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파리 목숨 머슴 신세

by 이상


어찌 보면 꽤나 좋은 말이다. 구조를 조정한다는 것.(re-structuring) 경영을 잘해서 돈을 더 잘 벌기 위해 기존의 구조를 조정해서 더 효율적으로, 더 잘해보자는 것이 본 뜻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IMF 사태를 겪었던 우리 사회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말로 통용된다. 대규모 감원으로 인한 실직. "해고는 죽음이다."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것처럼 구조조정을 당하면 고통스러운 것이 당장 생계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앞으로 일자리를 다시 찾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한 회사가 구조조정을 했다는 것은 사회적인 지탄을 감수하고 언론에 언급되면서까지도 진행을 했다는 것인데 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경우가 많고, (물론 그렇지 않고 꼴 보기 싫은 인간들 내보내려고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보통 그 회사만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업계, 더 나아가 경제 전체가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 그래도 한 회사에 맞춰진 소모품으로 키워져서 다른 회사에 끼워 맞히기도 쉽지 않은 상태라 이직이 쉽지 않은 터에, 다른 회사도 상황이 좋지 않으니 소위 말하는 "TO" 즉, 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소수의 살아남는 강자 회사들로 많은 인력이 쏠리니 경쟁이 치열해서 뽑히기도 힘들고 뽑힌다고 해도 네고 파워가 없어서 회사가 원하는 직급, 연봉에 도장을 찍게도 된다. "들어오겠다는 사람 줄 서 있으니 싫으면 가시라. 당신 아니고도 할 사람 많아. 요즘 같은 때 뽑아주는 것도 감사하게 여겨라."


더군다나 "당신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면 그 회사에서 이렇게 내치나. 다 잘라도 뛰어난 사람은 남기지."라는 말처럼 구조조정의 꼬리표가 달리면 이직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회사를 다니다 직접 겪으면 어떨까. 참담하겠지. 그래서 보통 이런 통지를 받으면 울거나 화를 낸다고 한다. 나도 통지를 한 사람에게 들은 얘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자르기로 결정하고 숫자를 할당하고, 나이 많고 연봉은 많이 받는데 할 일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을 지정한 사람은 통지를 하지 않는다. 자기들도 싫겠지.


대개 통지를 받는 사람의 바로 윗사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그런 역할을 맡는다. 기분이 좋을 리 없으나 자신도 이 회사를 더 다녀야 하고 그러려면 위에서 시키는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통지를 한다. 가까운 사람인데 무 자르듯 문자로 통보하겠나. 회사 사정 설명하고 억울하다는 얘기 들어주고 술도 한잔 하고. 그렇게 진정시켜주며 할 일을 할 뿐이다.


억하심정에 또는 당장 나가도 할 일이 없는데 돈도 없어 막막한 사람들은 일단 버티기도 한다. 정말 운 좋아서 상황이 나아지고 사람이 바뀌어서 버티다 버티다 결국 살아남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해본 사람만이 안다. 외딴곳에 책상 하나와 덩그러니 마주하고 있고 일도 없고 누구도 말 한마디 걸어주지 않는 굴욕과 창피를 버티고 이겨내는 것은 보통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요즘은 문자 해고 통지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하니, 비유하자면 사귀는 이성으로부터 문자로 이별 통보받는 기분이랄까. 인생의 가장 큰 스트레스가 이혼과 실직이라고 하니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보통 이 구조조정이라는 것도 징조가 있다. 세상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방귀가 잦으면 x이 나온다고 하지 않나. 제일 큰 징조는 월급이 안 나오는 것이다. 회사가 어려워지는 것을 말로만 듣다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전 단계인 상여금을 적게 주거나 연봉 인상이 없거나 하는 것도 반발이 있겠지만 월급이 안 나오면 그것도 몇 개월 안 나오면 난리가 난다.


생활비, 교육비, 관리비, 세금, 할부금, 카드값, 월세, 대출 원금과 이자 등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야 할 돈은 너무도 많다. 그것도 고정적으로. 그러다 보니 월급을 제때 받아도 스쳐갈 뿐인데 몇 달이 막히면 바로 대출이다. 신용카드 돌려 막기, 신용 대출, 마이너스 통장 등 갖가지 종류가 많지만 결국 다 "빚"이다. 갚아야 할 돈. 인생의 족쇄.


더군다나 이전에도 빚이 있는데 또 빚을 내야 한다면? 절망이다. 빚에는 한도가 있게 마련이고. 시중 은행인 1 금융권에서 못 빌리면 자꾸 밑으로 내려간다. 저축은행, 사채까지. 내려갈수록 이자가 커지니

갚기는 더 어려워진다. 그야말로 악순환. 이쯤 되면 파산신청도 남의 일이 아니게 된다. 구조조정이라는 게 이래서 무섭다.




너무 안 좋은 말만 한 것 같다. 마지막은 그래도 그 와중에 일어나는 "새옹지마"와 같은 일로 끝내고자 한다.


어떤 분은 권고사직 통지를 받았다.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회사를 위해 젊은 날을 바쳤는데"라는 단골 멘트가 자기 입에서 절실하게 터져 나올지 몰랐단다. 이미 정해진 것 발버둥 쳐봐야 못 볼 꼴만 당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정리하고 대차게 말했다.


"그래, 좋다. 퇴직 위로금이나 많이 챙겨줘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이 있다. 사장님께 결재 올리는 권고사직 예정자 명단 1번에 내 이름 올려줘라. 가서 뵙게도 민망하고 그게 내 사장님에 대한 인사다."


인사팀에서 그리 하겠다고 말하고 진짜 그렇게 해줬다. 사장님이 명단을 보고 이 사람을 왜 자르냐고 경영지원본부장과 인사팀장에게 반문했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어떤 사람은 실장에게 밉보였다. 원래 구조 조정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회사에서는 사람 수를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인건비를 낮춰야 하기 때문에) 화살을 눈엣가시인 이 사람에 돌렸다.

일도 주지 말고 말도 시키지 말라는 "왕따" 지시도 당연히 빼놓지 않고, 언제까지 꼭 내보내라며 밑의 팀장에게도 말했다. 오랜 시절 알아왔던 그 팀장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중간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당사자만큼은 아니겠지만.


이 사람은 그래도 젊은 축이었다. "사오정"도 안된 사람이었다. 신입사원으로 들어와서 이곳에서 적지

않은 세월을 다녀왔고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도 컸다.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신입사원 시절만 해도 회사 배지를 차고 사원증은 꼭 목에 걸고 다녔다. 소속감도 자부심도 컸던 그때였다. 지금은 그 사원증이 마치 개목걸이 인양 괴롭다.


그래서 이곳저곳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어떤 사람은 거의 무릎 끓고 비는 수준이라고 했다. 하긴 한번 옮겨본 사람은 그렇지 않지만 처음 자기가 오래 다닌 직장을 그만둬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야 하는 것은 큰 공포지. 옮겨본 사람에게는 수고 일지 몰라도. 제길 이딴 것도 경험이라는 건가.


그 사람의 외롭고 애처로운 술자리는 매일매일 계속되었다. 몇 달 동안. 어차피 낮에 일도 주어지지 않으니 매일 저녁 술 마시고 회사에서는 숙취 해소하며 그냥 앉아서 버틸 뿐이었다. 그러다 구사일생 자신을 살려줄 사람을 만났다. 정말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는데 정말 땅바닥에 머리가 닿을 뻔했다.


운이 좋았는지 그 사업부는 계속 좋은 실적을 내서 회사에서 가장 높은 성과급을 챙겼다. 옮긴 게 잘된 것이었나.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