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마음이 답답하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먹구름이 앞을 가려 도무지 나아갈 수가 없었다. 고요한 숲 속에 들어가 수행에만 전념하고 싶었다.
일단 무어라도 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검색하기였다. 내가 한국에서 수행에 전념하며 살려면 무엇이 필요하지? 한국에선 요기니로 은둔생활이 어려우니 스님이 되어 고요하게 수행에 전념할까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데 다양한 절과 다양한 종파, 또 스님이 되기 위한 과정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불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나에게는 너무 막막한 과제였다. ‘스님 체험하기’라는 게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게 있을까?
“오대산 월정사 출가학교 모집안내.”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원했던 ‘스님 체험하기’가 아닌가. 그러나,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다. ‘삭. 발.’ 내가 과연 삭발할 용기가 있을까?
이런 마음이 드는 순간 나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다 내려놓고 수행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내가 머리카락 한 줌 무엇이라고 버리기 두려워할까. 역시, 나는 아직 집착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구나 자책을 해본다. 그리고 삭발을 한 뒤 머리카락이 다시 생기기까지 몇 달의 시간이 걸리나 검색해 본다. 정말이지, 수행에만 전념하고 싶은 게 맞을까? 의심스럽다. 나 자신이 가소로웠다.
1박 2일 템플스테이는 나를 되돌아볼 시간으로 턱없이 부족할 것 같았다. 또, 여러 명상 프로그램은 잠시의 멈춤이지 나를 온전히 수행의 길로 접어들게 하는 문턱은 아닌 것 같았다. 이것저것 찾아보니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은 2박 3일 안동 봉정사 템플스테이를 마친 뒤 안동에서 한 달 머무르는 것이었다. 안동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 당시 유일한 2박 3일 템플스테이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안동으로 떠나기 전 내가 해야 할 것은 두 가지. 퇴사할 마음가짐과 떠날 마음가짐, 그리고 퇴사와 서울과의 작별이었다. 박사 진학을 준비하며 교수님 연구실에서 연구조교와 비슷한 일을 하며 지냈다. 이번에 떨어졌으니 다음에는 논문 한 편 투고해 역량을 키우면 될 것이라 하셨다. 그리고 논문을 쓰기 위해 이런저런 주제도 던져 주시고 다양한 논문을 읽게 하셨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굳건했다.
“교수님, 저는 떠나겠습니다. 박사의 꿈은 이제 접어두려고 합니다. 일은 다음 달까지만 하겠습니다. 저는 요가가 좋습니다. 아니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떠나 저를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요새 잠은 잘 자니?”
교수님의 따뜻한 질문이 어찌나 감동스러운지 포근한 이불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잠은 잘 잡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연구하시는 동안 힘들지 않으셨나요?”
“외롭지, 고단하고. 그런데 힘들지는 않았어.”
“불교철학에서 인간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제가 지금 고통스러운 이유는 어떤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 일까요?”
“공(空)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구나.”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집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집착이 맞는 건지.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거듭할 때마다 숨이 가빠졌다. 답답했다. 막막했다. 머리가 아팠다. 그만… 멈춰야만 했다.
“그래, 너의 생각이 확고하다면 가야지. 어디로 간다고?”
“안동의 봉정사로 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나는 요가 지도자 과정도 멈추고, 논문 투고도 멈추고 서울을 떠났다. 모든 SNS를 지우고 문자만 남겨 둔 채 떠났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행’하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