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서 그래

우린 모두

by 이상

그 형님은 술만 마시면 회사에 안 나왔다.


“이번에도 암 걸리셨나?”


술만 마시면 다음날 연락 두절되었다가,

심하면 며칠 있다 사무실에 나와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다 보니 마지막엔 본인이 암 걸렸다고 하지 말아야 할 변명까지 대 버렸다.


알고 보니 갑상선 암 초기 증상이었다고.


“형님, 좋은 대학교 나와서 머리도 좋고 일도 잘하는데, 왜 술만 마시면 회사를 안 나오는 거야?”


“나 이혼했어...”


이 인간이 또 뻥치는 건가 싶었지만 설마 이런 걸로 뻥치지는 않겠지 싶어 일단 놀랐다.


위로를 해야 할지, 말없이 술잔을 기울여야 할지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더 얘기를 해봤다.


“아니, 이혼을 해서 힘든 건 알겠는데, 왜 술 마시고 회사를 안 나오시냐고. 연락도 없이.

어, 술 적당히 드시고 다음 날 회사를 나오던지, 못 나오겠으면 아예 휴가를 내고 먹던지 해야 할 거 아니야. “


일도 잘하고, 윗사람들에게도 꽤 잘하는 편이라 팀장이 되었는데, 팀장이 되어서도 술 마시면 연락 없이 회사 안 나오는 버릇은 못 고쳤다.


팀원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근태(근무태도)에 문제 되는데 팀원들의 근태를 관리해야 할 팀장이 계속 이러니 담당 임원이 가만 둘리가 없었다.


“저 xx는 안돼.”


단호한 한마디와 함께 인사철도 아닌데 팀장 선임 6개월 만에 팀원으로 내려왔다.


“힘들다. 술이나 한잔 먹자.”


그렇게 만들어진 술자리에서 아쉬워서 충고랍시고 했는데, 내가 하는 말을 그렇게 듣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래, 내 잘못이지. 술이나 마시자.”


그리고 보란 듯이 다음 날 출근하지 않았다. 연락 두절은 당연.


잘못하면 짤리겠다 싶었던지 이 형님은 이제 술 먹다 새벽이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새 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 인생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다 결국 내일 저 회사 못 나갑니다 통지하는 거였다.


몇 번 새벽 전화를 받고 몇 시간 통화하는 걸 받아주다 안 되겠는지 새 팀장은 이 형님에게 말했다.


“밤에 술 먹고 전화를 하지 마시고, 그냥 휴가를 내고 술을 드세요. 한두 번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


“죄송합니다. 앞으론 안 그러겠습니다. “


그리고 그날 밤 술 마시고 또 전화.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


“외로워서 그럽니다. 외로워서.

대출 때문에 회사 관두지도 못하고, 퇴근하고 같이 밥 먹어주던 마누라도 바람 나서 헤어지고,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


그 절규가 왠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똑똑한 사람이라 세상과 미래를 너무 잘 알아 버려서 저러나 싶기도 하고, 나는 무뎌져서 그냥 그러려니 남들 다 그렇게 사니깐하며 약으로, 술로 버티며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 나기 전에 어설픈 충고는 하지 말고, 술 한잔 기울이며 얘기나 들어줘야겠다. 퇴근 전에 같이 휴가 올리고.


좋은 여자 만나서, 술 안 마시고도 웃음 짓고 잘 사는 저 형의 안녕을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