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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집착과 노력 사이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헥, 헥, 헥, 헥. 거친 숨소리, 두근 거리는 가슴, 멈춰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관성의 힘일까? 멈출 수가 없다. 나는 마치 경주마처럼 달리고 있다. 어디로 향해 달리는지 모르지만 일단 앞으로 전진해 나가고 있다.


“너 이러다가 쓰러질 것 같아.” 친구들의 애정 어린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피 흘리며 걷고 있었다. 앞으로 달려간 그 자리에 행여나 꽃 밭이 있진 않을까, 달려간 그 자리에 새로운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 힘듦과 기대라는 모순된 감정과 함께 나는 달리고 있었다. 또 달려가는 나에게 ‘열심히 살고 있구나,’ ‘정말 대단하구나,’ ‘너처럼 살아야지,’라는 박수갈채에 내 발은 멈추는 법을 잊었다. 그렇게 나는 힘든 몸을 이끌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6:30 am, 지체 없이 일어나 준비를 해야 한다. 오늘도 밀려 있는 논문과 책 더미 속에서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아야만 할까? 아니다, 나는 군계일학이어야 한다. 그냥 단순히 학위만 받자고 하는 공부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왠지 모를 지적 호기심이 들끓었다.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자 하는 욕망도 강했다. 그리고 이런 지적 호기심을 나누는 학교와 친구들이 좋았다. 여기(학교)는 나의 가슴을 뛰게 하면서도 피폐하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12:00 pm 점심 먹을 시간조차 너무 아깝다. 어쨌든 재빨리 책상으로 돌아와 학업에 전념해야 한다. 수업시간에 예리한 질문과 완벽한 발표를 위해서 나는 지금 숨 쉴 시간조차 부족하다. 18:00 pm 내가 봐도 내가 얼마나 지독하던지 식단은 꼭 지켜야 한다. 닭가슴살 한 덩이에 아보카도 반 개, 호밀빵 한 조각이면 탄단지 완벽하다. 오늘도 마무리되어 가는데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초 집중 상태에 접어든다. 19:00 pm 일단 나가자. 요가는 해야 한다. 20:20 pm 사실 나는 숨 쉬는 동물이라는 것을 요가가 상기시켜 준다. 그래, 숨 쉬자.


23:00 pm 마지막 한 시간만 더 달려 보자. 오늘 할 일은 최대한 오늘 끝내 보자. 00:00 am 일단 자야 한다. 내일 1분 1초라고 허투루 보내기 싫거든 뇌가 맑아야 한다. 6:30 am, 다시 지체 없이 기상한다. 그리고 오늘도 또 나 자신과 고군분투한다. 그렇게 나에게 보내는 채찍질은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나는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던가?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 고 있던 나는 ‘나’를 잃었다. “여기가 어디지? 나는 왜 여기에 와 있지? 나는 누구지?” 열심히 달려온 그 자리에 그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공간에 나 홀로 외롭게 서 있었다. 너무나도 외로워 숨 쉴 수 없었다. 숨 쉬는 법을 잊어 나의 몸은 피폐해져 갔다. 악순환이다. 그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빠져나올 수 없었다. 무너진 터널 밑에 깔려 제 아무리 소리쳐도 아무도 구조하러 오지 못했다. 나의 마음은 울부짖었지만 나는 웃고 있었기 때문일까?


번아웃을 넘어 나는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경험해야 했다. 끔찍했다. 그러나 정신건강질환은 신경계에 문제가 온 것이기에 치료받으면 될 일이다. 그리고 꼭 전하고 싶다. 당신의 몸에 어떤 이상한 신호가 오거든 꼭 병원에 가봐야 한다. 우리도 모르게 감기에 걸리고, 접질리고, 어딘가 문제가 생기듯이, 당신이 아픈 건 당신 탓이 아니고,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냥 ‘그것’ 일뿐이다. 어찌 됐건 2년의 시간을 거쳐 나는 드디어 약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계속해보자. 그런데 너무나도 하기 싫다. 왜지? 내가 좋아하는 건데, 왜 하기 싫을까? 공부 외에 다른 길을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이제 무엇을 먹고살아야 하나. 나는 어떤 가치관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하나. 나는 나의 어떤 가치를 이 사회에 공헌해야 하나. 도무지 모르겠다. 앞이 깜깜하다. 또다시,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박사합격 통지서를 못 받은 한 번의 좌절이 나를 이렇게 낙심하게 할 일인가? 그만할까? 요가나 하면서 살까? 아니다, 지금까지 악착같이 공부한 세월이 몇 년인데 이제 와서 포기를 해? 이것은 박사를 향한 집착인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 나는 괴로운 것일까? 그런데 나는 고작 한 번의 도전만 있었다. 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노력은 무엇이며, 집착은 무엇일까? 붓다는 왜 집착에 대한 정의를 주지 않으셨을까. 절에 들어가 스님께 질문하면 해답을 찾을 수 있으려나? 만약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집착이라면 과감하게 버릴 것이며,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노력이면 ‘조금 만 더’를 외쳐보자. 도대체 내가 하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 노력의 일부일까, 집착일까?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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