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먹었으니, 뛰자

문명과 몸 사이에서 윤리를 묻다

by 신아르케

인간은 왜 움직여야 하는가.
이 질문은 건강을 위한 습관이나 체중 조절을 위한 조언 이전의 문제다.
나는 여기에 다음과 같은 명제를 세운다.
“맛있게 먹었으니, 우리는 반드시 뛰어야 한다.”

이 명제는 식욕과 운동이라는 단순한 삶의 두 요소를 연결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 속에는 인간의 기원과 몸의 구조, 그리고 문명이 만들어낸 질서와 그로 인한 해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자리한다.
우리는 문명을 통해 편리함을 얻었지만, 동시에 몸의 질서로부터 멀어지는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그 대가는 병들고, 무기력하고, 무너져가는 신체와 정서, 그리고 존재의 방향 감각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 초원에서 등장했다.
그 시절의 인간은 걷고 달리며 살았다. 아직 한 곳에 머물며 살아가는 방식이 정착되기 전이었다.
생존은 끊임없는 이동을 전제로 했고,
걷지 않으면 먹을 수 없었고, 달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인류 진화의 대부분은 끊임없는 신체 활동과 맞물려 진행되었다.
우리는 그 시대에 형성된 신체 구조와 생리적 메커니즘을 여전히 갖고 살아간다.

하지만 생활 방식은 바뀌었다.
농사를 짓고, 마을을 만들고,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형태가 시작된 건 불과 몇 천 년 전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문명은 겨우 몇 세기 전에 만들어졌다.
몸이 변화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우리는 여전히 ‘달리도록 설계된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생활’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모순은 결국 신체적 병리와 정신적 침전이라는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수렵채집인의 하루 칼로리 섭취량은 2,000~4,000kcal로 현대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섭취 방식은 결정적으로 달랐다.
그들은 고섬유질, 고단백 식단을 바탕으로 하루 대부분을 걷고 달리며 에너지를 소모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먹는 행위는 반드시 움직이는 행위와 연결되어 있었다.
현대인은 정제된 탄수화물, 포화지방, 당류 중심의 식사를 하고도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같은 에너지를 섭취하면서도, 소비는 최소화되어 있다.
몸은 점점 축적되고, 정체되며, 서서히 무너진다.

결국 선택의 기로에 선다.
먹지 않거나, 뛰거나.
그러나 현실은 분명하다. 우리는 먹지 않을 수 없다.
현대 사회는 유혹에 가득한 사회이며,
맛있는 것을 참는다는 건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 고통이다.
절제의 윤리는 여전히 필요하지만,
음식을 향유하는 인간의 본성 자체를 죄책감으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나는 다른 방식의 원칙을 따른다.
먹었으니, 그만큼 뛰자.
몸이 요구하는 질서와 생리적 윤리를 회복하려는 결심이다.
이 명제는 단순한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육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생명의 리듬을 복원하려는 실존적 실천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 원칙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젊을 때는 하루 이틀 움직이지 않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중년이 되자, 하루만 가만히 있어도 몸이 무거워지고, 감정이 가라앉고, 사고가 흐려졌다.
움직이지 않으면 회복되지 않고, 살아 있다고 느끼기도 어려워진다.
쉼은 필요하지만, 진짜 회복은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매일 뛴다.
컨디션을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를 지탱하기 위해서다.

많은 이들이 배부르게 먹고 난 뒤, 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몸은 무너지고,
감각은 흐려지며, 존재의 에너지는 사라진다.
나는 그것을 조용한 자기 방임이자, 자기 파괴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무너지는 것은 단지 몸이 아니라,
그 몸과 연결된 감정, 정신, 삶 전체다.

먹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그 축복은 책임을 전제로 한다.
많이 먹는 만큼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몸을 거스르는 일이며,
생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삶의 태도다.

나는 다시 이 말을 되새긴다.
“맛있게 먹었으니, 오늘도 뛰자.”
이 문장은 다짐이자 실천이며,
몸에 대한 예의이고,
삶에 대한 책임이며,
존재에 대한 존중이다.

우리는 문명 속에 살지만,
우리 몸은 여전히 초원을 기억하고 있다.
달리던 근육, 걷던 심장, 뛰던 폐는 지금도 그 기억을 품고 있다.
그 기억을 저버리지 말자.

먹었다면, 뛰자.
그것이 인간으로 살아남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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