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울산 여행과 귀인들

2042.12.23.~12.28.

by 나노

12월 23일

(고모가 김장김치를) 외국으로 택배를 부치는데 조금 힘들었다.

이곳저곳으로 갔다가, 결국 읍내 우체국에서 깡통을 사서 보냈다. 법이 새로 생겼다고 해서

힘들게 택배를 부치고 목욕만 하고 왔다.


12월 24일 화요일

오늘은 법당 신도인 동생이 왔다.

오랜만에 왔다고, 점심에 배추 부침개를 (고모가) 해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점심은 안 먹고 읍내를 갔다 왔다.

고모는 이것저것 챙기느라고 바쁘다. (서방님이랑 고모랑, 2박 3일로 울산 절에 가기로 했다.)

(나도) 생각나는 대로 챙겼다.

오후에는 나도 농협을 다녀왔다.

돈은 조금 있어야 하니 다녀왔다.

서방님이 기침도 하시고, 가래를 뱉으신다고 저녁에 잠을 못 자신다.

가슴도 저리고 한다고 하신다.

새벽에 조금 주무셨다.

(오늘이) 며느님 생일이라고 해서, 통화만 했다.



*12월 24일 이후부터는 일기가 멈췄다. 그래서 편집자인 딸의 일기를 대신한다.


<딸 편집자 曰>


12월 24일 화요일

고모가 울산에 좋은 절이 있다고 함께 가자고 하셨다. 하지만 가면 2박 3일 동안 머물러야 하다 보니, 쉽지 않았다. 수시 원서를 쓰면서 끝끝내 상향만 쓴 학생이 정시 원서를 써야 하는데, 나를 원망했다. 너무 억울해서 수시 원서 2차 때 부모님께 안정권을 꼭 쓰기를 권했던 일도 이야기했다. 당연히 본인에게도 두 번 권했던 일이다. 그때는 기필코 수시 납치가 싫다더니, 이제는 나를 원망한다. 누구라도 원망을 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이건 참 너무 허무하다. 보호자의 전화까지 받으니, ‘나는 도대체 뭘 하며 사는가?’ 스스로 좌절스러웠다. 그래서 정시 인원이 확인되면,

학생의 2차 상담을 진행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울산 여행을 동행하기 어려웠다. 사실 그 아이 말고도 4명의 정시 상담 학생이 있었다. 1차 상담은 다 진행했지만, 정확한 모집 인원이 나온 후에 2~3일 사이에 최종 상담을 해야 했다. 마음이 급하고 초조해서 긴 시간을 빼기 어려웠다. 대입 상담 프로그램은 학교에서만 조회를 할 수 있어서, 학교 인근에서 대기조로 기다려야만 했다.

언니도 서울로 올라가는 짐을 며칠 내로 챙겨야 해서 일이 쉽지 않았다. 숟가락부터 텔레비전까지 다 챙겨야 했다. 혼자 살아도 살림살이는 대가족 것이나 다르지 않으니.

함께 동행하지 못한다고 하자, 고모가 너무 서운해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다음에 꼭 함께 가자고 약속을 하고, 일을 보았다. 애들은 인생이 걸린 일이니 지금이 시기가 아니면 도울 방법이 없다. 일의 경중이 그러해 보였다.

6시간 이상 가는 그 먼 길을, 차에 5명 가득 타고 가면, 아버지는 누울 공간도 없다. 지난번 2시간 이동할 때도 많이 힘들어하셨다. 오래 앉지를 못해서 누워야 견디실 수 있었다.

생각이 복잡했지만 우선 생업을 선택했다.


12월 25일 수요일

엄마와 아빠가 울산에 잘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빨간 날이라 집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다음날 학생이 상담을 원하면 무조건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직도 대학을 못 고른 학생인 한 명 있어서, 계속 대기조 상태였다.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빨간 날이어도 마음이 불안 불안했다. 그리고 6시간 거리를 아빠가 가실 수 있을까도 걱정이었다.

그런데 아빠가 중간에 화장실 딱 한 번 보고 도착하셨다고 했다.

엄마도 아빠도 목소리에 힘이 쩌렁쩌렁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아프면서 화장실을 1시간마다 한 번씩 가셨는데, 어찌 이런 기적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더구나 가신 절도 마음에 들고, 절 옆에 잡은 숙소도 좋아서, 방에서 맑고 큰 바다가 훤하게

다 보인다고 하셨다. 날씨도 따뜻해서 기침도 거의 안 하셨다.

덕분에 행복했다.


12월 26일 목요일

오늘은 큰 바다에서 기도를 하셨다고 했다. 숙소 앞마당이 큰 바다라서 조약돌 위에 앉아 기도를 하셨다고 한다. 물론 아빠는 잠깐 인사만 드리고 숙소에 계셨다고 한다. 울산 스님께서 아버지 드시라고 팥빵도 사다 주셔서 꿀맛처럼 드셨다고 한다.

숙소 주인도 귀한 손님이 오셨다면서 두껍고 큰 이불로 잠자리를 봐주셨다고 한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이제 불안했던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뭔가 모를 불안감이 계속되었는데.. 이제 좀 낫다.

대학을 고민 중인 아이는 오늘도 여전히 같은 상태이다.

뭐 하루만 더 기다려 보고 안 되면 학교로 불러서 다시 상담을 해야 할 것 같다.

다른 4명의 지원도 한 번 더 점검해 줘야 하니, 약속 날짜와 시간을 잡았다.

왜 전화도 안 받고 하루 뒤 톡에 답장만 하는 것인지.

애가 탄다.


12월 27일 금요일

오늘 엄마 아빠 목소리가 최상이다.

절 옆에 큰 당산나무가 있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하신다.

선녀 나무라나?

엄마는 언제 공부를 했는지, 그 나무의 유례와 역사를 줄줄 이야기하신다.

옆에서 아빠가 조용해서 물으니 주무신다고 했다.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는데, 피곤하신 것 같아서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추어탕을 숙소 주인이 끓여 줘서 맛나게 드셨다고 했다.

한 뚝배기 다 드시고 더 드셨단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어찌 아시고, 따숩게 잘 대해주신다고 하니 좋았다.

오늘도 절에서 기도를 많이 올리셨다고 했다.

엄마는 목소리가 높기는 한데, 조금 지쳐 보였다. 아마도 잠자리를 옮기면 잠을 못 주무시기에 더 그런 것 같다.

고모는 숙소 주인과 막역한 사이가 되었단다.

하룻밤 사이에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다음에 울산에 오면 또 이곳에 방문하라고 했다고...

내일이면 집으로 올라오신다고 하니, 마음이 한편 놓였다.

나도 엄마랑 아빠가 얼른 올라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좋은 곳인 것은 아는데, 아버지 건강이 걱정되었다.

스님께서 오늘은 대게를 사 오셨다고 했다.

이틀 연속 스님이 아버지와 엄마를 잘 모셔주셔서 감동적이었다.

아빠는 게를 싫어하셔서 입도 안 댔지만, 엄마는 맛나게 드셨단다.

조용한 아빠가 낯설었다. 항상 “딸들 수고했어,”를 해주시는데...

뭐 내일이면 뵐 거니까.


12월 28일 토요일

언니 서울 집을 인터넷에서 확정일자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둘 다 정신이 없어서 오늘까지 해야 하는 것인데 잊고 있었다. 남은 계약금을 송금하고 인터넷으로 등록을 하는데, 뭔가 자꾸 오류가 났다. 평소 회사에서도 잘하던 일이면서, 내용을 빼먹어서 자꾸 오류가 났다. 대여섯 번 만에 힘들게 입력하고, 이불이며 살림살이를 언니 차에 옮겼다. 이불이라 무거워 쩔쩔매면서 날랐다. 그 와중에 엄마한테 전화가 오는데 받을 손이 없었다. 어서 차에 싣고 받자고 했다. 그렇게 이불을 차에 싣고 엄마한테 전화를 다시 하는데 안 받으셨다. 뭐 출발하셨다는 연락이겠거니 하면서, 두 번째 짐을 옮기려고 집으로 올라오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언니가 받았다. 119 구급대원이라고 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요즘 내내 불안했던 것이 애들 원서 때문이 아니었던가?

처음에는 교통사고가 난 줄 알았다. 너무 먼 길에 주말이라.

그런데 옆에서 듣다 보니 아버지가 호흡을 잃으셔서 급하게 호송 중이라 하셨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판단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엄마와 통화를 통했다. 괜찮다고 하는데,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일단 우리는 집으로 들어가서 엄마가 계신다는 울산대학병원으로 갈 준비를 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어찌어찌해야 할까?

곧바로 고모에게 전화가 왔다.

응급실로 가셨고, 현재 검사 중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그곳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큰오빠와 함께.

울산은 가본 적도 없어서 길이 어쩐지도 몰랐지만, 알겠다고 무조건 알겠다고 했다.

고모는 운전을 천천히 해서 오라는데, 앞에 안 보였다.

언니가 큰오빠와 전화를 했는데, 오빠는 서울이라면서 우리끼리 먼저 출발하라고 했다.

알았다고 대답하고 옷을 챙겨 입었다.

그런데 다시 고모에게 전화가 왔다.

천천히 잘 갈 것이니까 염려 말라고 하자, 고모가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하셨다.

이 모든 과정이 채 30분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머리를 감고 말리지도 못하는 짧은 순간이었다.


신을 원망하며 울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면서!


아빠는 응급차를 타고 오후 5시 넘어서 우리에게 오셨다.

엄마와 고모는 온통 지쳐서 오셨다.

겨우겨우 견디다 언니와 나를 보자마자 고모가 울음을 터트리셨다.

허망해서.

아버지는 아침에 면도도 하고 아침 식사도 맛납게 하셨단다.

후식으로 대추차도 한 잔 드시고.

뒷집 아빠한테 전화해서

“나 이제 집에 가네.”

신이 나서 통화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어지럼증으로 주저앉으셨다고 한다.

놀란 고모가 아빠를 붙잡았고, 그렇게 고모 품에서 눈을 두 번 감았다 떴다 하셨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푸른 바닷물을 보시고...

숙소 주인이 119를 불러줘서 그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셨고,

호흡이 불균형해서 기관삽입을 의논하는 사이에

서둘러 이 세상을 떠나셨다.

지독히 병원을 싫어하시더니, 병원이 정말 정말 정말 싫으셨던가 보다.



우리는 아버지를 평소 다니셨던 법당에 모셨다. ‘49제’를.

스님은 날마다 하루 2시간, 3시간씩 불경을 읽어 주셨다. 아버지 사진을 보면 눈물이 쏟아져서 애써 눈길을 피해야 했다. 그리고 스님께서 49제까지는 살아생전 드시던 것을 다 흠향할 수 있다고 하셔서, 평소 좋아하셨던 음식을 날마다 제사상에 올려드렸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마다 큰 제사를 지냈다. 그렇게 큰 제사를 7번 지내면, 이 세상 인연을 다 내려놓고 다른 세상으로 가신다고 했다. 이생의 원과 한, 죄와 업을 다 내려놓아야 하니, 남은 가족이 애면글면

울면 좋을 것이 없다고 하셨다.

온 가족이 눈물을 참느라 온 힘을 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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