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나는 물건과 이별이 어렵다

사실 쉬운 이별은 없다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명수와 순덕이는 두집 살림이다. 추석이라 오랜만에 명수와 순덕이의 서울 집에 간다. 명수의 오랜 꿈인 목가적 생활을 위해 해남에 별장을 마련 한 뒤 이 둘은 서울엔 두 달에 한번 올까 말 까다. 본인들도 서울 집엔 오랜만인 셈이다. 해남에 내려간 지 얼마 안 됐을 땐 한 달에 일주일은 꼭 서울에 있었는데 점점 아래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다너니 결국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살이를 한단다. 부부는 서울 집을 빼기도 전에 완도에 집을 구한다. 월세나 전세 매물이 거의 없고 그나마 있는 것도 거기서 거기라 본 집 중 그나마 맘에 드는 곳으로 계약한다. 1000에 35. 서울에선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다. 바다와 공원이 멀지 않고 주변에 수영장도 있어 둘이 지내기엔 좋아 보인다. “아빠 그래서 그 집은 몇 평이야?” “20평. 거의 짐 보관 장소 될 듯”


기껏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내려가는데 짐을 다 싸들고 갈 생각인 걸까. 나는 물건과 이별이 어렵다. 순덕이는 그런 나보다 한 수 위다. 서울 집 작은방엔 안마의자, 그 맞은편엔 내 키만 한 4칸까지 옷장, 벽면 전체는 천장 높이의 원목 장식장이 있다. 내가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사준 안마의자는 빨래걸이가 된 지 오래고 서랍장은 열어보지 않았지만 입지 않는 옷으로 가득 차있을게 뻔하다. 장식장은 김치통, 양주병, 레고 등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물건들로 쓸모를 잃었다. 완도로 이사 갈 때 적어도 작은방에 있는 모든 물건은 다 처분했으면 한다. 덩치가 큰 짐은 치울 엄두가 나질 않는다. 엄마도 마찬가지겠지. 대형 폐기물 처리 업체를 알아본다. 생각보다 쉽게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순덕이를 설득하는 일이 제일 어려운 일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집을 정리하러 고향으로 내려간 나 혼자 산다 박나래 에피소드를 본다.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큰 나래는 빈 집에 들어가기도 겁나 대문 앞에 쪼그려 앉아 눈물만 쏟아낸다. 겨우 들어선 시골집 마당엔 사람 키만한 잡초가 무성해 발길이 끊어진 집임이 실감난다. 잡초가 얼마나 억센지 잘 베어 지지 않자 풀에 애꿎은 화풀이를 하며 다시 주저앉아 눈물만 흘린다. 기안 84, 전현무가 나래를 돕겠다 시골로 내려왔고 셋은 함께 주인을 잃은 냉장고를 연다. 빼곡히 쌓여있는 할머니 김치에 나래는 또 한 번 주저앉는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앉은자리가 그대로 남아있는 소파도 어찌할지 모르는 손녀 앞에 “당근 할까?” 기안 84의 악의 없는 제안으로 모두들 실소가 터지고 그제야 나래도 숨을 쉰다. 3명은 부지런히 물건을 치워 4톤 트럭을 꽉 채운다. 한 번만으론 부족해 트럭을 서너 번은 더 불러야 한다며 청소를 일단락한다. 방송 보며 같이 울다 저 짐은 언제 다 치우나 걱정하다 나중에 해남과 완도집 짐을 정리할 생각에 눈앞이 아득해진다.


“해남 땅은 나중에 우리가 죽어도 팔지 마. 정이나 힘들면 팔든가. 순덕이 명수 수목장 해놓게.” 명수는 진심과 빈말을 교묘히 섞어 말한다. “감나무 수명이 유실수 중에서 제일 오래 살아. 감이 많이 열어 보기도 좋고. “ 명수가 해남 땅을 사자마자 별장을 짓기도 전 제일 먼저 심은 나무가 감나무다. 부쩍 자란 감나무는 매년 감을 쏟아낸다. 올해도 많이 보내고 싶은 순덕이와 조금만 받고 싶은 나는 단감 개수로 실랑이를 벌인다. 딱 한번 먹을 양만 보내달라 신신 당부 하지만 별 소용이 없을 걸 안다.


“단감 딱 10개만 보낼게”


역시 순덕이를 설득하는 일이 제일 어려운 일이다.

올 가을 명수와 순덕이가 수확한 감과 사과 중 극히 일부



[요마카세] 월요일 : 비워야 산다

작가: 흐름

소개 : 가볍게 살고 싶다. 뼈마저 비어있는 새처럼. 하루에 한 개씩 물건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매일 물건과 이별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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