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끗 차이
오늘은 말-본색 30화!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로 마지막화까지 올 수 있을 줄 몰랐다. 이 글 덕에 말과 행동을 살펴볼 수 있었고, 주변 사람들도 애정 어린 눈으로 담아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한 끗 차이'로 크게 달라지는 것은 말뿐이 아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처음부터 마음에 두었던 것은 한시였다. 산문은 어감의 차이가 크지 않지만, 함축성이 강한 한시는 한 끗 차이로 작품의 여운과 감동이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오늘은 '꿈에서조차 만나고 싶은 낭군'을 그리는 시조와 한시를 소개하려 한다.
꿈에 다니는 길이
이명한(李明漢)
꿈속에서 다니던 길에 오고 간 흔적이 난다면
그대의 집 창밖의 길이 돌로 깐 길이라 하더라도 다 닳으련만.
꿈속에 다니는 길에 아무런 흔적도 없으니 그것을 슬퍼하노라.
[출처] 네이버 블로그, 작성자 Red Cow
몽혼(夢魂)
이옥봉(李玉峰)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요사이 안부가 어떠신지 여쭈어 봅니다.
달이 비단 창문에 이를 때면 이내 몸은 한스러움이 많답니다.
만일 꿈속의 넋이 다니는 길에 흔적이 있는 것이라면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겠지요.
[출처]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
이명한의 시조는 한글이라 처음부터 쉽게 읽혔다. 그런데 이옥봉의 '몽혼'은 한시라서 원문을 보고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글자 그대로 옮긴 나의 단편적인 해석은 이러했다.
近來安否 問如何(근래의 안부 어떠한가 묻습니다.)
月到紗窓 妾恨多(달이 창가에 뜨면 첩의 한은 큽니다.)
若使夢魂 行有跡(만약 꿈속 혼이 다니는 자취가 있다면)
門前石路 半成沙(문 앞의 돌길은 반쯤 모래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풀어주시는 대로 한 줄 한 줄, 순차적으로 암흑에서 빛이 들어왔다. 특히 '약사몽혼행유적, 문전석로반성사'에서 기존에 알았던 이명한의 시조와 똑 닮은 구절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반짝이는 섬광을 잊을 수 없다. 그 뒤로 한참을 보고 또 보면서 문구를 이렇게도 바꿔보고, 또 저렇게도 바꿔보며 즐겼다.
몽혼에 어찌 자취가 남을까?
다만, 부질없이 쉽게 깨고 마는 숱한 그리움의 밤을 님께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님의 집 앞의 돌로 놓은 그 길이 다 부서져서 모래가 되었을 것이라는 과장이 한편 이해가 된다. 그립고 그리워 긴 밤 내내 오고 가며 전전긍긍했을 그 꿈속의 넋이 가엽고 안쓰러워지는 대목이다. 혹 너무 과하다 비웃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 '반쯤'을 더하지 않았는가? 그 섬세한 배치와 시적인 상상력이 우리를 여인의 긴긴 그리움으로 이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밝아진 동녘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무한히 깊고 무거운 그리움을 알 것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그리움이 새벽을 가르는 그런 날들... 이명한 시조의 감성을 바탕으로 한 구절 한 구절이 어떻게 새 숨결을 얻었는가도 살펴줬으면 한다.
참 한시는 어렵다.
토씨 하나에도 참 달라진다.
그래서 해석하는 사람의 섬세한 감성에 따라 많이 변하고 미묘한 맛의 차이를 보인다. 그것이 또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