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짓는 농사, 장보기, 외식

2025.03.24.~03.30.

by 나노

3월 24일

오늘은 장날이다.

아침을 먹고 행복 버스를 불렀다.

차를 오랜만에 탔더니 제도가 바뀌었다.

올라가서 찍고 내리면서도 찍고.

읍내 버스를 타니 환승까지 되고.


더덕 사고, 위에 티도, 사고 바지도 사고, 딸기도 사고, 멸치도 하나 샀다. (일) 바지를 고모 하나 주었더니 너무 편하고 좋다고 했다.

오후에는 시간이 없다고 목욕만 하고 오자고 해서 같이 갔다. 씻고 오니 몸은 개운했다.

이것저것 바라보니 서방님 생각이 난다.

혈압약도 타왔다.

나가면 돈이 절로 나간다.

집에 있으면 안 쓰는데...


3월 25일

법당 동생이 왔다.

용궁을 갈려고 왔는데 나는 집에 손님이 온다고 해서 못 갔다.

기도를 하고 오면서 (고모가) (우리) 집으로 와서 국수를 삶아서 (함께) 먹었다.

요즈음 고모는 맡은 일거리가 그런지, 식사도 못하고 힘들어한다. 그래도 국수를 한 그릇 먹는 것을 보니 조금은 좋았다.

아들이 한 삼일 만에 내려왔다.

춘자가 고기를 가지고 와서 만들고 땅콩죽을 고모가 조금 가지고 와서, 큰손녀 먹으라고 보내주었다. 맛있다고 잘 먹는다고 전화가 왔다.

강아지 우유도 왔다.



3월 26일

오늘은 큰 용기를 내어 검단이 밭에 갔다.

검단이(서방님이 총각 시절 살던 암자) 쪽을 바라보고 절도하고,


“서방님 나 여기 왔습니다!”


그러나 대답도 없고...

밭에 풀은 많아서 뽑고 다리가 아파서 앉을게(농사의자)를 가지고 갔지만 힘들었다. (집으로) 오려고 했더니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한참을 밭에 앉아 있다가 걸어왔다.

요즘에 산불이 너무 심해서 나라가 정말 시끄럽고, 날마다 불은 더 심해지니 참 마음이 안 좋다.

남의 일 안 같고 마음이 아프다.


오늘은 오후에 큰 용기를 내서 간장과 된장을 손을 보았다.

몇 년 동안 살림을 잘못했다. 된장, 간장 담그는 일은 쉽지 않다. 며칠은 씻고 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그래도 마음은 좋았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약을 하나 먹고, 잠깐 쉬기로 했다.

(고모가) 장독대가 없다고 해서 단지를 하나 주었다. 그래도 주어야 했다.

마음은 편안했다.


3월 28일

오늘은 금요일

날짜 가는 것도 모르고 산다.

아들이 서울에 간다고 오후에 왔다.

더덕 까서 조금 주고, 콩나물 조금, 멸치 조금 해서 보냈더니

큰 며느님이 너무 좋아하면서, 맛있다고 하면서, 엄마가 자기를 예뻐하는가 보다고 전화가 왔다.

오늘은 둘째 며느님도 전화를 해서, 무엇 잡수시느냐고 물으면서, 무엇을 보내준다고 해서, 냉장고에 많이 있으니 보내지 말라고 했다.

고맙고 감사했다.

새끼들이 걱정을 많이 한다.

내가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또 한다.


3월 29일

오늘은 작은집에서 힘들게 고추장을 담아서, 애들도 주라고 하면서, 여러 개 가지고 오셨다.

힘든 것을 날마다 생각만 했는데 고마웠다.

점심을 사주었다.

명숙 고모가 닭을 삶아서 저녁에는 해주었다. 뒷집, 작은집이 함께 먹었다.


좋아하시지는 안 해도, (서방님이 계셨으면) 한 그릇은 드시겠지 하니, 생각이 납니다.

나만 먹고 왔지요.

큰딸도 왔다고 전화가 왔다.

힘들 것인데 외로우니 또 왔다.


3월 30일

오늘은 딸들과 점심 약속이 있어서 딸 집으로 갔다.

부모가 뭣인지 먹이려고 계란도 따뜻하게 구워놓고, 이것저것 챙겨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을 비싼 밥을 먹고 오후에는 한약을 지러 갔다.

돈도 많이 들어갈 텐데 말도 안 해준다.

네 사람 것을 하면 비쌀 텐데...

돈도 없을 것 같은데...

허리 다리도 아프고 소화도 안 된다.

침도 맞고 왔다.

선생님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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