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 균열
연초인데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승진자여서 그런 건지, 다른 팀원들에게 고과를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해서 인지,
팀에 사람이 줄어서 인지.
이유는 알기 어려웠다.
어느새 선배는 4명이 줄었고, 후배는 4명이 됐다.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팀을 위해서,
가감 없이 하자면 나를 위해서 만들었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시간 내에 끝내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전에 강예은 사원에게 들었던 방법이 떠올라 공유용 문서를 생성해 팀 내 폴더에 업로드했다.
다른 팀에서는 모르는 내용이 생기면 검색해 볼 수 있는 문서를 팀 단위로 같이 쓴다는 말을 들었었다.
문서에 기본적인 내용을 채워 넣은 다음,
팀원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강명호 차장에게 문서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자,
“있으면 좋겠네요. 근데 난 안 써야지.”라며 장난 식으로 대답을 했다.
그래도 한번 더 써달라고 말을 건넸다.
옆에 있던 박성민 사원이 “집단지성의 힘이 또 있으니까요.”라며 잘 쓰겠다는 말을 해왔다.
다른 날에 만난 이동윤 대리에게는 “있으면 좋지.”라는 말을 들었고,
김명찬 대리에게도 “있으면 주니어들한테 좋겠네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어지는 선배들의 대답을 듣다 보니 입사 초반이 떠올랐다.
다른 상황에서는 어떻게 업무를 진행하면 되냐고 묻는 질문에
이동윤 대리가 적어 두었던 문서를 확인하며 대답을 해주었다.
뒤에 있던 정인영 대리가 그 내용을 그냥 보내주라며 말을 건네왔지만, 전달받진 못했다.
수첩에 최대한 설명을 받아 적었다.
손으로 휘갈겨 쓴 페이지가 늘어날 때마다 노트북 속 문서에 옮겨 적었었다.
실수하고 혼나면서 배운 내용이 근무일에 비례해서 쌓여갔다.
욕먹으면서 배울 수 있었던 내용을 바로 보내줄 수 없었던 마음도 이해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나도 그러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또 다른 날에 만난 김재원 사원과 강예은 사원, 임현지 사원에게도 문서를 쓰자고 말했다.
다들 있으면 좋겠다며 써야겠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나 역시.
쓰는 사람은 쓰고, 쓰지 않는 사람은 쓰지 않았다.
쓰는 사람이 소수일 뿐.
하루는 근무를 하던 중에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빠져있었다.
오진철 과장이 사무실을 지나가다가 나를 발견하고 자리로 와서 말을 걸어왔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봐?”
“아, 팀 내 공유용 문서요.”
누가 말을 걸었는지 잠깐 옆을 바라봤다가 다시 모니터를 보면서 대답을 건넸다.
그러자 오진철 과장이 모니터 화면 속 내용을 확인하려고 고개를 내밀었다.
“이런 거 나도 해봤는데, 안돼.”
“해보셨어요?”
다른 팀이었지만, 이미 해봤다는 말에 놀라 고개를 돌려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해봤지. 근데 안되더라. 쓰는 사람만 쓰고, 안 쓰는 사람은 절대 안 써.
쓰다가 현타 와서 결국 흐지부지 되고 끝났어. 아저씨들은 안 쓰잖아.”
“저도 선배들은 기대 안 해요. 그래도 주니어들은 있으면 좋잖아요.”
내 말을 들은 오진철 과장의 표정이 살짝 달라졌다.
입을 잠깐 열었다가 다무는 게 보였다.
“다를 수도 있지. 열심히 해봐.”
“네. 또 쓸 수도 있잖아요?”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는 게 느껴져 잘 될 수도 있지 않냐고 물었다.
묻는 것보다는 자기 암시에 가까웠지만.
오진철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툭툭 치면서 잘해보라고 한 뒤에 담배를 피우러 사무실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