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 균열
야간 근무를 하면서 아침에 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잠을 자느라 내려야 할 정류장을 몇 번이나 놓쳤었다.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며 자기도 했고,
무릎 위에 올린 가방에 기대어 자기도 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지는 날이 늘어났다.
아빠가 운전하던 차를 타고 출, 퇴근하기로 했다.
이전에도 언니가 출근하기 위해 차를 사기 전에 아빠 차를 가지고 다녔었다.
오래된 차였다.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 그리고 청년 시절을 함께 보냈다.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여행지까지 데려다주기도, 학교까지 태워다 주기도 한 차였다.
많은 추억이 담겨있지 않았지만, 기억 속 크고 작은 추억이 담겨있었다.
에어컨 온도를 표시해 주는 곳이 고장 나서 인지 보이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그래도 에어컨은 작동했으니까.
운전면허는 땄지만 운전을 해본 적이 없어서
아빠가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공터에서 운전을 배웠다.
집부터 회사까지 출, 퇴근하는 길을 연습해보기도 했다.
이 정도면 혼자 운전하고 다녀도 된다는
아빠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차를 가지고 다닐 수 있었다.
평소에 퇴근할 때면 누르던 1층이 아니라
지하층을 누르자 회사 사람들이 물어보기 시작했다.
차를 샀냐고 묻는 질문에 아빠가 운전하던 차를 운전하게 됐다며 짧게 대답을 마무리 지었다.
무슨 차냐고 대놓고 물어보진 않았다.
궁금해하는 듯했지만, 나서서 말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운전해서 출근하고 있었다.
건물 앞 횡단보도에서 걸으며 출근하던 박동훈 과장을 지나쳤다.
차를 쳐다보는 얼굴이 보였지만 굳이 인사를 하진 않았었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사무실로 갔다.
박동훈 과장을 포함한 몇 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빠르게 인사하며 지나치고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 하고 있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완전 오래된….”
“뭔데?”
“...아직도?....”
차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짐작했다.
기분 나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래된 차였는 걸.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노트북을 켜서 일을 했다.
박동훈 과장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지민 씨, 오늘 차 타고 왔어요?”
“네. 오늘 타고 왔어요.”
“르노 맞아요?”
“네, 좀 오래됐어요”.
“아.. 예”
옆까지 와서 물어보길래 고개를 돌려 맞다고 대답했다.
대답을 하고 나서 다시 모니터를 쳐다봤다.
마스크 안의 굳은 표정이 가려지지 않았지만, 가릴 수 없었다.
‘차에 대해 관심이 많구나’라고 생각했다.
‘왜 남의 차에 저렇게 관심을 가지지?’라는 생각도 했다.
이미 아빠가 타고 다니던 차라고 말을 했었는데,
저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속이 쓰렸다.
들리는 말에 대놓고 “왜 그런 식으로 말하세요?”라고 말하지 못한 나도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