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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요가강사로서의 삶(1)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아, 하루 종일 요가만 하고 싶다.”


매일 같이 외쳤던 주문이다. 치열한 경쟁도, 두근거리는 시험도, 불안한 평가에서 벗어나 오로지 매트 위에서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었다. 요가 매트는 따뜻하고 온화했다. 그리고 나를 품어 주는 엄마와도 같은 존재였다. 매트 위에서 나는 자유로웠고 안전했다. 그런 요가와 하루 종일 함께 하고 싶었다.


이런 울림이 우주 어느 에너지에 닿은 것일까? 요가강사가 된 나는 하루 종일 요가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자각을 하지 못한 채 요가강사의 삶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요가강사의 삶은 평온할까? 실상은 아니었다.


07:00. 아침 일찍 일어나 허둥지둥 요가원으로 출근한다. 퇴근하여 거리를 거닐어 보면 분주하게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카페에서 잠시 쉬다 보면 다음 요가원으로 출근해야 한다. 점심 시간에 짬 내서 런치 요가를 하는 회원들을 맞이하며 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라고 속삭여 본다. 그러나 회사에서 잠시 나와 호흡을 해서 그런가, 런치요가의 호흡은 온전하지 못했다. 다들 마음이 바쁘고,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리고 동분서주하는 의식을 “지금” “여기”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 나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13:00. 에너지 보충할 틈새 없이 오후 수련에 나간다. 수련 전 음식 섭취를 하면 속이 너무 불편해서 최대한 수련이 끝날 때까지 참아본다. 그리고 수련실에 도착한 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늘의 수련을 잘 끝낼 수 있을까?” 내 몸이 거부하는 몇 가지 동작들이 있었다. 마르치야사나D, 드롭백 컴업은 나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런 몇 가지 동작들 때문에--2시간 수련 중 고작 10분 남짓임에도 불구하고--매일 수련실 문 앞에서 고뇌에 빠진다. “그냥 집에 갈까...?” 그러나 그 때 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과를 바라지 않고 그냥 해. 나도 내가 여기까지 올 줄 몰랐어. 근데 나는 ‘내 몸이 약하니 오늘 차투랑가 하나만 잘 하면 됐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수련했어. 단, 꾸준히.”


선생님께서 차투랑가 하나 어려워 하셨다니. 어떤 독한 마음을 먹어야 이 자리까지 오시게 되었을까? 어쨌든 선생님의 목소리를 되뇌이며 수련실 문을 연다. 그리고 나의 보금자리인 작은 매트를 깔고, 거기서 호흡을 이어 나간다, 두려움과 함께.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의 수련은 끝나 있었다. 정말이지 마지막 사바사나(시체자세)를 위해 2시간 수련을 이어 나간다. 이 자세에서 잠에 들면 안 된다고 하지만, 왜지? 죽음은 잠이 아니던가? 오후 3시쯤의 사바사나 꿀잠 시간은 정말 달콤하다. 알람 없이, 온전히 휴식을 취하고 일어나면 10분~20분이 지나 있다.


16:00. 오늘도 단식을 해내었고, 수련을 잘 마쳤다. 뿌듯함과 동시에 해방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오늘 하루도 힘들게 잘 보냈다. 그리고 흠뻑 젖은 땀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샐러드를 먹는다. 오후까지 단식하고, 수련하고 먹는 이 끼니는 천국을 맛보게 해준다. (식단을 일부러 하는 것은 아닌데 나는 야채에서 나오는 채수를 정말 좋아한다.)


18:00. 잠시 멍 때리다 보면, 어느덧 저녁 출근시간. 그리고 나의 출근시간은 퇴근시간과 맞물려 이리저리 치이며 지옥철을 견뎌낸다. 샤워를 하고 요가원에 오면, 잠 자기 전 회원님들과 함께 하는 호흡 같아 포근하지만, 가끔 샤워할 새 없이 출근해야 한다. 그럴 때는 정말 힘들지만 나는 오늘도 여김 없이 회원님들께 친절과 사랑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21:30 퇴근. 신기하게도 정말 힘들었지만 티칭을 하고 나오면 나도 그 에너지를 받는다. 마음이 평온하다. 어떠한 말도 하고 싶지 않고 이 평온한 에너지를 계속 간직하고 싶다. 요가강사는 나에게 천직인걸까?


23:30. 여차저차 집에 와서 정리하다보면 어느 덧 밤 11시30분. 이제는 정말 자야한다. 내일 7시에 집에서 나와 8시 티칭을 준비하기 위해 나의 몸은 쉬어야 한다. 이것이 요가강사의 일상이다. 해 뜨는 것 보지 못한 채 출근을 하고, 언뜻보면 하루에 3~4시간 밖에 일하지 않지만 그 호흡은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진다.


이것이 수련일까? 이것이 내가 말했던 하루 종일 요가만 하는 것이었을까? 몸은 점점 지쳐만 간다. 그러나 문득 생각해 보면 나는 주문과 같이 외웠던 하루 종일 요가만 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러나 요가강사의 일상은 평온하진 않았다. 쥐 꼬리 만한 월급과 요지부동인 타임비, 안정적인 삶을 이어나가기엔 체력이 부족하다. 요가강사의 삶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기 위해선 새로운 무언가 필요하다. 워크샵을 열거나, 개인레슨을 찾거나, 요가지도자 과정의 선생님이 되거나, 나의 몸값을 올릴 무언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 내야만 했고, 나의 영향력을 키워야 했다. 더 이상 나의 출신(학력)만으로 나를 증명해 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시작이었다. 더 많은 해부학 지식과 명상 실습, 거기서 얻어지는 지혜를 차근차근 알릴 설명력까지 필요했다. 주변 요가 선생님들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유도, 체조, 발레 등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나는 전혀 다른 전공을 가졌기에 다른 강사들보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나이 30에 지금까지 해 온 지독한 공부는 뒤로한 채 새로운 공부를 이어 나갔다.


프리랜서 요가강사의 삶은 수련하는 삶이면서도 지독히 현실적인 일상이었다. 낮은 임금에 평온함과 따스함을 잃지 않기 위해 내면의 에너지가 온기로 가득 차 있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매일 나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했다. “나로서 존재하자.” 타인이 바라는 나의 모습이 아닌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센터링을 연습했다.


내가 요가강사 되었던 것은, “애쓰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 충분히 아름다워”를 알려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신도 평온해 질 수 있다고, 당신도 판단과 분별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고 알려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평화를 찾았으면 했다. 마음이 요동치고 힘들 때 호흡 한 번이면 잔잔한 호수가 보인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고요함 속에서도 요동치는 내면의 진동을 느끼게 해주는 진정한 "요가 지도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요가강사는 현실의 파도 속에서 발버둥 치는 요가 수련생임을 알아차렸다.


온전히 죽음 연습-사바사나.jpg 온전히 죽음 연습 - 사바사나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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