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말-본색 20화

꼰대력 최강의 말본색

금기어 5종 세트

by 나노

이런저런 말을 정리하다 보니, 듣기 좋았던 말보다 마음 상했던 말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감정 상했던 말이 더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은, 금기어를 피하는 것이 배려의 출발점이라는 뜻일 터이다!

우리는 뚫린 입이라 쉼 없이 말을 하고, 그러다 보면 따순 말도 하지만 참 독한 말도 많이 한다. 아무리 집에 와서 후회를 하고 반성의 글을 써도, 이상하게 또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면서... 결국에는 스스로 자괴감조차 느낀다.

애써, 그래도 성찰이라도 하고 반성이라도 했으니 덜 죄스럽지 않은가? 이렇게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후회하며 해도 '독한 말'은 듣는 이에게나, 말한 이에게나 독성이 풍긴다는 것을. 그래서 정해 본 "절대 하지 말자!" 말본색! 꼰대력 최강의 금기어 5종 세트!


* 꼰대 (명사)

1)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先生)’을 이르는 말.

2) 학생들의 은어로, ‘아버지’를 이르는 말.

3) 학생들의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1. 내가 말했잖아

처음 이 말을 직장 상사에게 들었을 때, 머리가 멍했다. '아니 무슨 말을 했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한 말이 한두 가지도 아니고, 그걸 내가 어떻게 다 기억하라는 거지? 나한테 한 말이 맞기나 한가?' 등등.

생애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해 놓고, 무슨 말을 했다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했었다. 하지만 두어 달 지나고 나니, 그 선배의 모든 말은 되돌림표였다. 진짜 매번 했던 말을 다시 또 하고 다시 또 했다. 마치 처음 하는 것처럼. 그 무한 재생에 나중에는 입모양을 맞춰 소리 없이 더빙을 하기도 했다. 이제 레퍼토리 다 읽혀버렸다는 것을 본인도 알겠지?

그리고 반년 정도 지나고 나니, "내가 말했잖아."는 합법적인 되돌림표를 인정하는 자아성찰적 발언이었다. "내가 이 말을 너한테 한 걸 나도 알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는 가장 적합한 이야기라서 강조의 의미로 다시 들려준다. 잘 들어라 신입아!" 이렇게 번역되었다.

왜 모를까? 이미 한 말을 후배가 외울 정도로 많이 했는데도 또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대는 당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다른 버전의 말은 없을까? 만일 없다면 효과도 없는 이 말은 제발 참아주세요.


2. 라테는 말이야.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금기어!

"나 때는 말이야~ 이렇게 할 생각도 못했다." 이 말을 듣는 후배의 표정은 아주 어둡다. 그때에 살았던 것은 오로지 선배님의 경험이고, 지금은 2025년. 그때와 시대도 상황도, 구성원도 다릅니다. 제발 과거의 영광에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를 끌고 들어가지 말아 주세요. 라테 말고, 지금!!! 지금을 봐주세요. 그나마 매스컴의 영향으로 이 라테를 말고 있는 선배들도, 이미 금기어라는 것을 알아서 피식피식 웃으며 말을 시작한다. 스스로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가 이미 알고 있음에도 라테를 또 말고 있는 것을 보면, 라테의 힘은 세다! 강력한 중독 라테 한 사발!


3. 너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선배님은 신인가요? 제가 이렇게 될 것을 저도 몰랐는데, 어찌 매번 제가 속상한 일을 당할 때마다 알고 계셨다고 하시나요? 그럼 미리 말씀이라도 해주시지. 저에게는 항상 라테만 들려주셨잖아요. 제가 오늘 지금 이런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고는, 아무런 말씀도 해주지 않고 본인 이야기만 하셔 놓고, 본인께서는 계속 말을 했다고 하시니 참 당황스럽습니다. 제가 들었던 것은 선배님의 라테 시절의 화려한 생활이었는데, 어찌 그 속에서 우매한 제가 답을 찾고 안내문을 눈치를 챌 수 있었을까요?

선배님 저는 '소'입니다. '소 귀에 경을 읽었다'라고 하시는데, 저는 소이니 소의 언어로 말씀을 해주십시오. 독경이 너무 어려워 도저히 저에게 적합한 사례와 조언을 구별하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선배님의 날개 달고 날던 시절 이야기만 기억에 납니다. 우매한 '소'인 저를 깨우쳐주십시오.'


이런 생각만 난다. 제발 신도 아니면서 남의 실수와 불운을 예견한 것처럼 말하지 말자. 듣는 입장에서 더는 말을 섞고 싶지가 않다. 상대의 속상한 마음을 알아주고 그저 하소연을 들어주기만 해도 멋진 선배로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입을 열지 말고 귀와 지갑을 열어주시라.



4. 네가 그럼 그렇지.

엥? 언제는 나에게 기대라는 것을 했었다는 말인가? "네가 그럼 그렇지." 이 말은 최소한 상대에게 크던 작던 기대와 응원, 지지를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멘트이다. 그저 나를 일개미로 취급한 선배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면, 언제 나도 모르는 기대를 하셨던 것인지 감읍하고 분수에 넘치는 사랑에 몸 둘 바를 모르게 된다. 그런데 선배님 '저를 아세요?' 아니, 나도 아직 나의 테두리와 한계, 가능성에 대한 규모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선배님 눈에는 내 견적이 빠졌나 보다. 언제 나를 다 측량하셨던 것인지, 나를 판단하고 평가하셨다. 그래서 선배의 연륜은 무시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미 그럴 줄 알았던' 저에게 왜 그런 과분한 일을 맡기는 것입니까? 이것도 후배 사랑인가요? 저의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기회라는 위대한 사랑을 주신 것인지.. 그렇다면 저는 더 고개를 들지 못하겠습니다. 선배님....



5. 감히 네가?

보통 이 말은 눈빛으로 나눈다. 부들부들 떨면서 눈을 위아래위아래. 화려한 동공 운동을 겸비한다. 살면서 이 멘트를 온전하게 들은 적은 없지만, 그 눈빛과 표정은 몇 번 본 것 같다. "원래 그래."의 틀에 반기를 들었을 때, 이런 사나운 눈빛을 맞은 적이 있었다. "원래"가 어디 있을까? 그 원래는 편의와 실용성의 범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구성원과 바뀐 시대를 만났다면, 적합한 편의와 실용의 기준은 재조정되어야 한다. 그러니 원래라는 말로 본인의 무성의함을 가리지 말자. 차라리 솔직하게 "거기까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적절한 선을 찾아보자"라고 말하는 것이 더 신뢰 가는 선배다.



이렇게 조잘조잘하지만, 나도 꼰대다. 그래서 날마다 도전받고 거부를 경험한다. 아랫세대가 윗세대에게 선을 긋는 것은 자연순환이다. 그러니 내 후배들에게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저는 먹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를 항상 듣는다. 그때 몸속에 꿈틀거리는 이 5종 세트를 꿀꺽 참아내는 것이 우리의 숙제가 아닐까?

단 하나라도 입에 올리는 순간, 일시적인 소통조차도 끊어지게 된다. 그러면 우주 미아가 되어 홀로 동동 떠다니는 '우주 먼지'가 될 것이다. 마지막까지 참고 또 참아서, 오늘 퇴근 후에는 이불킥 할 일이 없기를!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19화말의 거품을 조금만 걷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