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답은 찾았습니까?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 입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문득 교수님 생각이 났다. 10년은 더 함께할 것만 같았던 할머니의 별세는 생명이란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줬다. 할머니와 연세가 비슷하신 교수님께서 건강히 잘 계실까, 여전히 연구에 몰두해 계실까, 걸음걸이는 조금 편안 하실까, 모든 것이 궁금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생각에만 머물러 있고 교수님께 연락 드리진 못했다.
1년 뒤, 전화가 울렸다. 교수님이었다. 내가 먼저 연락 드렸 어야 했는데 한 박자 늦었다.
“교수님! 건강히 잘 지내시죠? 그간 안녕하셨어요?”
“그래, 다정아. 잘 지내냐? 아직도 회사에 있고? 내가 지금 강릉에 와서 햇빛 아래 앉아 밖을 바라보는데 너가 생각나 더구나.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말이야. 너가 눈도 뜨지도 못하는데 동생 데리고 와 면접 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구나.”
교수님의 전화를 받기 약 3년 전, 교수님께서 계신 연구재단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그 날은 라섹수술 때문에 면접이 힘든 상황이었다. 3일 뒤에 눈이 떠진다고 하니, 그 즈음이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3일 뒤에 면접을 보러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3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했고, 여전히 장님 같은 생활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한 번 미룬 면접을 다시 미룰 수 없기에 어떻게든 밖을 나가야 했다. 방 안에 누워있는 동생을 찾아 누나가 지금 면접을 보러 가야하니 인솔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여느 남매와 같이 누나의 부탁은 귓등으로 안 듣던 아이가 눈 못 뜨는 누나가 불쌍했던지 옷을 갈아입고 나를 부축했다.
그렇게 연구재단에 도착했고 나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면접 보러 온 사람이 실내에서 선글라스라니, 어쩌면 모두 나를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말이다.
교수님과 1:1 면접이었다. 죄송한 마음에 라섹수술을 해 눈이 떠지지 않는다고 교수님께 먼저 양해를 구했다. 선글라스를 벗어 애써 눈을 뜨려고 했지만 세상은 온갖 흰 빛으로 가득 찼고 도무지 눈을 뜰래야 뜰 수 없었다. 눈물은 계속 나오고, 눈은 찢어질 듯 아픈데 어떻게든 질문에 대답은 해야 하고, 앞은 보이지 않는데 아이컨택은 하고 싶은 이 상황이 정말 무자비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예상과 다르게 면접은 잘 마무리되었고, 교수님께서 같이 작업하면 좋을 것 같다며 나를 받아 주셨다. 그렇게 교수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안 그래도 교수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언제 한 번 찾아 뵙겠습니다. 언제 시간이 편하신지요?”
그렇게 2년만에 교수님과 재회를 했다. 여전히 하고 싶은 작업이 많으신지 얼마전에도 독일에 출장을 다녀오셨다고 하셨다. 이젠 해외에 나가면 어떻게 될지 몰라 조심해야 겠다며 우스개 소리로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것이 얼마나 진실과 가까운 발언인지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이미 체감한 상태였다. 슬프고 두려웠지만 애써 웃음을 지어 보았다. ‘아, 지금이라도 교수님을 찾아 뵈어서 참 다행이다.’ 이런 생각뿐이었다.
“교수님, 저 요가원 열었어요!”
요가원 명함을 건네 드렸다.
“나도 한 번 배우러 가야겠네. 이젠 너와 나의 역할이 바뀐거야. 너가 선생이고 내가 학생인거야.” 교수님께서 매우 즐거워하셨다.
그 때 재단에 있는 한 박사님께서 들어오셨다. 교수님께서 나를 간단히 소개해 주셨고 잠시 방황하며 절에도 갔다 왔었다고 말씀 주셨다.
“절에요? 절에는 왜요?”
“아..제가 한 때 집착과 노력의 차이는 무엇인가에 대해 집착을 한 적이 있어서요.”
“그래서 집착과 노력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 해답은 찾았습니까?”
사실 이 질문은 너무 많이 들었다. 봉정사에서 내려왔으니 무언가 해답을 찾은 것이 아닌가라는 궁금증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대화의 흐름이 이 질문으로 향하게끔 한 것일까. 어쨌든 나의 답은 항상 같았다.
“글쎄요, 답은 없는데 답을 찾으려 하니 힘들었던 것 아닐까요?”
박사님께서는 신기한 아이가 왔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고, 교수님께서는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집착과 노력 사이 우두커니 서 있는 한 인간이, 그곳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그곳에는 어떤 길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가득 찬 채, 그곳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부인하며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없는 답을 찾으려 하는 집착, 집착과 노력사이 중도를 찾으려 하는 노력, 그 사이 어딘 가에 나는 있었다. 때로는 집착도 노력도 필요 없었고, 때로는 집착과 노력 모두 필요했다. 내가 하고 있는 행위가 집착인지 노력인지는 상황에 따라, 나의 인지에 따라 달랐고, 남들이 노력이라고 하는 행동들이 때로는 집착이었고, 누군가 집착을 버리라는 무언가가 나에겐 노력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집착을 버리는 것이 노력이었다는 것을 깨닫았다. 하지 않는 것, 그 불안감 속에서의 용기, 그것이 나의 노력이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당신도 삶 어느 한 중턱에서 길 잃은 채 허우적대고 있다면, 그 길이 당신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길 희망한다. 허공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 발바닥의 감각을 인지해 보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다 보면 어느덧 당신이 걸어온 그 길이 찬란했음을 알아차리길 희망한다. 당신은 그대로도 참 아름답고 어여쁘다.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 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 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 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