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의 새집 나기와 보일러 고장

2024.12.16.~12.22.

by 나노

12월 16일 월요일

고모가 전주에서 오면서 우리를 데리고 (법당으로) 함께 왔다. 법당에 난로도 피우고 하니 바로 따뜻해졌다. 고모부도 나가시고 우리 셋만 점심 식사를 했다. 영양밥이라고 여러 가지 넣어서 비빔밥을 해주었다. 점심 먹고 수영을 하고 오면서 머리 물(염색약)을 샀다. 나는 7호 고모는 5호. 카드로 산다고 갔는데 돈이 조금 모자라다고 했다.

저녁에 머리물을 드리고 수제비를 해서 조금 드셨다.

어제는 고모가 없으니 서방님이 불안했다고 하셨단다.

너무 의지를 하고 계시는 모양이다.

운동을 너무 안 하신다.

12월 17일 화요일

오늘은 고모하고 큰딸이 서울로 방 보러 가는 날.

아침부터 보일러가 말썽을 부린다.

물이 흐르기 시작해서 옆집 삼촌에게 부탁했더니 (보일러) 옆을 고쳐서 좋아했더니, 도로 물이 흘렀다. 기술자를 불렀더니, 서비스 센터에 연락을 해주었다. (서비스 센터에서) 오셨는데 고칠 수가 없다고 하신다. 통째로 바꾸는데 칠십만 원이라고 해서, 새로 하기로 했다. 아침부터 옆집 삼촌이 수고를 많이 해서 답례를 해야겠지요.

현금은 칠십만 원이고 카드는 칠십칠만 원이라고 했다.

큰딸도 방을 얻어 놓고 왔다고 했다. 한 달에 월세가 칠십오만 원이라고 한다. 이곳과는 아주 딴 세상이다. 그렇게 주고 어떻게 살을까 하니, 걱정스러웠다.

내가 밖에서 있으니 서방님이 심난한지 불안해하셨다.

12월 18일 수요일

오늘도 전주에서 오는 고모 차를 기다리고 있다. 11시 넘어서 고모 집으로 갔다. 추워도 난로를 사다 주어서, 법당으로 바로 가도 안 추웠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니 (고모가) 점심을 해놓았다. 항상 미안하고 고마웠다.

점심 먹고 수영을 가지만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아는 동생이 주변을 지나가다 들러서 (예전에 가사 간병사로 일할 때 만났던) 애기들이 이야기를 해줬다. 애기들이 공부를 잘 못하나 보다. 애기 때는 몰라도 공부를 잘 못해서 원하지 않던 고등학교로 갔다고 한다.

택배가 왔다.

돼지고기를 큰딸 회사에서 (보내) 왔다. 싱싱했다. 큰딸에게도 (서울로) 올라오라고 전화가 왔다고 한다. 1월 1일부터 간다고 했다. 돈을 벌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넓은 세상에 가서 살면 더 성숙해지겠지. 날마다 먹기만 하면 소화가 잘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하다.

서방님은 지금만 같으면 좋겠다. (식사도 잘하셨고, 대화하는 시간이 늘고 잠도 덜 주무셨다.)

어지럽다고는 하신다.

12월 19일 목요일

오늘은 산악회.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뒷집에서 가보자고 해서 갔다.

(서방님이) 아침에 대변도 보시고 해서 갔다.

11시에 모여 회의하고 저밈만 먹고 일찍 왔다. 회장이 새로 바뀌고 조합장님도 오셨다.

친구가 한봉꿀을 했다고 해서 달라고 했더니, 돈을 너무 조금 받고 주고, 또 작은 병도 (선물로) 주었다. 오만 원은 설탕값도 안되는데, 너무 고마웠다.

(서방님이) 잡수고 좋아지면 더 좋을 텐데....

저녁에는 고기를 구워 서방님은 4점, 떡 4조각. 나는 많이 먹었다.

요즈음 자꾸만 소화도 안되고 배도 아프다.

(가사 간병) 팀장도 다녀갔다.


12월 20일 금요일

오늘은 이모부가 오셨다.

혈압약도 없고 소화가 너무 안 되어서 병원에 가서 약을 지어왔다. 서방님이 내장탕을 사 오라고 해서, 사다가 국수를 삶았더니 조금 드셨다. (보일러 손봐 준) 옆집 삼촌한테 미안해서 귤 한 박스를 사다 드렸다. 이모부는 점심 드시고 법당으로 (우리를) 데려다주고 가셨다. 기름값을 챙겨 주었더니, 인삼과 콩값을 챙겨 주고 갔다.

법당에 기도도 하고 목욕을 하고 왔다. 절에서 팥죽 거를 준비를 해다 주었다. 고맙고 염치가 없었다.


밤에 아들하고 며느님이 왔다. 며느님 아들이 군대를 간다고 외할머니를 보러 왔다고 했다.(그 길에 잠시 짬을 내어 우리를 보러 와주었다.) 엄마의 마음은 (군대 가는 아들이) 걱정이 되겠지.

아드님이 (퇴근길에) 인삼을 가져다주고 갔다.

12월 21일 토요일

오늘은 동짓날.

딸들이 온다고 했지만 아침부터 눈에 비에 너무 많이 와서 못 왔다.

큰딸이 서울로 가니 올 시간도 없는데, 어쩔 수가 없지만 서운하다.

뒷집 정님이가 놀다 갔다.

아들 손자가 태권도 단증을 땄다고 했다. 눈이 온다고 하니, (제) 아빠 보고 할머니 집에 가자고 했다. (직장 때문에 못 오는 것은 알지만, 말이라도 “할머니집 가자” 하니 좋았다.)

땅콩 볶은 것이 없어서 조금 볶고.

법당도 눈이 많이 와서 못 갔다.

12월 22일 일요일

오늘은 딸들이 미끄러운 길을 왔다.

길이 미끄러워서 우리는 못 가고, 딸들만 법당에 다녀왔다.

점심을 먹고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사진을 보고 이야기하고 녹음을 했다.

큰딸이 서울로 간다고 서방님이 쌈지 돈을 조금 주었다. 그래도 받아 가니 좋았다.

길이 미끄러워서 나가지도 못하고, 딸들이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 갔다. 나도 따뜻한 방에 앉아 쉬었다. 또 소화가 안 되어서 저녁을 못 먹고 서방님만 식사를 조금 하셨다.



<딸 편집자 曰>

이즈음부터 아버지는 먹고 주무시고 화장실 보는 것도 좋아지셨다. 엄마가 아버지 대변을 정리했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주셨다. 잠도 깊게 주무셔서 괜찮다고 하셨다. 전화 통화를 하면 스피커 폰으로 함께 통화도 하셨고, “딸들 오늘도 애썼어.”를 부적처럼 들려주셨다.

그러면 하루 종일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탁 놓이고 ‘이제는 되었다. 건강해지시나 보다.’하고 마음을 놓았다. 식사량도 많아지셨고, 기침도 많이 잦아들었다. 얼굴도 뽀얗게 오르는 것이 안색이 환해지셔서, 우리는 속 없이 50주년 결혼기념일 준비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는 특별하게 준비하자고. 어려우면 우리끼리라도 여행을 다녀오자. 뭐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누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도 힘이 생기셨고, 더 많이 잘 웃으셨다.

한 번씩 빤히 바라보고 계셔서 깜짝 놀랄 때가 있었다. 너무 깊게 그윽하게 보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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