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발견한 회사생활의 장점
정 들었던 사람과 헤어지면 슬픕니다.
애써 참았던 눈물이 나기도 하지요.
지금은 나이도 먹고,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많이 무던해지고, 오랜 해외생활을 하며 외로움도 덜 타는 아저씨가 되었지만,
어릴 적 명절에 손꼽아 기다리던 친척이 와서, 반갑게 맞이하고 놀다가, 헤어질 때면 눈물을 보이던 아이였던 저의 모습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어디 가나요?
십수년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아직도 회사생활에 적응하고 있듯,
이번 이별은 처음이라,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되돌아 생각해 보았을 때, 더 잘해줄걸 하는 후회가 남고, 부족했던 부분들이 남아 있다면 더 그렇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경우와 같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계속 눈물만 나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면,
저는 출근을 합니다.
책임감과 의무감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슬픈 날 집에만 있으면 계속 무기력해지고,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 뿐이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는, 한숨만 나오고 나가면 일이 손에 잡힐까 싶지만,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찬 바람을 쐬며 걷다 보면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합니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치이면, 바로 이 치열한 현실에 부대끼기 때문에, 옛 추억을 곱씹으며 슬퍼할 겨를이 없습니다. 당장 부딪히는 이 현실에 대응하고, 느끼는 감정이 크기 때문이죠.
만원 지하철에서 이별의 슬픔이 클까요? 당장의 밀고 밀리며 끼여있는 힘겨움이 더 클까요?
그런 지하철을 빠져나오면 안도감마저 듭니다.
하지만, 이 출근은 치열한 하루 동안 회사 생활의 시작일 뿐이죠.
즉, 이제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회사에서 말이 통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동료도 (친한 동기가 대표적인 예죠.) 있으면 좋긴 합니다.
그래도, 모든 것을 다 말하고, 공감을 받기는 쉽지 않죠. 오죽하면 처음 본,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속 마음을 다 풀어놓을까요. 다신 안 볼 사람이기에 편하게 다 얘기해 버리는 것 같습니다.
회사에선 그런 공감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죠.
대표적으로, 우리 P 전무님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슬픈 이야기를 해봤자,
“애냐? 질질 짜기는. 사내자식이.”
정도의 공감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반응이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차라리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분들과 말씀을 나누다 보면, 슬픔의 감정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마음 자체가 얼어 붙습니다. 건조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기계가 되어가는 느낌이죠.
전에 해외 지사에서 일을 많이 벌려, 한국인 직원들이 많이 나와 있을 때 이 분이 격려차 오셔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일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 앞으로 조금만 더 수고해 주시라.”
에서 그치고, 금일봉이나 직원들끼리 회식이나 시켜주시지. 꼭 이상한 말씀을 남기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나이 먹고 만나는 여자들. 다 여러분들 해외수당으로 받는 돈 보고 오는 여자들이야. 그러니까 딴짓들 하지 말고 일만 열심히 하세요들.
아시겠죠?“
아니, 이게 웬 망발입니까.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왜 굳이 해외에서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하시는 걸까요. 참 나.
나이 먹고도 좋은 사람들끼리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그럴 수 있는데 말이죠.
저래가지고 어떻게 결혼해서 애 낳으시고, 아직까지 이혼도 안 하시고 잘 사시는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분명히 연애 한번 못하다가 선 봐서 겨우 결혼하셨을 것 같은데, 의외로 또 연애결혼을 하셨습니다.
심지어 자녀 분은 셋. 부지런하신 건 알지만, 단순히 부지런하기만 해서는 안 되는 걸로 아는데. 참, 세상사는 미스터리가 많습니다.
평일 저녁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계속 사무실에 계셔서 거의 회사의 붙박이 장 같은 느낌인데, 용케 그것까지 다 이해해 주시는 사모님이 신기합니다. 이해보다는 포기겠죠?
이 분이 대표적이고, 도처에 이런 지뢰 같은 분들이 깔려 있기 때문에, 속 마음 터 놓고 위로받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그냥 조용히 일이나 하는 게 마음 편합니다.
사무직의 회사 일이란,
보고서나 이메일의 글자와 내용이 틀려선 안되고,
숫자가 틀려선 더더욱 안됩니다.
“네가 몇 년을 일했는데, 이런 걸 틀리냐
정신 좀 차리고 살자.“
나이 먹고 이런 말 듣지 않도록, 일 할 때는 다들
말하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날따라 메일은 왜 이렇게 많이 오고, 할 일은 왜 이렇게 많은지요.
정말 슬퍼할 겨를이 없습니다.
오전에는 바빠서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구내식당은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어, 동료들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할 때 우르르 가서 빨리 먹기 전쟁을 마치야 합니다. 밥을 그야말로 때려 넣고, 그제야 홀로 밖에 나와 바람을 쐽니다.
슬픔이 몰려 오려는데, 그날따라 날이 풀리고 햇살이 비추는 곳은 제법 따뜻하기까지 합니다.
얼마나 다행인가요.
추운 날씨라면 외로워서 더 생각이 날 수 있었는데요. 춥진 않을까, 추울 때 함께 따뜻하게 있었던 일이 생각나며 슬퍼졌을 겁니다.
햇빛이 이렇게 고마운 날이 없을겁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더 이상 연락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착잡해집니다.
그런데 몸은, 샤워를 하고 나니 졸리기 시작합니다.
나이를 먹어서 덜 슬픈 걸까요. 슬픔이, 하루종일 시달려 지쳐서 찾아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는 걸까요.
잠자리에서 겨우 그 친구에게, 돌아오지 않을 문자를 남깁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요.
부족한 날 챙겨주고 함께 있어줘서 고맙고 감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