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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어서

by 은월 김혜숙

슬금슬금 하루 낮의

일거리들 보자기에 싸서

차곡차곡 눌려두는 저녁

시렁 위에 한없이 두었던

저녁이 옷을 털고 종일토록

애쓴 손아귀와 팔다리 눈 입을

헹궈내며 자기 차례를 맞는다

.

하루를 무엇 때문에 맑은

눈을 젖혀서 열어 두었으며

또 누구를 위한 종을 울렸을지

그 물음은 그들만 알 일

그러나 나에게는 하루를 부산히

주워 담던 죄악이든

넌지시 받아 든 가벼운 선이든

머릿속에 노트를 놓고 정리하다

.

앞산에

부챗살빛과 검게 포장된

서녘 능선을 보며 쓸모없는

문장들 펼쳐 보니 어느새

쇠진한 내 정신력을 꾸짖게 된다

.

접은 하루를 가만히

맥락을 잡고 어순과 행간과

낱말을 섞어 정리해 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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