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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분야에서 자유에 이르는 신성한 길

by 신아르케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영역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 내가 말하는 자유란 거리낌이 없는 상태, 막힘이 없고 억눌림이 없는 상태, 마음만 먹으면 최선의 수행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완전한 숙달의 경지다.

가수라면 어떤 곡이든 자신만의 음색으로 소화할 수 있고, 축구 선수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먹은 대로 공을 다루며, 영어 교사라면 어떤 글도 단번에 핵심을 짚어내고, 어떤 음원도 정확히 듣고,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상태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달인, 장인이 되기를 갈망한다.

삶 속에서 그런 목표가 없다면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명해질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이름 없이 깊어지는 재야의 고수들이 많다. 예컨대 동네의 한 태권도 관장님을 떠올려 보자. 스무 살 무렵 무도의 길을 결심한 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권 지르기와 발차기 같은 훈련을 30년간 꾸준히 이어왔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보상이 있든 없든 성실히 훈련을 이어온 것이다. 때로는 발전이 없어 괴로웠겠지만, 그는 자신이 세운 뜻, 자기 분야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인간이 걸어야 할 도의 길이라 생각하며 존경한다.

나는 사람이 생명을 부여받을 때, 각자에게 감당해야 할 과업이 주어진다고 믿는다. 성경의 달란트 비유(마태복음 25:14–30) 는 그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맡겨진 것을 묻어 두지 않고 성실히 불려 주인에게 기쁨을 돌려드리는 삶. 신앙의 눈으로 보면 게으름은 경계해야 할 악습이고, 성실과 부지런함은 선하며 아름답다.

숙련은 요행이 아니다. 작은 단위를 꾸준히 쌓는 반복이 만든다. 무리한 폭주보다 지속 가능한 리듬이 중요하고,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과의 약속이 더 큰 동력이 된다. 오래된 성실은 기술을 넘어 품격이 되고, 그 단계에 이르면 수행은 종종 예술에 닿는다. 몸짓과 표정, 말과 행동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카리스마가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의 아름다움은 외모가 아니라, 숙련이 주는 자유의 빛이다. 오늘도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악보를 넘기며, 문장을 한 줄 더 다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객이 없더라도, 보상이 없어도, 막힘이 사라지는 그 순간을 향해 자유를 연습하는 삶. 그것이 내가 믿는 가장 바람직한 인간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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