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은 마음을 경(敬)으로 가다듬어 사사로운 욕망을 다스리고, 하늘의 이치를 마음속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그가 말한 공부는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마음을 바르게 세우는 수양의 길이었다. 조선 시대의 공부가 곧 독서 중심의 수행이었음을 생각하면, 책 읽기는 경을 실천하는 구체적 행위이기도 하다.
퇴계는 ‘거경궁리(居敬窮理)’를 강조했다. 경으로 마음을 안정시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한다는 뜻이다. 경의 상태란 마음이 고요하고 맑으며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이다. 산만한 욕망이나 분노, 외부 자극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잃지 않는 정신의 긴장 상태다. 이러한 마음의 평정은 우리가 깊이 몰입해 책을 읽을 때 경험하는 집중의 상태와 닮아 있다.
따라서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 행위가 아니라, 경을 훈련하는 하나의 마음 수련이 된다. 몰입하여 읽는 동안 우리의 마음은 맑아지고, 고요해지며, 한 가지에 전념하게 된다. 반대로 평소에 마음을 고요하고 안정되게 유지할수록 독서 또한 깊어진다. 경과 독서는 서로를 길러내는 상호적 수련 관계에 있는 것이다.
분노나 불안이 일어나는 순간에도 마음을 다스리려는 사람은, 내면의 평정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는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경으로 지키려는 훈련된 태도다. 이렇게 보면, 독서를 일상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경의 훈련을 이어가는 셈이다.
나는 이 가능성에 주목한다. 책 읽기를 통해 경의 정신을 길러내고, 마음을 맑히며, 하늘의 이치를 내면에 구현해 나가고자 한다. 경은 나에게 손해를 감수하며 억지로 실천해야 하는 고행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이롭게 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며, 신의 뜻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삶의 기술이다.
오늘 한 권의 책을 집중하여 읽는 일, 그 자체가 이미 경의 실천이다.
경은 멀리 있지 않다. 책을 펼치는 그 순간, 우리의 마음은 이미 경으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