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진심만 전해볼까?
"다음에 밥 한번 먹자!"
우리가 일상에서 의식 없이 반가움을 표현하는 관용어.
과거에는 이 말은 귀한 시간을 맞춰 함께 만나자는 '약속'의 의미였다면, 지금은 그냥 보내기 애매한 사이에 굳이 다시 볼 마음이 없어도 의례적으로 하는 빈말에 가깝다. 얼마 전 방송에서 모 연예인이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집에 찾아서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 연예인의 진지한 눈빛에 나는 설득당했다.
[밥 먹자는 제안을 받음 - 직접 방문 - 식사 함께하기]
이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묻는 그 마음에 공감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간 집이 한두 곳이 아니라는 부분에서, 이 연예인은 '특정한 자기만의 반응식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일을 당한 상대가 '전화번호도 바꾸고 연락두절'이 되었다니, 상대편 입장에서는 보통 일은 아니었나 보다.
평소 지론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자!'이다. 그것이 비록 관용어 수준의 대화일지라도 마음이 없다면 말도 줄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옳다고 본다. 그래서 평소에 진심이 아니면, 절대 이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안부를 물으면서 자연스럽게 약속을 만들어서 밥을 사주며 마음을 나눈다. 그 기간이 보통 2~3달에서, 때로는 1년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머릿속에는 '장부'가 있다. 내가 입으로 맺어놓은 '밥 사주기 장부'가! 이런 모습을 무섭다 소름 끼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외부 활동을 잘하지 않는 나에게 '밥 약속'은 아주 중대한 일정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다음에 밥 한번 먹자"는 소중하게 다루어 쓴다.
그런데 곤혹스러운 것은 '상대방의 밥 한번'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회생활 초반에는 완전 고민을 하고 대답을 했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흔쾌히 "네."라고 대답한다. 진심인 상대는 나처럼 다음에 다시 연락을 하고 시간을 맞춰 만날 테니까. 속으로 '진짜로 만나자고 하면 난처하겠다' 싶은 사람도 일단은 대답은 해놓는다. 그 "네" 뒤에는 '상황 봐서요'가 깔려 있지만, 그것까지는 입에 올리지 않는다. 모 연예인보다는 사회성이 나아진 것이겠지?
"잘 지내고 있지?" / "네~ 잘 지내요."
서로의 안부를 묻는 따뜻한 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애매한 관계에서 낯섦을 감추기 위해 돌려 막는 보호막처럼 사용한다. 물론 당연히 진짜 서로의 안부를 염려하고, 그 마음에 솔직하게 대답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저 "잘 지내고 있지?"를 물을 정도의 사이라면, 우리는 한동안 꽤 오랫동안 아주 무심하게 서로 모르고 지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시간의 거리만큼 어색 열매가 뚝뚝 떨어지는데, 이중에 나의 고달픈 근황과 근심을 전하기란 애매하다. 서로의 안부를 염려할 정도로 친밀했다면, "지난번에 ~ 한다고 했는데 , 어떻게 잘 해결되었어?"라고 물었을 것이다. 그러니 가벼운 인사에 진심을 답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저 인사말을 영어로 배울 때도,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만 답습하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는 Bad, So so, Not good, Depressed.. 등등 많은 감정 표현이 있을 텐데도 오로지 저 fine만 기억난다. 그래서 진심으로 내 감정을 표현하면, 상대방은 "어흑!!"하고 마구 도망친다. 이 또한 인사치레다. 참 한국인들은 인사치레가 많기도 하다. 그러니 상대가 다양한 감정 상태와 어려운 현실을 토로해도 당황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진심으로 물어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바람처럼 스쳐가는 인연이 아니라면... 부디!
"차린 것도 얼마 없지만 많이 드세요."
손님대접 때 상대가 부담을 느낄까 염려하는 겸양의 말.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인사말이다. 하루면 손님 다과상을 3~4차례 차리던 시절. 우리 엄마가 항상 하던 대사였다. 수줍어하는 미소와 약간의 홍조를 곁들여서 저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셨다. 왜냐하면 그 부엌에서 엄마 일손을 돕던 나는 보았기 때문이다. 평소 먹지 않던 새로운 반찬에 찌개에 갓 지은 밥까지 엄마는 뛰어다니면서 손님상을 차려 올렸다. 그러니 '차린 것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릇 숫자만큼 다 차린 것이다. 눈치 빠른 손님들은 그럴 때 "아이고! 상다리가 부러지겠습니다." 이런 장황한 말로 엄마의 수줍은 허언에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눈치가 없는 손님들은 "네. 급하게 준비하셨으니 그럴 수 있지요."라고 답을 한다. 진짜 어른이지만 군밤을 한 대 날리고 싶었다.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에게 저 밥상은 아깝다는 생각이 불길처럼 솟았다. 그리고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돌아가실 때, 심부름하던 나에게 천 원짜리 용돈이라도 주는 것은 장황한 아저씨들이었다. 눈치 없는 아저씨들은 용돈도 없다. 속으로 '그만 와라.'를 외치며 보내주었다.
유독 남의 눈치도 많이 보고, 인간관계에 목을 매는 한국인들의 말본색! 과한 겸양도 이제는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아! 이 '한국인의 말-골병'!
이 고질병이 싹 낫는 경우를 보았다. 관점이 외부에서 오롯하게 내부로 변하며, 본인 감정을 존중할 줄 아는 경지! 바로 70살 넘은 우리 엄마!
'시간은 정말 약이다. 말-본색조차도 투명해진다!'
오늘도 24시간 옳게 섭취합시다!
빈말 금지!
내놓은 말에 책임지기!
자신 없으면 말수 줄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