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 균열
잠깐 탕비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와 자리에 앉았는데,
끝 쪽에서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명찬 대리. 이거 지민 씨랑 같이 한번 해봐”
“지민 씨랑요? 이걸요?”
“응. 자네 혼자 하기에 많잖아”
“네.. 알겠습니다.”
내 이름이 들려와서 이기호 차장과 김명찬 대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뭘 같이 하라고 하나 봐. 뭘 하라고 하는 거지?’
대화를 마치고 김명찬 대리가 노트북을 들고 내 자리로 걸어왔다.
“지민 씨. 잠깐 시간 되세요?”
“네. 완전요”
비어있는 옆자리에서 의자를 빼 김명찬 대리가 앉았다.
“차장님이 지민 씨랑 이 업무 같이 해보라고 하셔서요.”
“네”
“잠깐 화면 같이 보실까요? 설명해 드릴게요”
“네”
간단하게 업무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설명을 들으며 받은 수첩에 휘갈겨 적었다.
김명찬 대리가 내가 따라 적는 속도를 보면서 말을 멈췄다가 이어가기를 반복했다.
“한 번 메일 보내보시겠어요?”
“네. 대리님 제가 작성하고 한번 먼저 보여드려도 될까요?”
“네 보여주세요”
“작성하고 바로 말씀드릴게요”
“네”
김명찬 대리가 노트북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수첩에 적었던 내용을 다시 한번 읽고, 노트북 화면을 바라봤다.
‘이 버튼을 먼저 눌러야 했지..’하면서
적었던 단계를 따라가면서 마우스를 클릭하기 시작했다.
‘아 들을 땐 쉬웠는데’
간단한 업무라고 받았는데 처음 하니까 너무 복잡했다.
이전 메일을 뒤져가며 초안을 작성했다.
김명찬 대리가 시범을 보일 때는 10분도 채 안 걸렸는데, 30분은 걸린 것 같았다.
드디어 마치고 고개를 돌려 김명기 대리 자리를 바라봤다.
일을 하고 있길래, 우선 노트북을 가지고 자리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옆에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불렀다.
“대리님”
“네, 지민 씨”
“메일 작성했는데 한 번 봐주실 수 있나요?”
“네, 한 번 볼까요”
자신 없는 손짓으로 노트북을 내밀어 초안을 보여줬다.
“잘하셨는데요? 메일 보내시면 되겠네요”
“그래요? 어디에 보내면 될까요?”
“잠깐 마우스 주실래요?”
“넵”
빠르게 마우스를 건넸다.
김명찬 대리가 조직도를 클릭해서 수신인과 참조인을 채우기 시작했다.
10명, 20명, 50명이 순식간에 채워졌다.
“자, 이제 보내시면 돼요.”
가져갔던 마우스를 다시 돌려주면서 김명찬 대리가 말했다.
“보내요?”
“네. 보내요”
혹시 본문에 오탈자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다시 한번 메일을 훑었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면 되는데, 계속 망설여졌다.
“지민 씨 보내요. 괜찮아요”
“네..!”
계속 마우스 위에 올려져 있던 손가락을 움직여 메일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도 메일이 왔다.
얼른 클릭해서 혹시 잘못 적은 부분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오탈자는 없었다.
“대리님 감사합니다.”
“네, 잘하셨어요.”
한결 편해진 발걸음으로 노트북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었지만, 혼자 뿌듯해하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그래도 하나라도 했다!’
적어 두었던 내용을 워드에 옮겨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적기 시작했다.
단계를 따라 한번 작성해 봐서 워드에 정리하는 건 수월했다.
다 적고 나서 메일을 다시 보는데 회신이 와있었다.
‘이지민 사원!
오랜만입니다.
벌써 업무 메일을 보냈네요.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네요.
앞으로도 응원합니다.
김태진 배상’
김태진 상무가 회신메일을 보내왔다.
인턴 때 배치받았던 센터의 상무였기에 안면이 있었다.
회신을 받았다는 사실에 신기함을 느꼈다.
뒤이어 박호원 상무도 회신 메일을 보냈다.
‘이지민 사원
첫 메일 잘 받았습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성능 향상에 도움이 되도록 잘 관리해 주세요.
박호원 드림’
반대편에 앉아있던 강명호 과장의 말이 작게 들려왔다.
“뭐야. 왜 상무들이 회신을 해.”
자리에 앉아있던 정광호 대리가 일어나서 내 자리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지민 씨, 김태진 상무 알아요?”
“아.. 제가 인턴 때 그 센터였어서요.”
“그래서 알아요? 무슨 메일을 전체 회신했대”
“어…. 그러게요”
“박호원 상무는 김태진 상무 메일 보고 부랴부랴 적었네”
멋쩍게 웃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큰 일인가? 메일에 회신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하면서 귀 뒤를 긁적였다.
정광호 대리가 몸을 돌려 반대편 자리에 있는 강명호 과장의 자리로 갔다.
“메일 회신해요~”
옆에 앉아 있던 정인영 대리가 메일에 답을 하라고 살짝 귀띔해 줬다.
“아 네. 감사합니다.”
김태진 상무에게는 잘 지내시냐고 하며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회신을 했다.
박호원 상무에게는 앞으로 관리 열심히 하겠다며 회신 감사하다고 보냈다.
오후가 금세 흘러 퇴근 시간이 됐다.
가방을 메고 자리를 돌아다니며 퇴근 인사를 건네고 신발장으로 갔다.
이름표가 벌써 붙어있었다.
신발장의 문을 열고 몸을 숙여 신발을 신고 일어났는데
박동훈 과장이 신발장 쪽으로 다가왔다.
“지민 씨. 멀리서 보면 학생인 줄 알겠어”
“네?”
“아니, 지민 씨 어려 보인다고”
“네.. 제가 어리죠”
신발을 신느라 흐트러진 가방을 다시 고쳐 메면서 대답을 하고
박동훈 과장을 스치며 가볍게 목례하고 출입문을 열었다.
‘학생 같다고? 학생 벗어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그렇지 뭐.’라고 생각하며
회사 건물을 나와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오늘은 그래도 일을 했다는 느낌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물론 버스를 타서 자리에 앉자마자 유리창에 머리를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