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화요일] 이도저도 인생 3회 차 (완)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운동을 하면서 만나는 모임을 제외하고, 나는 어디를 가나 ‘운동에 미쳐있는 애’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딱히 부정을 안 하는 이유는 해야 할걸 하는 시간이 아니고서는 항상 운동밖에 안 한다. 회사를 다닐 땐 출근 전에 운동하고, 퇴근하고 운동하고. 연차 쓴 날은 아침에 운동하고 산책하고 또 운동하고… 뭐 그랬었다. 뭔 운동을 그렇게 자주 하냐고 물어보면 ‘다 다른 운동이야! 자극이 다 달라’라고 말한다.


근 6년 동안 굵직하게 러닝, 수영, 웨이트, 요가, 발레, 필라테스, F45, 크로스핏, 파워리프팅을 해왔다. 못해도 하나를 6개월 이상 배우고 이것저것 다양하게 섞어가면서 다 하고 있다. 운동을 꾸준히 하게 된 계기가 뭐였더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학창 시절에는 점심시간마다 뛰쳐나가서 피구를 했고 공이 없으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몸을 날려가면서 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었다.


어릴 때부터 체력이 넘쳐흐르고 힘이 좋아서 그런지 어떤 운동을 해도 금방 중간정도는 했다. 그런데 기술이나 몸을 쓰는 건 좀 부족해서 그 이상은 금방 가지 못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힘이 좋아서 냅다 힘부터 쓰려니까 기술을 못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실력이 안 늘 거나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 즈음에 항상 그만두고 다른 운동으로 옮겨갔다.


image (1).png 그럼 저는 100점 받을게요

그러다가 크로스핏을 처음 접했는데, 이건 일단 힘으로 냅다 하다 보면 기술도 자연스럽게 생기기 딱 좋은 운동 같았다. 물론 여기서도 요령이 없어서 뭘 해도 남들보다는 조금 오래 걸리는 편이지만 그래도 여기서 마주치는 허들은 내가 조금만 더 하면 깰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어서 좋았다. 그리고 365일의 운동이 있다면 못해도 300번 정도는 매일이 다른 운동, 다른 맛이어서 이도저도 다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딱 어울리는 운동이 아니었나 싶다. 그 덕분에 저 위의 운동들 중 주종목(?) 삼은 운동 중에서는 제일 오랫동안 해왔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잠시 쉬고 있지만… 언젠간 돌아가리..)


사실 주변에 하도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그들과 비교하면 그냥 내가 하는 운동의 종류와 강도가 그냥 평이한 수준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데, 이 정도면 또 아주 일반적이진 않긴 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가진 것으로 이용해서 이도저도 해보면서 제일 쉽게 도전해 보고 리스크가 적은 게 운동이 아닌가. 이렇게 여러 개의 운동을 찍먹하고 갈아치워 왔던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재미가 없어져서’였다. 그 이유가 실력이 늘지 않거나, 선생님이 자꾸 혼내거나, 어느 정도 수준이 되니까 시시하게 느껴지는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에는 권태로움이 나를 다른 운동으로 옮겨가게 했다.


쉽게 권태감을 느끼는 건 어떻게 보면 내 큰 단점이기도 하다. 뭐 하나 진득하게 하지 못한다는 그런 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이런 부정적인 평가에 나는 내가 왜 그랬냐면…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내 생각과 상황을 근거로 들어 나를 변명해 왔었다. 그런데 내가 운동뿐만이 아니더라도 권태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불법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는데 ‘너는 진득하지 못해’라는 평가에 대해 변명을 하거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있나? 싶다.


image (2).png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어서, 나에 대한 평가는 늘 변명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나는 권태로움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언제나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주변 자극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이도저도 다 해본 덕분에 어떤 운동이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내 몸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고 어떤 심신의 안정을 주고 어떤 성장을 느끼고 어떤 도움을 주는지 그 차이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나한테 필요한 운동이 뭔지 적어도 내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 그것들을 잘 활용할 수 있다.


뭐든 내가 깨달은 건 인생에 대입해도 다를 건 없다. 이도저도 다 해봐야 만족하는 성격에 좀 하나를 진득하게 하라는 그 말에 아직도 뜨끔하긴 하지만, 굳이 그 말을 내가 또 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도저도 한 게 어찌 보면 나의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나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이런 경험 한 사람 생각보다 쉽게 볼 수 없을걸? 진득하게 하는 사람은 진득한 사람의 무기가 있듯 나도 나의 무기가 있는 거지.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그 범위 안에서는 정말 이도저도 다해보고 앞으로 고 아마 그럴 것 같다. 지금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크로스핏이 아닌 파워리프팅을 하는 이유에는 상황적인 이유가 좀 더 컸지만 그 안에서 또 다른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내 삶이 또 내 의지가 아닌 방향으로 흘러가 갑자기 생뚱맞은 걸 하고 있더라도 나는 그 안에서 또 다른 삶의 의미를 찾고 내 무기를 한층 더 강화시키고 있을 것 같다.


image (3).png 근데 강화 수치를 알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해… 나는 지금 레벨 몇일까

[요마카세] 작품명 : 이도저도 인생

작가명: 리엠

소개: 삶이 이도저도 아닌 것 같아, 이도저도 다 해보면서 살아보고 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요일] 일단 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