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저 퇴사할게요.’
밤새 뒤척이며 마음속으로 퇴사라는 단어를 꺼냈다가 넣었다가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더 할 말 없냐는 팀장의 질문에 입 끝에 간신히 달려있던 이 말을 내뱉었다.
직전 회사에 다닌 지 1년 남짓한 시기에 첫 번째 퇴사 위기가 찾아왔다. 리더십의 부재로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퇴사를 고려하고 장기 휴가를 썼는데, 그 사이 팀장 (이전 직장의 마지막 팀장)의 제안으로 팀을 옮겼다. 그리고 다시 3년이 넘게 회사 생활을 이어갔다.
퇴사할뻔한 나를 구해 준, 내 밥줄을 이어가게 해준 사람이라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그런 마음의 빚 때문인지 나에 대해 언어적으로, 신체적으로 함부로 대하는 행동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불쾌하고 두려운 생각이 들어도 ‘내가 편하니까 그랬겠지’라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참아왔었다.
퇴사를 말하기 바로 전 날, 팀원들이 모인 회의 자리에서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분위기에 평소와 같은 말들을 했다. 그리고 팀장은 자기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로 괴성에 가깝게 내게 소리를 질렀다. 민망했다가, 어안이 벙벙했다가, 부끄럽고, 당혹스럽고, 눈물이 날 것 같고, 어리둥절했다. 처음 겪는 상황에 온갖 감정이 뒤섞인 상황. 윗사람이니까 사과를 일단 사과를 드려야겠지 생각했지만, 상황을 풀 새도 없이 팀장은 감정을 드러내서 미안하다는 메시지만 남기고 연차를 쓰고 자리를 떠났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라는 생각에 눈물만 꾹꾹 참았는데, 그 자리에 같이 있던 팀원이 너무 폭력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
그동안에 내가 넘겨왔던 그 수많은 행동들은 내게 결코 괜찮은 게 아니었구나. 내가 불편하고 피하고 싶던 그 말과 행동들이 폭력적인 행동들이 맞았구나,라고 이전의 모든 사건들이 재인식되었다. 그러고 나서 24시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동안 억지로 괜찮아했던 모든 일들이 순식간에 올라와서, 나를 괴롭혔다. 침대에 누워서도 퇴사할까? 퇴사해야 하나? 퇴사해? 퇴사할래.라는 생각만 몇백 번을 하다가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너무 아무렇지 않게 업무를 이어가던 팀장은 따로 나를 불렀다. “미안하다. 하지만 너도 잘못했잖아.”라는 형식적인 말에, ‘아 이 사람 하나도 안 미안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형식적인 사과를 하고, 더 할 말 없냐는 팀장의 질문에 ‘저 퇴사할게요’라는 말을 꺼내고 말았다.
그렇게 자기가 아끼는 팀원이라고 말해놓고, 퇴사하겠다는 내 한마디에 아주 일사천리로 퇴사 절차가 진행됐다. 퇴사가 이렇게 쉽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곧장 상위 조직장, 인사팀에게까지 퇴사건이 공유가 되었다. 그냥 빨리 눈앞에서 치우고 싶나 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사직서를 마음속에 품고 산다지만, 이렇게 갑자기 이걸 꺼내게 된다고? 나도 당황스럽다. 그런데 내가 꺼낸 이 퇴사카드에 내가 당황하는 티를 낼 수는 없잖아. 애써 덤덤한 척했지만, 나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걸. 퇴사를 말하고 나서부터 내 감정과 머릿속은 허리케인이 다 휩쓸고 지나가는 중인 것 같았다. 진짜 온통 난리였다.
내가 진짜 원했던 건 팀장의 진심 어린 사과였을까? 팀장이 만약에 내가 퇴사를 한다고 했을 때 ‘알겠다’라는 말이 아닌, ‘어제 일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랬다면 다시 한번 사과할게.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 이야기해 줘’라고 했다면 나는 퇴사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
[요마카세] 작품명 : 어쩌다 퇴사
작가명: 리엠
소개: 누구보다 열심히 월급받으면서 살던 직장인, 계획도 없이 퇴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