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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Jan 07. 2023

낭만에 대하여

김용필 / 미스터 트롯 2

미스터 트롯 2를 보시진 않은 분들이라면,

오타인 줄 아실 수도 있을 것 같다.


조용필 아닌가?


내가 그랬다. 이름이 잘못 나온 것 아닌가?

아니면 출연자 분이 이름을 각인 시키려고 일부러 저런 건가 싶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효신이 있다.)


그런데 본명이셨고, 심지어 현직 아나운서셨다.


방송에선 MBN에서 앵커로서 활동하고 있어서, TV 조선에 나와도 되냐고 김성주 진행자가 농담 반 진담 반 던지기도 했다. 글을 쓰며 찾아보니 프리랜서 아나운서라고 나오기도 한다.


요즘은 아나테이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나운서가 반 연예인인 경우도 있다. (전현무 씨가 대표적이죠)

아나운서 분들이 뉴스도 점잖게 전문성 있게 잘 진행하시지만, 들어보면 연말 송년회 등을 할 때 끼도 많아서 흥겹게 잘 노신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연기대상, 연예대상 등 연말 방송국 행사에 가끔 아나운서 분들이 무대에 나와서 공연을 하시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분 첫 라운드에서 진선미 중 ‘미’를 차지했다.


이 분은 가수 진성님이 밥 먹고 살만한 사람들 아닌가라고 말한 직장부였다. 취미 정도로 하는데 좀 하는 정도의 의미였던 것 같다.


현역부에선 현직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며 생계로, 성공하기 위해 절박하게 매일 연습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승부라고 다른 방송사에서 우승한 사람 등 실력자들이 즐비한데 그들을 이기고 3위에 올랐다.


솔직히 내 귀에는 1위였다.

먼저, 안 들어본 분은 한번 들어보시라.


그 다음 이야기 하자.

(사실 노래가 훌륭해서 말할 필요가 없을지 모르지만 ^^;;)


https://youtu.be/Td5L6iQgV78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첫 소절부터 좋았다.


(첫 소절의 중요성은 맨 아래 이전 글 참조해 주세요^^)


다른 아나운서 분이 먼저 나와서 신나게 하셨지만, 그냥 열심히 하셨네 정도여서 그 정도로 예상했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듣자마자 흐린 비 오는 날이 느껴졌고,

다방에 앉아 까지.

스벅, 까페가 익숙한 나에게, 음습한 느낌의 다방마저 자연스럽게 다가왔고 그렇게 노래가 흘렀다.


도라지 위스키를 마셔보진 않았지만,

내 감성으론 블랙 러시안 칵테일 정도로 느껴졌다.

(요즘 친구들에겐 어떤 걸로 느껴질까? 궁금하다.)


짙은 색소폰 소리 속의 ‘낭만’.

이 분이나 최백호 님이 들었을 색소폰 소리가 내가 들은 음악과는 달랐을 수 있었지만,


어느 어둑한 하늘, 비 오는 날.

지하에 있던 칵테일 바에서 블랙 러시안을 마시며 재즈를 들었던 그날이 떠올랐다.

음악이란 참.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이 가사도 참 묘하다.

솔직히 이런 상황. 특히 요즘 어린 여자 분들이 보았다면 좋은 소리가 안 나왔을 거다. 나도 그랬을 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연스러운 광경으로 다가오고, 노래를 듣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되려, 내 감성으로는 신해철 님의 ‘재즈 까페’가 떠올랐다.


‘위스키 브랜드 블루진 하이힐 . . .


빨간 립스틱 하얀 담배연기

테이블 위엔 보석 색깔 칵테일

촛불 사이로 울리는 내 피아노 . . .‘


의미는 다를지라도 그 분위기라는 것이.

그랬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아,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공감이 되어버렸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돈 벌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분명 열심히 살고 나름대로 성공도 거두었는데.


정말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

중요한 협상을 오랜 기간 끈질기게 진행하고 마무리 한 다음 리포트까지 마치고 난 후, 혼자 남은 회의실에서의 공허함.

꽤 오랜 기간 사회 생활하며 안정적인 삶도 살고 하루하루 잘해나가고 있는데. 문득 차가운 어느 겨울날, 외로운 가로등 아래 내리는 눈을 보는 쓸쓸한 한 사람.


그 잃어버린 것이 느껴졌다. 그때의 추억과 함께.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낭만 (浪漫)


이제는 옛날 말처럼 느껴지는 그 단어.

영어로 하면 romance.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감미롭고 감상적인 분위기.


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마저 달콤한.


20년 동안 방송은 원 없이 했고, 노래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 용기를 내어 나왔다는 49세의 이 분의 노래에 내 인생과 내 삶에서의 낭만이 비쳤다.


어쩌면 오늘밤 내리는 눈과 어둑한 밤 때문에 더 그런 것일지도.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63


浪 물결 랑, 漫 흩어질 만

이 밤 일본에선 로망이라고도 불리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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