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조각 37화

침묵 속 균열

by 동그리

앞에 놓인 그릇에 반찬이 거의 다 비워져 갈 때쯤 강정국 차장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지민 씨, 이기호 차장 너무 믿지 말아요. 이용할 거 다 이용하면 버리는 사람이야.”

“정말요?”


언제부턴가 강정국 차장이 자신과 이기호 차장을 비교하는 말들이 늘어났었다.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떨어지기 시작해 거리에 쌓이는 것처럼 비교가 쌓여 갔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더 빠르게 쌓이기 시작했다.


“저도 경험이 있어서 그래요.”

“어떤 경험이요..?”


안 좋은 경험이 떠올랐다는 듯 강정국 차장의 미간이 찌푸러져 있었다.

평소에 하던 말보다 더 본격적인 말에 무슨 이유가 있던 건지 저절로 궁금해졌다.


“이기호 차장이 승진한 거, 제 아이디어 덕분이에요.”

“아.. 정말요?”


“그때 승진해야 한다고 한 번만 도와 달라고 부탁해서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했어요.”

“아.... 그러셨군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더 자세히 듣고 싶었지만,

점심 식사 자리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듯싶어서 더 묻지 않았다.


‘과연 진짜일까?’ 싶은 의문도 올라왔지만,

그걸 물어보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입에 밥을 쑤셔 넣었다.


“아무튼 지민 씨, 너무 다 하겠다고 하지 말아요.”

“네. 조언 새겨듣겠습니다.”


강정국 차장의 말을 듣다 보니까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장면이 떠올랐다.

프로젝트의 결과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이기호 차장이 잠깐 자리로 오라며 불렀다.

대답을 하고 일어나 다가가자 이기호 차장이 비어있는 의자에 앉으라며 턱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이거 작성해야 해서 불렀어요.”

“네. 어떤 거요?”

“지민 씨가 했던 프로젝트.”


이기호 차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모니터에는 프로젝트 결과를 보고하기 위한 자료의 초안이 있었다.


“왜? 배신감 느끼냐?”

“아뇨. 뭐, 이미 알고 있었는데요. 어떤 거 말씀드리면 되나요?”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자, 잠깐 멈춰있던 이기호 차장이 업무 이야기를 이어갔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초반에 김명찬 대리에게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누군가의 성과가 되기 위한 업무가 될 거라는 걸.

다른 팀원들에게 말을 하면 이기호 차장이 반기지 않을 거라면서

김명찬 대리가 나만 알고 있으라며 말을 건넸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을 나오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강원국 차장도 이런 경험이었을까? 이거보단 더 본격적인 거겠지?

그때의 경험으로 이기호 차장이 그렇게 물었나?’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서 이어졌다.


“지민 씨, 커피 뭐 마실래요?”라고 묻는 질문에

그제야 커피숍에 들어왔다는 걸 알아채고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가 사드릴게요. 제가 사기도 해야죠.”

“그래요? 그럼 잘 마실게요.”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강정국 차장이 또 다른 주제를 꺼냈다.

“지민 씨, 김재원 사원 어때요?”라고 묻는 질문에 복잡한 생각이 떠올랐다.

대답을 망설이다가 아직 근무가 많이 안 겹쳐서 본 적이 별로 없다며 얼버무렸다.

신주영 대리에게 털어놓던 것처럼 쌓여있는 불만을 말할 수는 없었다.


“지민 씨는 괜찮나 보네? 형민이는 불만이 많던데”

“네? 최형민 과장님이요? 왜요?”


이건 이유를 물었다.

묻지 않고는 넘길 수 없었다.


“김재원 사원이 형민이 자존심을 자극했나 봐요.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말하는데 진짜 맞냐고 하면서”

“어.. 와우”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입 밖으로 표현했다.

나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는 게 충격적이어서 인지,

연차가 많이 차이 나는데도 그렇게 했다는 게 충격적이어서 인지 오히려 감탄사가 나와버렸다.


“하여튼 마음에 안 들어.”라고 중얼거리는 강정국 차장 옆에서

크게 동조를 표현하지 않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비어있는 술병이 어느새 늘어나 있었다.

가득 찬 잔을 비우고, 비워진 잔에 다시 채우고, 채워진 잔을 또 비우다 보니

다들 술이 많이 올라온 듯해 보였다.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다른 곳으로 이동해 더 마시자고 하는 동기들에게 겨우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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