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조각 3화

침묵 속 균열

by 동그리

발을 멈춰 복도에 섰다.

문자를 먼저 해야 했다.


‘지금 회사인데, 시간 괜찮으세요?’


문자를 보내고 나서 거의 바로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에 있어?”

“엘리베이터 앞에 있어요”

“회의실에서 보자”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다시 회의실을 향해 갔다.

서류를 제출하고 노트북과 사원증을 반납해야 했다.

들고 있는 노트북 가방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다른 부서의 회의실과 노조 사무실을 지나쳤다.

사무실을 빠르게 나왔던 것과 달리 천천히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복도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걸음을 옮길수록 어두워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회의실 문 앞에 도착해서 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평소엔 열려있던 문이 잠겨져 있었다.

도어록 커버를 올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뒤 불을 켜고 책상에 노트북을 올려두었다.

손이 한결 가벼워진 걸 느끼며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자리에 앉아 노트북 가방 속 서류를 빼고, 사원증을 책상에 두었다.

곧이어 정명우 부장과 김보현 과장이 각자 노트북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와 앉았다.


가볍게 목례만 건네고 책상에 시선을 고정했다.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이네”

“네”

“서류는 다 작성했고?”

“네”

“고생했어요.”

“네”


반대편에 앉았던 정명우 부장이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했다.


“보현 과장이 서류 한번 더 확인해 줘.”

“네 부장님.”


바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가는 모습을 일부러 보지 않았다.

하지 못한 말이 곧 쏟아져 나올 듯 넘실거렸지만 끝까지 참았다.


“지민 씨, 서류는 다 작성하셨죠?”

“네. 여기요.”

“제가 한번 더 볼게요.”

“네”


“더 해야 하는 게 있나요?”

“노트북은 포맷하셨어요?”

“아니요.”

”그럼 해주실래요?”

“네”


가방에 넣어져 있던 노트북을 빼서 오랜만에 켰다.

‘비밀번호를 잊었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손이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화면이 켜지자 익숙한 파일들이 보였다.

메모장에 써둔 흔적들과 업무를 정리했던 내용이 있었다.


잠깐 파일을 눌러 안에 적었던 것들을 훑어봤다.

열심히 적었던 기록을 보다 보니 씁쓸함이 느껴졌다.

‘이걸 봐서 뭐 해’라는 생각과 함께 켜져 있던 창을 빠르게 껐다.

일단 바탕화면에 있던 파일들을 휴지통에 넣었다.


이제, 포맷을 해야 했다.

‘컴퓨터 포맷하는 법’을 검색했다.


누군가 올려놓은 글을 따라가면서 포맷을 하면 됐지만,

마음이 흔들려서 그런지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과장님, 혹시 포맷하는 방법 아시나요?”

“아.. 저도 잘 모르는데 잠시만요.”

“네”

“이렇게.. 하면 되는 것 같네요.”


김보현 과장이 노트북을 돌려 화면을 보여줬다.

다시 알려준 방법대로 하려고 손을 움직였다.

그런데 문득 ‘굳이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렌털 PC라 관리하는 쪽에서 다 지울 텐데.


“관리 부서에서 나중에 지우지 않나요?”

“음.. 네 그냥 두세요.”

“네”

“서류는 문제없네요.”

“그럼 가도 될까요?”

“네 가셔도 돼요.”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공간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회의실 문을 열고 나와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갔다.

누구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 많이 누르면 더 빨리 올 것처럼.


문이 열리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다 열리지 않았지만 바로 들어가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엘리베이터의 층수가 바뀌는 걸 바라봤다.


8F

7F

6F


너무 느리게 움직였다.

더 빨리 내려갔으면 했다.


1층에 도착하고 나서 문이 반쯤 열리기도 전에 내렸다.

건물 복도를 뛰다시피 걸어서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숨을 크게 내쉴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마음과 달리 파란 하늘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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