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나는 오늘도 나로 살았다

by 흐름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새벽 5시 30분. 마라톤 행사 스태프로 여의나루로 나선다. 동트는 한강 공원 잔디 위 먹다 남긴 컵라면, 술병이 나뒹군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곳도 아름답다는데 못난이들이 왔다 갔나 보다. 돗자리를 깔고 빙 둘러앉아 술 마시는 청춘들도 보인다. 어젯밤부터 계속된 걸까 오늘 새벽부터 모인 걸까. 어느 쪽이든 대단하다. 혀를 끌끌 차려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회상한다. 학교 앞에서 마시고 학교 근처 시장 순대국밥집으로 옮기고 마지막은 24시 버커킹이나 감자탕집이다. 그렇게 날 밤을 새울 땐 젊음이 귀한 줄 모른다. 낭비한 시간 또한 청춘이겠지. 저들의 체력이 부럽다. 감기로 2일 내내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는데, 낭비할 체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달력을 보니 올해도 2개월 남짓 남았다. 해가 갈수록 나이 드는 게 무섭다. 젊음과 멀어지는 건 관절염, 노안, 오십견과 가까워지는 일이니까. 미래에 그런 것들만 오게 둘 수는 없다. 다른 것들도 와야만 한다. 가령 통창으로 푸른 숲이 보이는 아침이라던가 돌고래가 폐그물에 걸리지 않고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날이라던가. 우리는 우리에게 무엇이 올지 알 수 없다. 알지 못함에서 오는 무력감과 불안감이 때때로 나를 덮친다. 그 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하나다. 생의 유한함. 언젠간 내 시간도 돌고래의 헤엄도 끝난다. 우리는 내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죽음이 확실한 미래라면 준비할 게 있다. 무엇을 남길지 정해야 한다. 옷장 구석 쓰지도 않는 홈트레이닝 밴드와 사놓고 버리기 아까워 모셔둔 니트를 남길 순 없다. 죽고 난 뒤 누군가 내 물건을 치울 거란 상상은 지금 당장 한 개라도 더 버리고 싶게 만든다. 남은 사람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내 자리를 스스로 정리하고 싶은 책임감, 나도 미처 알지 못하는 물건이 발견될 거란 공포감도 있다. 삶의 유한함 앞에 쓰지도 못할 물건은 도대체 몇 개나 갖고 있나. 죽기 전에 가진 물건을 모두 기억할 수 있을까. 내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쓸모없는지 아는 사람이고 싶다. 하나부터 열까지 소유한 물건을 나열할 수 있다면 적어도 자기 자신은 안 채로 죽음을 맞이하는 삶일 테다.


자신을 잘 아는 일은 더 잘 살고 싶은 마음과 통한다. 잘 살고 싶은 마음이란 다녀간 자리를 말끔히 치우는 것부터 노화와 같은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포함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에 헌신하는 태도다. 그 마음을 따라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나를 알고 나 자신으로 사는 하루 앞에 죽음은 두려울 것 이 없다. 하루라도 자신이 되어 삶이라는 거대함으로부터 나를 지켜야 한다. 해야 할 일 중 하나인 1일 1개 버리기, 글쓰기를 한다. 나는 오늘도 나로 살았다.

새벽녘 한강 공원



[요마카세] 월요일 : 비워야 산다

작가: 흐름

소개 : 가볍게 살고 싶다. 뼈마저 비어있는 새처럼. 하루에 한 개씩 물건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매일 물건과 이별하는 이야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금요일]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음악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