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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이도저도 인생 1회 차

이도저도 안될까 봐 무섭다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나한테 ‘다 좋아하는 거는 좋아하는 게 없는 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이 기억나는 이유는 아마 그때 진짜 억울했나 보다. 왜냐하면 나는 진짜 다 좋아했다. 자전거 타기도, 점심시간 피구도, 단소 불기도, 현미경으로 세포관찰하기도, 바느질하기도,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 다 좋아한다고 했을 뿐인데, 순식간에 좋아하는 게 없는 애가 되어버렸다.

난 진짜 다 진심으로 다 좋아한다고

고등학생 때는 집 앞에 있는 예고 교복을 입은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저 친구들은 적어도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진작에 알아서 벌써 진로를 정했네 라는 생각에. (물론 그들도 속사정이 있었겠지)


재수를 하고 세 개의 학교를 지원했는데 세 학교의 학과가 다 달랐다. 아동가족학과, 실내건축학과, 디지털미디어학과. 세 개를 다 다니라면 다닐 수 있을 만큼 재미있어 보였다. 세 개 다 합격을 했을 때, 그나마 통학하기 쉽고 더 재미있어 보이는 디지털미디어학과를 갔다.


그런데 어째 나랑 똑같은 학과를 알아보고 갔는지, 프로그래밍, 영상, 포토샵, 카메라 등 진짜 별거를 다 배우는, 이도저도 아닌 학과를 갔다. 이도저도 다 배웠는데,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라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뒤늦게 개발이란 스킬을 잡아서 약 5년 정도 일을 했다.


그러다 지금 뜬금없이(는 남들 눈에만)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이도저도 다하는 삶을 살고 있다. 식당에서 알바를 하고,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고, 세렌디피티라는 공간에서 커뮤니티사업(?)을 하고 있다. 특히 커뮤니티사업은 정말 이도저도의 끝판왕을 달리고 있다. 섭외를 하고, 미팅을 하고, 기획을 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홍보를 하고, 진행도 하고, 촬영도 하고 정말 내가 할 줄 아는 것들은 다 끌어다가 하고 있다. (그중에 아직 개발스킬은 사용 안 하는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여기저기 관심이 많아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호기심은 꾸준히 왕성했고, 이런 커뮤니티사업은 모양이나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어도 계속해서 그려왔던 그림이긴 했다. 하지만 막상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벌려고 하니 할 수 있는 반강제로 이도, 저도 다 하고는 있는데 이게 잘하고 있는 건지, 잘 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물론 뭐 얼마나 많이, 오래 한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매일매일 내 체력과 재능을 영끌하는데 비해 뭐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현타가 자주 온다. (아마 회사 다닐 때에 비해 체력 시간 돈이 모두 사라져서 그럴 수도)

통장 볼때, 시간 볼때, 해야할 일 볼때… 매순간이 현타

엄마말처럼 다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게 없다는 말처럼, 이도저도 다 하다가 아무것도 안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눈을 깜빡이는 순간만큼 자주 든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싶다. 돌이켜보면 3N년동안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도저도의 삶이 내 선택이고 내 천성이라면 이도저도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닫든가, 아니면 이도저도 하다가 잘 되든가 둘 중 하나라도 배우겠지.



[요마카세] 작품명 : 이도저도 인생

작가명: 리엠

소개: 삶이 이도저도 아닌 것 같아, 이도저도 다 해보면서 살아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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