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전시 바깥의 재미 - 흔적과 함께 살아가기

도록 편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보통 무언가가 정말로 좋아질 때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변화 중 하나는 ‘하염없이 돈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진짜 사랑에 빠지면 큰 돈을 쓰더라도 그게 딱히 아깝다는 생각도 안 들게 된다. 그 대상이 아이돌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고,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혹은 영화 등의 콘텐츠일 수도 있다. ‘덕질’을 하게 되는 우리는 매일의 일상을 그 덕질의 대상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로 조금씩 채우게 된다. 사는 데에는 딱히 큰 쓸모는 없을 수도 있지만 그저 아름다울 뿐인 시시콜콜한 물건을 사들인다거나, 누가 봐도 팬임을 드러낼 만한 의류를 구매해 일상에서 입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나 역시 그렇다. 전시를 많이 보러 다니다 보면 전시와 관련한 물품들이 하나둘씩 쌓인다. 많이 보았다는 건, 그만큼 사랑하는 것도 많다는 뜻이기에. 게다가 전시는 그 콘텐츠의 특성(?)으로 인해 매우 미감이 뛰어난 아름다운 굿즈들을 남기게 된다. (통장이) 야단날 만큼 아름다운 것은 비단 굿즈 뿐만이 아니다. 도록은 또 얼마나 탁월하게 아름다운지. 디자인을 배우던 학생때부터 매번 레퍼런스 삼던 스튜디오들이 공들여 작업해, 충무로의 인쇄 장인들이 섬세하게 뽑아, 멋들어진 후가공을 넣어 한땀한땀 엮어낸 책을 보다 보면 정말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아 이 별색인쇄, 이 후가공, 이 책등..! 아, 이건 사야 해….!

실제 내 방의 한 구석

(실제 내 방의 한 구석을 찍어 보았다. 독립출판물이나 전시 도록 등 디자인 레퍼런스로 쓸 만한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 놓는 곳이다. 나는 이 곳을 ‘섹시 북 코너’라고 부른다. 나에게 ‘섹시’란, 사람보다는 보통 아름다운 책과 탁월한 인쇄물을 지칭하기 위한 말로 쓰인다. 하핫.)

(소장 중인 도록 일부.)

그렇게 내 방은 일개 독립서점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나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이상 굿즈를 입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얼마를 쓴 건지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인 삶을 일구어 나간다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게다가 나는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다 보니 이런 탁월한 아름다움을 가까이 하고 그것을 계속 들여다보며 좋은 자극을 줄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것 아닌가?


그래서 오늘은 전시를 보러 다니면서 쌓인 여러가지 책과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워낙 갖고 있는 것도 많고 산 것도 많아, 1편은 도록을 비롯한 출판물을 중심으로, 2편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물품(굿즈)을 중심으로 풀어 보겠다.

사실 MMCA미술책방에서만 사는 게 아니다. 더 레퍼런스에서도 사고, 유어마인드에서도 사고, 더북소사이어티에서도 사고, 텀블벅으로도 사고 어쩌구 저쩌구..)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 도록 (MMCA 미술책방에서 2022년에 구매)


히토 슈타이얼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일단 전시 디스플레이 자체도 매우 압도적이었지만, 작품 자체의 매력도 상당했으며 슈타이얼의 말하기 방식이 매우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이거 분명 엄청난 도록을 팔고 있을 것이다, 하는 직감으로 미술책방에 들어섰다. 그리고 마주한, 샘플북 표지에 크게 붙어있던 ‘품절.’ 악-!


(사진 출처: 워크룸 프레스)


이 도록은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책배가 진짜 미친(positive) 책이다. 그래서 일부러 책배가 드러나는 사진을 가지고 왔다. 앞표지부터 책배, 뒷표지, 책등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근사한 연출. 이미 나는 눈이 완전히 돌아 있었다. 저 도록을 반드시 손에 넣고 말리라, 다짐하며 일단 침착하게 워크룸(도록 디자인을 진행한 디자인 스튜디오)에 문의 메일을 보냈다. 적어도 디자인을 한 곳이라면 샘플북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하지만 돌아온 답장은 역시나였다. 디자인을 진행했을 뿐 직접 출판한 것이 아니라서 워크룸 측이 가진 재고가 없기 때문에, 차라리 미술책방에 문의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답장이었다. 눈물을 삼키며 이미 품절 처리된 도록 판매 페이지로 가서 문의를 넣었다. 그리고 그 문의 내용.

(사진 출처: 어디 내놓기 조금 부끄러운 나)

저 답변을 확인하고 기쁨에 차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와! 다.. 당장 계좌 내놔!


서점이 간혹 ‘품절’ 처리를 하더라도 극소량의 재고가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무튼 무사히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훈훈한 결말.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라는 말을 피부로 느꼈던 경험이었다.


<WORLD CLASSROOM> 전시 도록 (도쿄 모리 미술관 웹사이트에서 2023년에 구매)

(사진 출처: 모리 미술관 온라인 뮤지엄숍)

도쿄에 가면 반드시 가야 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모리 미술관의 20주년 기념 전시인 <WORLD CLASSROOM>의 도록이다. 모리미술관의 소장작과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이 큐레이션한 작품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을 주제로 묶어 보여주는 기획전시였다. 예를 들면 ‘사회’ 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사회과에서 가르치는 주제와 관련해서 생각해볼 만한 작품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작품도 큐레이션도 너무 좋았기 때문에 아직도 이 전시에서 본 작품을 가끔 다른 전시에서 마주치면 그때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물론 그날 바로 도록을 살까말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일단 도록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았고(이 책이 특히 비싸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원래 도록은 진짜 공들여 만드는 책이라서 보통 비싸다) 늦은 저녁이라 너무 피곤했다. 게다가 모든 텍스트가 일본어이지 않은가. 일본어와 영어로 된 책을 과연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읽을지 미지수인지라 결국 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로 계속 이 책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주변에 일본 여행을 간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일정이 맞으면 사다 달라고 부탁해보기도 하다가 그냥 직구로 샀다. 하하. 다행이게도 해외 배송 옵션을 제공하고 있어 무사히, 더 비싼 돈을 지불하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렇게 또 하나의 큰 교훈을 얻는다. 갖고 싶은 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자. 언젠가는 꼭 사게 될 테니 말이다.


<100 베스테 플라카테> 역대 도록 (2020~2024, 두성종이 갤러리에서 구매)

(사진 출처: 고스트북스, 위시버킷 웹페이지)

<100 베스테 플라카테>의 역대 도록 중 2020년도에 발간된 도록부터 가장 최근 도록까지 전부 소장하고 있다. <100베스테 플라카테>는 독일어권 국가(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 제작된 모든 포스터 중 가장 아름다운 100개의 포스터를 선정해 선보이는 전시로, ‘로호타입’이라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2017년부터 한국에 들여와 소개하고 있다. 매년 이마를 짚을 정도로 아름다운 포스터들이 즐비한 전시장에서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면 손에 도록이 들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곤 한다.


2020년에 이 전시를 처음 갔을때 너무 좋아서 하염없이 전시장에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당시는 아직 팬데믹 상황이라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 했지만, 두세 번을 예약해서 갈 정도로 정말 좋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이 전시를 기획하는 ‘로호타입’의 디자이너 김기창 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 뒤로는 매년 가고 있다. 8월 말~ 10월 초쯤 열리는 전시인지라 이제는 <100 베스테 플라카테>의 개최 소식이 알려지면 자연스레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구나’ 싶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2021년도 전시에서는 특별 기획전으로 <100 베스테 플라카테>에 숟가락을 하나 올릴 기회를얻게 되기도 했다. 김기창 교수님의 수업 결과물을 활용해 참여했는데, 하나의 사물을 여러 관점으로 깊게 들여다보고 그 관찰과 실험을 바탕으로 그래픽 모티프를 만들어가는 수업이었다.

(사진 출처: SADI 웹페이지)

학생 시절에 과제작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학생 시절에 이런 멋진 전시의 한 구석을 차지해 보았다는 경험 자체가 참 귀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래픽이나 브랜딩이 아닌 UX/UI 디자인 분야는 이런 ‘전시’의 기회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예술의 영역이 아닌 기술과 문제 해결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100 베스테 플라카테> 전시는 매년 도록도 사고 포스터도 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세밀하게 기억하고 싶은 것 같다.


크리스 로 개인전 도록 (MMCA 미술책방에서 2025년에 구매)

(사진 출처: 더레퍼런스 온라인숍)


사실 이 도록은 전시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책이 아름다워서 산 책이다. 크리스 로 작가의 《어딘가, 여기 아래, 어느정도 안쪽, 모든 것 아래 하지만 아직 들을 수 있는 정도로 가까운 곳에, 여럿이 잠들어 있습니다. 조용히, 속삭이며, 천천히 뛰고 있는, 끊임없는 그렇지만 때로는 부서진 마음들.》 이라는 긴 제목의 전시에 대한 이 도록은 매우 실험적인 구성과 제본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전시를 보지 않아 어떤 식으로 공간이 이루어졌는지는 책을 통해 가늠할 수밖에 없지만, 전시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던 ‘레이어’를 다양한 물성을 가진 매체를 활용해 책의 형태로 구현해냈다는 점이 나에게 너무나 큰 감동(!)을 주었다. 이 전시에서 다루는 레이어 혹은 다층성이란 하나의 공간을 인식할 때 그 공간에 쌓인 수많은 시간이나 사건, 관계 등을 함께 인식하게 된다..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책이 고무줄 하나로 판형이 다른 여러 권의 책을 하나로 느슨하게 엮고 있는 점은 정말이지 적확하다. 여기서 다루는 ‘레이어’라는 개념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며 인식 주체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는 ‘무언가’의 상상을 실체로 경험할 수 있는 책이란 얼마나 흥미로운지.


<날카로운 것으로부터 둥근 것이 되기까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2025년에 구매)

(사진 출처: AABB store)

사실 이 전시도 보지 않고 그냥 도록만 구매했다. (그저 아름다운 종이라면 일단 사고 보는 사람..) 하지만 저 아름다운 책배를 제발 봐 주면 좋겠다. 왼쪽/오른쪽으로 기울였을 때 드러나는 텍스트가 다르다. 대체 어떻게 후가공을 넣으면 저렇게 될까? 사실 저 책배만 보고 책에 대해 흥미가 생겨 셀러분과 한참을 떠들었던 것 같다.


이 책은 금천구에 위치한 타이어 전문 영업소가 ‘카쎈타’ 라는 전시 공간이 되었다가 다시 타이어 영업소로 돌아가는 전 과정을 담은 책이다. 이 전시를 연 노혜진 작가의 작업실이 되었다가, 전시 공간이 되었다가, 전시 이후에는 작품은 창고로 가고 공간은 다시 일상 속의 타이어 영업소로 돌아가는 모든 과정이 담겨 있다. 책을 감싼 까만 패브릭 싸개 역시 작가가 작품 제작 과정에서 바닥에 깔아 두었던 방수포를 활용해 만든 것으로, 그야말로 책의 모든 구석에 전시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보통 이런 예술적 가치가 높은, 공예에 가까운 책을 아티스트 북이라고 한다. 도록은 보통 아티스트 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심미적으로 아름답고 완성도도 높다. 그리고 사실 판매보다는 기록에 초점이 있기 때문에 많이 팔리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아주 적게만 생산해서 한정판처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더 과감하고 재밌는 실험들이 두드러지는 책이 많아, 그만큼 소장할 만한 가치가 큰 것 같다.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4> 보드 게임 (MMCA서울에서 워크샵 후 증정받음, 2025년)

(사진 출처: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4 웹사이트)

프로젝트 해시태그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유일한 공모 프로그램이다. 이전 글에서도 언젠가 소개한 적 있었던 것 같은데, 프로젝트 해시태그는 매년 전시가 마무리되면 전시의 과정과 내용을 다양한 매체로 아카이빙한다. (물론 도록도 만든다.) 올해는 보드게임이었다. 전시에 참여한 두 팀 모두 게임을 주요 매체로 다루고 있어, 가장 적확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현미에서는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워크숍이나 세미나, 강연 등을 함께 개최한다. 이 보드게임도 전시와 연계된 게임 개발 워크숍에 참여했다가 받은 것이다. 워크숍은 하나의 ‘게임’을 만들기 위한 아이데이션 기법을 체험해보는 활동이 주를 이루었는데, 나중에 게임이 출시되고 나서 보니 이 게임의 룰을 개발하기 위한 실험(!)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보드게임 출시 후 종각에 위치한 보드게임 카페에서 이 게임을 실제로 체험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 보니 그 워크숍 생각이 새록새록 나서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사실 보드게임이라고 하기에는 룰이 워낙 느슨하고 빈틈이 많아 더 많은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전시를 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나처럼 워크숍까지 참여한 사람이라면 더없이 완벽한 방식의 아카이빙이 아닐까 싶다.


<밀려나고 새어 나오는> - 최찬숙 작가 작품집 (텀블벅 펀딩으로 2024년 구매)

(사진 출처: 교보문고)


2021년도 MMCA 올해의 작가 4인 중 한 명이자 최종 수상자였던 최찬숙 작가의 작품집이다. 4명의 작가 중 가장 좋았는데 최종 수상자로 선정되어 내심 기쁘더랬다. 올해의 작가상 전시는 최소 두 번 이상 보러 가는데, 최찬숙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서 거의 한 시간을 넘게 하염없이 앉아 그의 상상력이 그려 낸 웅장하고 깊은 세계에 푹 빠져 있다가 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최찬숙 작가는 꾸준히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해 왔다. 2021년도 올해의 작가상도 그러했지만, 이후에 발표한 작품들도 땅에서 시작해 역사와 몸까지 그 주제를 확장시키는 사변적인 이야기를 계속해서 다루고 있다. 해외에서 유학을 하고 여러 국가의 레지던시를 오가며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반드시 한 번쯤은 이주 혹은 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게 되는 것 같다. 끊임없이 이동을 계속하며 이방인으로서 임시의 상태에 머무르는 생활을 하다 보면 인류의 이동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거나, 자신의 뿌리를 계속해서 탐구하며 뿌리를 낳은 땅(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땅일 수도 있고, 생명에 대한 비유일 수도 있겠다)을 헤아려 보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 같기도 하다.


최근 2025년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BBDK - Best Book Design in Korea)’ 수상작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팬심과 관심과 미적 취향으로 구매한 책이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볼 때마다 기분이 정말 좋다. 말하자면, 상장한지 얼마 안 되어 저점매수한 주식이 갑자기 대박 터지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반자본주의적인 책에 대한 귀한 경험을 너무나 자본주의적으로 비유해서 약간 양심이 찔리는 것 같긴 하지만.


딱히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책을 모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서 산 책을 남들도 좋아한다’ 라는 감각은 아름다운 책을 모으는 취미를 지속하게 도와주는 것만은 확실하다.


경험에 물성을 부여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재생산하는 일

(분명히 과소비인 것은 맞는데, ‘책’을 산다고 생각하면 왠지 알차고 쓸모있는 소비인 것만 같고 그렇다. 그렇게 합리화하며 구매한 책만 몇 권인지..)

나의 이 아름다운 책에 대한 애호와 그치지 않는 돈지랄(!)을 우아하게 표현해 보자면 ‘경험에 물성을 부여하는 일’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마침 디자인을 업으로 하고 있으니, ‘좋은 레퍼런스’를 모은다는 합리화도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린다. 어쨌든 잘 만들어진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직업을 가졌으니, 이 모든 소비가 세상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일에 일조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소비이다, 라고 항변해 보겠다.


사실 도록처럼 무겁고 크고 비싼 책을 모으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일단 공간도 많이 필요하고, 이삿짐을 쌀 때 정말 눈물이 나올 때가 많다. 이삿짐 아저씨에게도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게 되고 그렇다. (어휴.. 책이.. 엄청 많으시네요? 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하하.. 웃으며 시선을 돌리는 나를 발견한다.) 이동이 잦으면 책이 상하는 일도 많으니 이만저만 신경 쓸 게 많다.


어찌보면 가장 ‘먹고사는 일’과는 관련 없는 것을 계속해서 모으는 일에는 작은 용기도 필요하다. 내가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돈과 정성을 쏟아도 정말 괜찮을지 가끔 반성한다. 먼 훗날 이 때의 내가 쓴 돈을 아쉬워하는 상황이 될까 걱정하거나, 이렇게 쏟은 마음을 부정당할 만큼 실망하거나 상처받을 일은 없을지 갑자기 두려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런 마음은 결국 무언가를 지독하게 사랑할 때 가지는 두려움 같기도 하다. 행복한 연애를 하다가도 문득 불안해지는 순간이 생기는 것처럼. 뭐 그렇게 치면 나 제법 건전하고 충실한 사랑 같은 거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취미는 ‘좋은(Good과 Like 모두를 포함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것’과 ‘갖고 싶은 것’ 과 ‘구매’의 간격이 한없이 매끈해지고 좁아지는 일인 것 같다. ‘아름다운 것’이 ‘갖고 싶은 것’으로 옮겨가는 일을 보통 ‘취향’, 갖고 싶은 것’이 ‘구매’로 옮겨가는 과정이 ‘덕질’이라고 생각한다. ‘갖고 싶은 것’과 ‘구매’ 사이를 벌리려는 노력은 조금 더 필요하겠다만. 그래도 ‘좋은 것’과 ‘갖고 싶은 것’을 늘려 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무엇이 되었든 기대할 일을 만들고 그 기대할 일을 추억으로 만드는 것은, 분명한 가치가 있다.

자 모두, 신나게 덕질로 돈 태우고 행복해집시다. 행복하다면 OK이니까요.



[요마카세] 토요일 : 전시 왜 봐?

작가 : GARDEN

소개 : 주말마다(사실 평일에도..) 전시를 보러 다니는 직장인의 전시 보는 이야기입니다. ‘전시 왜 봐?’ 라는 질문에 짧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을 상상해도, 무엇이 펼쳐져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 미술관에서 보낸 시간들을 글로 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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