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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國造가 새겨진 거울



부산대학교 고고학과 4단계 BK21

동아시아 SAP 융합 인재 양성 사업팀

김지운 (석사과정, 참여대학원생)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거울을 보기 시작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거울은 청동기시대부터 등장하여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용된 시기는 매우 길지만 시기에 따라 사용방법은 다릅니다. 처음부터 거울이 현대와 같이 누구나 가질 수 있고, 겉모습을 확인하고 단장하기 위해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거울의 주된 용도가 현대와 같아지기 시작하는 것은 고려 시대로 추정됩니다. 고려 시대에는 이전 시기와 차원이 다른 수량의 거울이 발견 및 출토됩니다. 삼국~통일신라 시대만 해도 총 수량이 100여 점에 불과했지만, 고려 시대에는 3000여 점에 가까운 수량이 발견 및 출토됩니다. 물론 이 많은 거울이 모두 고려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한 시대 후기부터 한경과 같이 다른 나라에서 거울이 수입되고, 고려 시대에도 중국과 일본에서 거울이 수입됩니다. 그러나 고려 시대 거울 중에는 확실하게 고려에서 만들었다는 증거가 새겨진 거울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 거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高麗國造가 새겨진 거울, 국립중앙박물관

  사진의 거울은 어디서 만들었을까요? 정답은 거울에 새겨진 글자에 있습니다. 高麗國造, 고려국에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즉, 거울에 나라 명이 새겨진 것입니다. 이처럼 거울에 나라 명이 새겨진 것은 고려가 유일합니다. 


  그렇다면 왜 高麗國造, 나라 명을 새겼을까요? 쉽게 이해하기 위해 현재 우리가 쓰는 물건들을 생각해봅시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 가지고 있는 물건에는 made in korea, made in china 등 생산지가 적혀있습니다. 高麗國造는 그와 같은 기능을 한 명문입니다. 그러나 고려에서 만든 거울이라고 다 高麗國造가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려시대 수공업은 나라에서 운영하는 관영수공업과 개인이 운영하는 민영수공업으로 나뉩니다. 개인이 사는 지역명이 아닌, 국가명이 새겨진 高麗國造는 관영수공업자가 만든 거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高麗國造가 새겨진 거울은 국내 출토품보다 국외 출토품이 더 많습니다. 즉, 수출용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국외로 수출할 때, 고려에서 만든 거울의 우수성을 함께 알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고려만 거울에 지명을 새긴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지명 새김은 금나라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금나라와 고려의 차이는 금나라는 지역 명을 새기고 고려는 나라 명을 새긴 것입니다. 


湖州가 새겨진 거울 국립공주박물관

  이는 양국의 동 생산량이 차이 때문입니다. 중국은 금나라 이전, 당나라부터 동의 소비를 막는 정책을 시행했고, 해당 정책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동제품, 그중 거울에 대한 열망은 줄어들지 않았고 개인이 만드는 거울, 사주경(私鑄鏡)이 유행을 일으켰습니다. 이마저도 나라에서 제재를 가하니 한나라 거울의 문양을 본 따 만들고, 최근에 만든 것이 아닌 한나라 시대의 거울이라 우기는 고경(古鏡)이 유행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무분별한 사주경에 대한 대책으로 세운 것이 지명을 새긴 거울이었습니다. 그래서 금나라 거울은 호주(湖州), 소주(蘇州) 등 지명을 새긴 거울이 많으며, 해당 지역은 거울을 만든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려는 중국과 같은 이유로 나라명을 새긴 게 아닙니다. 중국과 달리 고려는 양질의 동이 생산되는 곳으로, 제재를 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려에서는 동제품을 자기와 함께 주요 수출품으로 내세웠습니다. 품질 좋은 고려 동은 많은 수요를 불렀고, 특히 국가가 선별한 장인들이 만든 거울은 더더욱 가치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高麗國造는 관영수공업품을 표시하는 명문이었지만, 국외 수출품으로는 하나의 브랜드를 상징했을거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 참고문헌 

박진경, 2021, 『고려·조선시대 동경(銅鏡) 연구』, 홍익대학교 박사학위논문

박진경, 2013, 「금계 고려경의 제작과 유통」, 『미술사학연구』 제279·280호, 한국미술사학회

이정신, 2006, 「고려시대 銅의 사용 현황과 銅所」, 『한국사학보』 25, 고려사학회

홍이경, 2013, 『三國·統一新羅 銅鏡 硏究』,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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