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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일상을 여행하기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사람들 저마다 선호하는 여행 스타일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연을 좋아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도시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무작정 떠나는 여행을 즐기고, 또 누군가는 분 단위로 치밀하게 계획된 여정에 안정을 느낀다. 나는 걷는 여행을 좋아한다. 평소에는 가까운 거리도 걷기 싫어 자전거를 타는 나이지만, 여행할 때만큼은 이만 보, 삼만 보도 걸을 수 있다.(물론 내 다리는 살려달라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겠지만)


내가 밟는 땅은 나의 것이 된다. 마치 땅따먹기를 하듯, 여행지의 구석구석 발자국을 남기다 보면 묘하게 무언가를 이룬 느낌이 든다. 그렇게 나의 영역을 늘려 나가다보면, 어느새 그 동네 골목길의 구조가 머릿속에 그려지고, 구글맵 없이도 방향을 짐작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때 나는 비로소 “알찬 여행”이라고 느낀다.


어느 날은 나고야 북구의 주택가를 걸었다. 한 손엔 카메라를 들고, 아직 내 발걸음이 닿지 않는 미지의 골목들을 향해 천천히, 여유롭게 나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한적한 거리, 하늘엔 구름, 4월의 연두빛 잎사귀. 좋다! 출근하는 직장인, 등교하는 학생, 집 앞에서 수리 기사를 맞이하는 사람. 나를 스쳐간 그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였겠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풍경이 나의 좋은 기분을 만들어주는 조용한 특별함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여행이라면, 나의 일상 속에서도 충분히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익숙한 동네 골목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늘 지나치기만 하던 길모퉁이에서 잠깐 멈춰 서는 것만으로도 매일 작은 여행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내 정체성을 “여행하는 사람”으로 두고, 마음의 여유를 한 줌 꺼내어 나의 일상을 여행해 봐야겠다. 좋은 기분은 생각보다 가까운 데서 온다.


오늘은 한 정거장 일찍 내려볼까.




[요마카세] 일요일 : 간헐적 포토그래퍼의 나고야 기록

작가: 샨샨

소개: 아주 가끔 사진 찍는 사람. 그래도 찍을 땐 나름 진심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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