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바라보는 일

by 신아르케

우리는 흔히 사람을 ‘내 기준’으로 평가한다.
누군가의 성실함, 이해력, 도덕성, 책임감까지도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과 가치들로 잰다. 문제는 이 기준이 언제나 옳지 않다는 데 있다. 잘못 세운 기대는 상대의 실제 모습과 어긋나기 마련이고, 그 어긋남은 실망·분노·격한 감정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온다.

나는 종종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실망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낸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의 감정은 상대의 잘못 때문이라기보다, 내가 그 사람을 실제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려놓았던 기대 때문이었다. 즉, 분노의 뿌리는 타인의 결함이 아니라 내가 만든 허상이었다.

그래서 사람을 평가할 때, 우리는 먼저 ‘내 기준’을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기질과 능력을 지녔는지, 무엇에 어려움을 느끼고 어떤 문제 앞에서 주저하는지…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이해하는 과정이 먼저여야 한다.
이 이해 없이 내 기준만 앞세우면, 평가는 왜곡되고 감정은 소모된다.

교사라는 역할에서는 이 점이 특히 중요하다.
학생들은 모두 다르다. 이해력도, 암기력도, 집중력도, 성실함도, 정직성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내가 특정 학생에게 과도한 기준을 세우면,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나는 불필요한 실망과 분노를 경험한다. 이는 학생의 문제가 아니다. 내 기대가 학생을 왜곡한 것이다.

학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객관적 평가의 출발점이다.
그 지점에서 출발할 때, 우리는 학생의 수준과 형편에 맞는 방식으로 지도할 수 있고, 서로 감정을 소모할 이유도 줄어든다. 기대를 현실에 맞추어 조정하는 것, 그것이 교육에서의 지혜다.

이 관점은 학생뿐 아니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떤 사람은 착하지만 용기가 부족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선한 이미지를 유지하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책임을 회피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두려워해 말을 돌릴 수도 있다.

이 모든 성향은 그 사람의 ‘결함’이기 이전에 그 사람이 가진 있는 그대로의 조건들이다.
문제는 내가 그 사람에게 비현실적인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분노하거나 비판하는 나의 태도에 있다. 감정의 소모는 상대가 아니라 내 잘못된 판단에서 시작된다.

이런 성찰은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말하는 인간관과도 닮아 있다.
홉스는 인간을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자기보존과 두려움, 이익추구라는 본성을 지닌 존재로 보았다.
그렇다면 문제는 인간이 부족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에게 지나치게 완벽한 모습을 기대하는 데 있다.
인간을 현실의 모습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홉스가 말한 자연 상태를 직시하는 태도이자, 관계에서 불필요한 감정을 덜어내는 지혜일 것이다.

결국, 내가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그 사람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비추는 일이다.
타인에게 과한 기준과 불필요한 기대를 내려놓고, 그 사람이 가진 그대로의 모습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그곳에서 비로소, 객관적인 평가도, 건강한 관계도, 올바른 감정도 가능해진다.

오늘의 지혜는 이것이다.
기준을 사람에게 강요하지 말고, 사람에 맞추어 기준을 세우라.
그것이 타인을 이해하고 나를 지키는 가장 성숙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