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일까?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 마카세] 연재물입니다.
“Do what you love, love what you do!”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였다. 항상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 했고,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진심으로 사랑하려고 했다. 그러나 진로나 중요한 결정을 앞에 두고 누구나 괴로울 것이다. 이 길로 가는 게 좋을까? 저 길로 가는 게 좋을까? 양 갈래 길 앞에 서서 고민하는 것은 인간이 이성적 사고를 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이성”이란 무엇인가? 어떤 결정이 “이성적”으로 잘 판단했다고 말할 수 있지? 마음으로 하는 것과 이성으로 하는 것, 나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괴로웠다. 그리고 누구나 괴로울 것이다.
오늘의 주제는 국제정치학적으로 접근해 보려고 한다. “교수님, ‘이성’이란 무엇인가요?” 대학교 2학년 한 전공 수업 때 한 질문이었다. 국제정치이론에선 ‘이성’이란 개념이 많이 등장한다. 행위체(actors, 국가, 국제기구, 다국적 기업 등)가 이성적 행동(rational behavior)을 한다는 것은 현실주의 이론의 기본 전제이다. 그러나 행위체가 완전한 이성적 행동을 도출해 내지 못한다는 것이 자유주의와 구성주의 학자들의 주장이었다. 예컨대 1950년 중국인민지원군은 압록강을 건너 북한을 지지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중국이 이루고자 하는 ‘조국통일’이라는 국가 핵심이익과 맞지 않은 결정이었다. 모택동이 정권을 장악하고 중국을 통일하려는 데 대만이라는 곳이 남아 있었다. 병력을 장제스가 있는 대만으로 향해야 하는데 모택동에게 스탈린으로부터 한국전쟁에 참여하라는 텔레그램을 받게 된다. 이때, 두 갈래 길 앞에 선 모택동은 선택해야만 했다. 병력을 대만으로 향할 것이냐, 북한으로 향할 것이냐. 여러 논의가 공산당 내부에서 이뤄졌지만 모택동은 결국 ‘사회주의’라는 정체성을 택하게 된다.
그럼 이성적 행동이란 무엇인가? 교수님께서는 국제정치이론이 경제학 이론에 기반하여 생겨났기에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이 이성적 행동이라고 하셨다. 합리적 선택이란 개인의 비용과 편익을 비교하여 최적의 결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택동의 선택이 과연 합리적이었는가? 만약 사회주의 진영의 굳건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면 그의 선택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중국의 핵심이익이 조국통 일라하면 그의 선택은 역사상 최대의 실수가 될 것이다. 즉, 목표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행위가 이성적인지 비이성적인지 판단하게 된 다는 것이다. 그럼 목표는 누가 정할까? ‘나’라는 행위체이다. 이 말은 제 아무리 소위 ‘이성적 행위’를 할지 언정 그 행위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이라는 것이다.
국제정치를 계속 공부하는 것과 십몇 년 공부한 것을 내려두고 요가하는 것 사이에서 나는 고뇌에 빠졌다. 어떤 것이 이성적인 최선의 선택이고 어떤 것이 내 가슴으로 하는 선택인지 수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모택동이 두 갈래 선택지 앞에서 고민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무엇을 목표로 하지? ‘나’는 누구지? ‘나’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괴로웠다. 내가 고통스러운 이유가 ‘십몇 년 공부한 것’을 집착하여 그런 것일까? 내려놓을 용기가 없어서 괴로운 것일까? 아니면 ‘나’는 내가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착각을 했었던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선택이 합리적이며, 그것의 주체인 ‘나’는 누구인가. 눈앞에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그저 호흡하는 연습을 했다. 모든 생각을 잠시 멈춰두고 그저 호흡했다. 오늘의 생각은 여기까지.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했다. 노력하지 않으려 애썼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다. ‘나’를 보기 위해서.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