’이 아니라 ‘해방’이다


모딩(Modding)은 게임을 해킹하거나 망가뜨리는 게 아니다. 정해진 규칙을 다시 해석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하는 창작 행위다.


엘더스크롤 V: 스카이림에서는 수천 개의 모드가 기존의 내러티브를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마인크래프트에서는 모딩을 통해 경제 시스템, 정치 시뮬레이션, 심지어 교육 콘텐츠까지 구현된다. 심즈의 특정 모드는 유저가 가족, 성별, 삶의 방식 등을 시스템이 허용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삶’을 재해석하게 만든다.


이것은 단순한 기능 추가가 아니다. “게임은 이래야 한다”는 통념 자체를 해체하는 실천이다.


해커는 통제를 거부하고, 시스템의 바깥을 상상한다


해킹(Hacking)은 기술적 행위이기 이전에 철학적 태도다.


– 왜 게임 내에서 특정 행동은 허용되지 않을까?

– 왜 세계는 고정되어야 할까?

– 왜 유저는 늘 순응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순간, 해커는 ‘시스템의 유저’가 아니라, ‘시스템 밖의 시민’이 된다.


특히 고전 게임의 롬 해킹(ROM hacking), 팬들이 만들어낸 언어 패치, 시스템 밸런스를 교란하는 이모탈 모드, 개발자도 상상하지 못한 플레이 시나리오 구현.


이 모든 해킹은 중심 권위로부터의 해방, 즉 아나키즘적 행동이다. 그것은 시스템을 무너뜨리려는 파괴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자유를 실험하려는 창조다.


유저가 개발자 위에 설 때, 무엇이 달라지는가?


모더와 해커의 등장은 게임 세계의 권력 구조를 흔든다. 개발자만이 세계의 규칙을 정의할 수 있었던 시대에서 유저가 직접 시스템을 분석하고, 변형하고, 새로운 규칙을 제안하는 시대로.


이 구조는 우리가 게임을 소비하는 방식뿐 아니라, ‘게임은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정치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유저 주권의 실현, 디지털 민주주의의 가능성, 소유 없는 창작 공동체 모딩 커뮤니티와 오픈소스 게임 문화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실험장이기도 하다.


통제와 자유의 경계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질서


아나키즘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다. 그것은 통제 없이도 질서가 가능한 사회, 권위 없이도 창작이 가능한 구조를 꿈꾼다. 모더와 해커는 그 꿈을 디지털 공간에서 구체화하는 이들이다. 규칙을 따르지 않지만, 새로운 규칙을 만든다. 시스템을 해체하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창조성을 이끌어낸다. 자유를 외치지만, 공동체적 윤리를 실천한다.


그들은 게임 세계의 비판적 시민이며, 디지털 아나키스트의 실현형이다.


게임을 다시 쓰는 사람들


모더와 해커는 단순한 기술자, 치터가 아니다. 그들은 질문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세계(게임)는 정말 이대로 괜찮은가?” 그들은 게임의 가장 깊은 규칙, 가장 억압적인 제한, 가장 고정된 질서에 손을 댄다. 그리고 그 손끝에서 우리는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본다. 권위 없는 창작, 자율적 세계, 자유로운 공동체.


그건 결국 우리가 아나키즘에서 바랐던 모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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