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너에게
옛날에 '쪽'이라는 말은 얼굴을 세는 단위로 쓰였다. 책 페이지를 세는 말에서 일면(一面), 이면(二面)이라고 썼는데 요즘은 '한 쪽', '두 쪽'으로 세고 있는 데서 면과 쪽을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때의 '쪽'이라는 말은 얼굴과 상통하는 말이다.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대단한 거물들이 다 모인 것이다'라는 말에서 '면'은 사람의 얼굴을 세는 단위이다. 그러니까 사람의 얼굴을 세는 단위인 '쪽'을 물건을 세는 단위로 바꾸고, 비하하여 '쪽팔리다'라는 형태의 속어가 되었다.
원래 '창피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좋지 않은 일로 여러 사람에게 얼굴이 알려지게 되어 기분이 몹시 상하다'라는 말이다. '쪽팔리다'라는 말도 역시 창피하다와 같은 뜻으로서 사용되었는데 속어로 쓰이고 있는 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쪽팔리다 (어원을 찾아 떠나는 세계문화여행(아시아편), 2009. 9. 16., 최기호)
학교에서의 생활은 언제나 반작용으로 흐른다. 작용의 힘과 그것에 반응하는 아이들의 반작용이 서로 뒤섞여서 삶을 이룬다. 그러니 생활 규칙이나 학교 생활 규정을 안내한 뒤에 발생하는 '반작용'은 교사의 몫이다. 일정한 선을 제시하고, 교사에 따라 '적용 가능 범위'를 조율하며 학생들과 만난다. 그래서 반작용을 흡수하는 방법이 각자 다 다르다.
교육에 정답은 없다. 다만 함께 '지향하는 방향성'은 존재한다. 그러니 각자의 방식으로 '학습자들의 반작용'을 공들여 가며 유도할 수밖에 없다.
학급 학생이 생활 규정을 어겼다. 위반 행동인 것을 알고도 그랬다. 담임으로서 그 행동을 지도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다른 선생님들께도 지도를 받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규정 위반을 알고도 했다는 학생을 위해 뭐라 대변할 수 있을까? 공동체 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라는 뻔한 이야기를 하고 돌려보냈는데, 입맛이 참 썼다.
'진짜 그렇게까지 혼날 일인가?' 사실 나도 이 질문에는 확신이 없다. 종례 후에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는 '그 순간에 그러고 싶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선생님, 저 때문에 쪽팔리셨죠?"
아주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묻는 것이 아닌가?
쪽이 팔렸다? 아니었다.
"쪽이 왜 팔리니. 속이 상했지."
이 말에 학생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구구절절 다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사실 나는 속상했다. 명절 기간을 겹쳐서 시험 기간을 잡은 각박한 시스템도, 이 정도의 틈도 흡수할 수 없는 규정과 규칙도, 쉽게 꺾일 줄 알면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한 그 아이의 마음도, 그 마음을 다 알면서도 원칙적인 잔소리만 해야 하는 나도. 마음이 안 좋았다.
'옳음'은 무엇일까?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리고 진짜 옳은 것은 무엇일까?
마음에 여러 가지 물음들이 떠올랐다. 그중에 침묵하고 있는 나를 보며, 오늘은 참 입이 썼다.
'입이 쓰다'
참, 사실적인 관용어다. 속이 상해도, 마음이 아파도, 좌절했어도, 화가 나도 입이 마르면서 쓴맛이 돈다.
'입이 꺼끌거린다. '
'입이 소태처럼 쓰다.'등등
'소태'는 쓴 맛을 자랑하는 소태나무.
우리말의 수식어는 참 쉽고도 다양하다. 나의 감정이나 상태에 '~처럼'만 붙이면 언어의 상상력이 펼쳐진다. 요즘 사람들은 소태나무를 모르니 '3샷 넣은 블랙커피처럼 쓰다.'로 바꿔 보는 것은 어떨까? 언어도 세상 따라 옷을 바꿔 입어야 하니... 잘 입혀 보고 싶다.
-업무가 여주처럼 쓰다.
-그 사람은 카라멜마끼아또처럼 달다.
-와플처럼 오늘 하루가 아주 고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