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조각 26화

침묵 속 균열

by 동그리

앞 좌석에서 하는 말을 들으려고 앞으로 기울였던 몸을 바로 세웠다.

등을 기대고 차창 너머 달리는 차들을 보다 보니까 전에 탔던 다른 차가 생각났다.


아직 버스를 타고 출, 퇴근을 하던 때였다.

곧 퇴근 시간이 다가와서 텀블러를 탕비실에서 헹구고 왔었다.

자리에 앉기 전이었는데 나를 부르는 이종민 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회의를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오는 이종민 부장이 보였다.


“네. 부장님, 어떤 거 때문에 부르셨나요?”


자리 앞까지 다가온 이종민 부장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지민 씨, 오늘 퇴근하고 뭐 해?”

“네..?”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설마 뭐가 있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5초 정도 고민하다가 그냥 사실대로 말하는 게 제일 최선이겠다 싶어서 말을 꺼냈다.


“집에.. 갑니다.”

“잘됐네. 나도 오늘 금암동 가거든? 내가 태워줄게. 좋지?”

“네, 감사합니다!”


“퇴근하고 나서 건물 뒤편에 주차장 입구로 와”

“네. 알겠습니다.”


다행이다 싶은 마음과 편하게 갈 수 있겠다 싶은 마음에 대답이 빨라졌다.

어색함이 살짝 걱정됐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이득’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자리에 앉아 퇴근 준비를 마저 했다.

6시가 되고 나서 이종민 부장이 제일 일찍 사무실을 나섰다.


“난 오늘 먼저 가볼게! 이지민 사원 앞에서 보자고!”

“네!”


손을 흔들면서 팀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멀어지는 이종민 부장에게 대답을 하고 가방을 챙겼다.

가방을 메고 나서 갑자기 깨달은 게 있었다.


‘부장님 차를 내가 모르는데..? 큰일 났다.’


편하게 집에 갈 수 있어서 기뻤던 표정에서 순식간에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급하게 인사를 건네고 뛰기 시작했다.

신발장에서 허겁지겁 신발을 꺼내서 갈아 신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건물 뒤편 주차장 입구에 도착하고 나니까 다행히 길가에 세워져 나를 기다리는 듯해 보이는 차는 없었다.

주차장 입구 근처에 서서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차를 하나씩 살펴봤다.

망설임 없이 건물을 빠져나와서 다른 곳을 향하는 차들이 이어졌다.


‘오케이. 부장님 차는 아니고..’


이렇게 여러 대를 보고 났는데, 뭔가 천천히 움직이는 차 한 대가 보였다.


‘부장님 차인가..? 저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차를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에 다가가자 차에 타고 있던 분이 유리창을 내렸다.

이종민 부장이 아니었다.


“아, 죄송합니다.”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한 눈초리와 함께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유리창을 올린 분이 탄 차가 멀어졌다.

다시 입구 근처로 돌아가 몇 대의 차가 빠져나가는 걸 봤다.


“이지민 사원!”


유리창을 내리고 나를 부르는 이종민 부장의 모습이 보여

빠르게 차에 다가간 다음 문을 열어 조수석에 탔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는 길이니까. 금암동에 형님이 아직 살거든”


“아, 부장님은 지금 이사 가셨다고 하셨죠?”

“나는 한 20년 금암동 살았다가 작년에 이사했어.”


걱정했던 것만큼 할 이야기가 없지 않았다.

동네 이야기, 부서 업무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어느새 동네 근처였다.


“지민 씨, 툴툴이가 되면 안 돼.”

“네?”


“뭐만 하면 툴툴거리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소리야.

선배들한테 너무 물들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그때 이종민 부장이 뜬금없이 툴툴이 이야기를 꺼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누구를 지칭한 말이었는지도.


앞 좌석에서 쌍욕을 섞어가며 이종민 부장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하는 정광호 대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유리창에 고정한 채로 도로 위 차들의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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