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나에게는 7살 터울 언니가 있다. 초등학교 때 MBTI가 유행했더라면 분명 언니가 100% T이고, 나는 100% F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을 거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 뱃속 주소만 같았지 언니와 나는 성격부터 자라 온 환경까지 달랐다. 나머지는 맞춰갈 수 있다 할 수 있지만 나이 차이에서 오는 격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내가 막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언니는 교복을 맞추고 중학교를 입학했으니. 친구들과 유명한 아이돌 CD를 사 하루종일 듣고 있는 언니와 이제 막 포켓몬스터 입문한 내가 어떤 공감대를 이루고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우린 그렇게 각자 자발적인 외동으로 지내다 내가 10살 때 언니는 유학을 가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언니와 나는 사는 집도 다른 공식적인 외동이 되었다.
“엄마 왜 난 동생이 없어?” 그때 당시 나는 입버릇처럼 엄마한테 말했다. 아무리 외동이라도 언니는 존재하는 사람이니 나는 줄곧 보이지 않는 동생을 찾았다. 24시간 붙어 같이 놀 대상이 필요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러게, 한 명 더 낳을걸. 우리 윤아 외롭지 않게”라고 아쉬움을 더했다. 나도 7살이 훌쩍 넘었으니 엄마도 나와 7 살 터울이 훌쩍 날 동생을 한 명 더 낳는 건 무리였다. 나도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걸 눈치챘는지 유독 이웃집 동생을 친언니처럼 잘 챙겨줬고, 유일한 사촌 동생 한 명을 내 동생으로 생각하며 자주 붙어 다녔다. 어린이를 좋아하는 성향은 아마 이때부터 잔잔하게 피어오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아기를 낳으면 꼭 세명을 낳아야지 다짐했다.
언니 유학 생활은 길거라 생각했지만 미국에서 형부를 만나니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더 길어졌다. 그러고 2년 뒤 첫 조카가 태어났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이쁜 첫 조카. 미국에서 자라고 있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첫 조카도 영상통화가 전부란 사실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지금은 영상 통화라도 할 수 있는 시대가 어디야 라는 생각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2년 뒤, 또다시 이쁜 조카가 태어났다. 오죽하면 언니가 나를 낳았네라고 온 가족이 이야기할 정도로 정말 나를 많이 닮았다. 한국에 잠깐 왔다 다시 두 조카들이 미국으로 가는 날이면 언니를 미국으로 떠나보낸 첫날처럼 아쉬움에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그래도 어떻게? 이게 내 운명인데”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로부터 셋째 임신 소식을 듣게 되었다. 타지에서 혼자 육아를 하는 상황이라 2명도 무리라 생각했는데 3명이라니. 하하하. 우리 가족은 웃음이 절로 나와버렸다. 언니도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는지 형부와 언니는 25년 동안 생활한 미국을 정리하고 육아를 도와줄 손길을 찾아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렇게 언니와 생이별을 하던 나의 25년 인생도 조카들 덕분에 다시 한 지붕에 살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언니, 형부, 그리고 사랑하는 조카 3명까지 같은 땅을 밟으며 살게 되었다.
아, 같은 대한민국에서 땅만 같이 밟을 줄 알았는데, 언니 가족은 새 보금자리를 우리 집 아래층으로 마련했다. 자전거도, 버스도, 지하철도 아닌 엘리베이터 하나로 아무 때나 서로에게 오고 갈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나도 이때쯤이면 독립을 하고 아이를 언제라도 한 명을 날 수 있는 환경으로 세 아이를 낳는 꿈에 가까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32살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아이는커녕, 아직도 부모님과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 그리고 난 조카 3명과 함께 사는 이모가 되었다.
지금도 가끔 엄마한테 동생과 와 사이가 좋은 친구 이야기를 하면 “왜 난 동생이 없어?”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너네 언니가 낳아줬잖아, 그것도 3명이나”라고 한다. 가끔은 언니가 세명의 엄마가 된 건 나 때문인가 라는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줄곧 혼자 살았던 내가 언니와 함께 살고, 조카가 3명이 생기고 대가족생활이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상상도 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지금은 동생이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온 가족이 모여 아이 세명을 직접 키우니 나의 오랜 자녀 계획은 점점 흐려지고 있지만 괜찮다. 조카로 내가 와준 동생들이 있어 참 다행이다.
[요마카세] 목요일 : 어린이의 위로
작가 : 아리
소개 : 어쩌다 조카 3명과 살게 된 싱글레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