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철학이 없으면 삶은 세상의 시류에 떠밀려 흔들리고, 타인의 주장과 신념에 휘둘리기 쉽다. 자기 삶에 대한 확신과 뿌리가 없다면, 타인의 가치 기준 앞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나는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가?”라는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
최근 나는 유튜브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영상들을 보며 이러한 문제를 새삼 절감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한복판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영상과 자극적인 제목들은 대부분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다. 예컨대, 뉴욕 맨해튼 거리를 걷는 성공한 이들을 붙잡고 “당신의 연봉은 얼마입니까?”, “당신처럼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영상들이다.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철학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만, 그 기준은 대개 경제적 부와 사회적 성공에 맞춰져 있다.
나는 이 장면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왜 인생의 성공이 오직 돈으로만 규정되어야 하는가? 물론 나 역시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유일한 성공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누군가가 큰 부를 이루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 훌륭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성공에 이르는 과정이 성실과 정직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인간의 가치와 위대함은 결코 ‘부’라는 단일한 척도로 측정될 수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부를 강조한다. 경제적 성공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말은 힘을 잃고, 젊은 세대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나 역시 잠시 흔들렸다. 나이 들기 전에 도전하여 부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곧 정신을 가다듬고 나의 삶의 가치를 점검했다. 타인의 철학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뿌리를 확인했다. 각자의 삶은 모두 고유한 가치를 지니며,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마을버스 기사로 일하는 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큰 부를 소유하지 않았을지라도, 매일 승객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가족을 성실히 책임지고, 가까운 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면, 그는 이미 훌륭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에게는 큰 부가 거추장스러울 수 있으며, 소박하고 검소한 삶이 오히려 행복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덕과 공동체적 삶 속에서 찾았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내적 평정을 중시했다. 톨스토이는 부유함보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 속에서 인간의 참된 존엄을 보았다. 이들의 가르침은 한결같이, 진정한 삶의 가치는 물질적 부에 있지 않음을 일깨운다.
좋은 삶과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기준을 오직 돈으로 획일화하는 것은 옳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수많은 영상과 글,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는 여전히 “부를 쌓는 것이 곧 성공”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문제는 아직 가치관이 단단히 세워지지 않은 젊은 세대가 이러한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기성세대조차도 자기 철학을 세우지 못한다면, 이 흐름에 휘둘려 삶의 소중한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삶에 철학을 단단히 세워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외부의 자극과 비교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지켜내는 힘이다. 부가 아닌 철학이,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기 내면의 뿌리가, 결국 우리 삶을 가치 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