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이 뭐라고
“오빠는 나한테 명품백 하나 안 사줬잖아.
나 사랑하는 거 맞아? 그럼 증명해 봐. “
사치를 싫어하는 나에게 명품백이란 거리를 두는 대상이었다.
가방 하나에 300 만원이라니.
심지어 3000 만원. 그 이상되는 명품백도 많았다.
직장인 월급이 300 혹은 그 이하인 경우도 많은데, 한 달 내내 아침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일해서 번 돈으로 물건 넣고 다니는, 저 작은 가방 하나 사는 건가.
물가 올라서 구내식당에서 밥 먹으며 밖에서 밥 먹는 돈 만원이, 후배에게 밥 사주는 돈 2만 원이 부담스럽다고 아끼면서, 저녁에 술값으로 10-20 만원 이상 쓰는 친구 모습과 겹쳐 보였다.
이래서 남자는 술로, 여자는 명품백으로 돈이 날아간다고 했나.
그런데, 여자친구 등과 이야기 해보면 여자들은 남자에 비해 돈이 들어갈 곳이 많긴 많은 것 같다. 머리 해야지, 화장품 사야지, 때 되면 옷 사 입어야지, 반지와 목걸이부터 액세서리 그리고 구두까지. 또, 친구, 동료들과 맛집 가야지, 커피와 디저트 먹어야지.
그걸 저렴하게 해도 꽤나 돈을 쓰게 되는데, 전부 좋은 것으로, 비싼 것으로 하게 되면 그때부턴 돈의 단위가 달라진다. 카드값과 빚까지 진 것도 이해가 되버린다.
그리고 유행에 민감한 면도 있고, 주위 친구들이나 동료들이 다 명품백을 한 두 개씩은 갖고 있는데,
(하나만 있으면 단벌 신사 같아 두 개는 있어야 하고, 옷과 구두 등에 맞춰 들고 가려면 여러 개 있어야 한다는)
우리나라처럼 모여 살며 따라서 같이 하는 것 좋아해서 줄까지 서는 곳에서, 12개월, 24개월 할부로라도 안 사기 어려웠을 수 있다.
더욱이, 명품은 사면 오래 쓴다. 싼 것 사서 얼마 못 가 해지고 못 쓰는 것보다 낫지 않나라는 그럴싸한 명분까지 있다.
그냥 싼 것 사서 바꿔가며 써도 될 것 같은데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말 통하지 않는 대화 차단의 상대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조차도 해외 출장 갔을 때 간 어느 화려한 명품 매장에서, 이래서 명품에 환장하는구나를 느꼈다. 너무 멋있고 예뻐서 충동 구매 의욕이 일어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식판에 밥 타 먹으면서 눈칫밥 먹으며 아낀 만원.
그 한 줄이 내 정신줄을 잡아줘서 가까스로 명품 옷값 300만 원을 지르지 않을 수 있었다.
돈 많이 벌면 타고 다닌다는 차 제네시스와 외제차, 손목에 차고 다닌다는 까르띠에 시계. 이런 것에 혹해 있을 때 마침 주식으로 돈을 조금 벌었을 때가 있었다.
그때 런던의 백화점에서 너무나 멋진 디자인의 시계를 만나 저질러야겠다고 들어갔다가 환율을 잘못 계산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200 만원으로 착각했는데, 실제 2천만 원이었다.
어렸을 적 돈이 없을 때는 백화점에 들어갈 일조차 없었다.
지나가는 데 화장실이 급해서 잠깐 들어가거나, 가까운 길이 그쪽이어서 혹은 추워서 어쩔 수 없이 가는 정도였다.
지금이야 오랫동안 일을 하고, 해외에서 근무하며 수당도 받아 돈도 모으고, 집도 사서 그나마 여유가 있어 이래저래 둘러 보기도 한다.
하지만, 어렸을 때 통장에 5만 원 있었을 땐,
백화점, 호텔 심지어 은행까지 들어가기 꺼려지는 곳이었다.
그래서, 백화점 앞에서 오픈 전에 신상이나 limited edition (한정판)을 사려고 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이었다. (오픈런)
심지어 어떤 명품은 (시계 포함) 사두면 나중에 가치가 올라가서 부수입이 되기도 한다는 솔깃한 말에도, 그냥 다른 것 해서 벌게요라고 답할 정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그땐 카페도 갈 곳이 아니었으니까.
지금이야 회사 등에서 이벤트로 커피 쿠폰을 보내주면 그것도 활용하며 가지만, 어렸을 땐 밥값에 버금가는 카페는 혼자서나 친구와는 가지 않고,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면서나 가는 곳이었다.
그나마 해외 출장도 다니면서, 공항 면세점을 둘러보며 명품관도 가보고, 해외에서 근무할 때 길거리가 위험하기도 하고, 관광 목적으로 그 나라 백화점을 둘러보면서 조금씩 명품도 아는 편이다.
신기한 건 그렇게 수많은 나라 공항 면세점과 백화점을 다녔는데 명품 브랜드는 거의 비슷하게 입점해 있다.
명품 가격이 치솟아도 잘 팔리고, 명품 업체의 매출과 이익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 거기다 전 세계에 깔린 명품관을 보며, 왜 어느 명품 브랜드 오너가 세계 최고 수준의 부자인지 이해가 간다.
명품을 멀리하는 나이기에, 나를 위해 명품을 사본 적이 거의 없다. 해외 출장 가서 아울렛에 갈 기회가 있을 때, 정말 좋은 디자인에, 정말 저렴한 가격일 때만 산 적이 있다.
남자들도 요즘 자신을 꾸미며, 명품 옷, 구두, 운동화 등을 사고, 하다 못해 벨트라도 사서 자신이 명품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그렇다고 한심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기가 돈 벌어서, 자기 하고 싶은 것 한다는데 뭘 뭐라고 하겠는가.
원래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고 보여주고 싶기 때문에 이해가 된다.
그것이 사치재의 기본 판매 point 이기도 하니까.
다만, 남의 등 처먹고 사기 친 돈이나, 자신이 버는 것보다 너무 심하게 비싼 물품을 사는 건 좋지 않다 정도 생각할 뿐이다.
원래 남에게 오지랖 떠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명품 구매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사람 자체가 명품이 되어야 한다.”
는 말도 하지 않는다. 보통 소 귀에 경 읽기다.
마치 도박에 미쳐서 돈 다 잃고 돈 빌려달라고 온 사람에게, 결국 도박해서 돈 따지 못한다고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이미 눈이 뒤집혀 있는데 그런 말이 제대로 들리겠나. 돈 없다고 짧게 잘라 말하는 게 더 낫다.
다른 글에서도 한번 다뤘던, 나는 솔로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한 남자 출연자가 자신이 호구 취급을 당한 적이 있어, 상처를 받았다는 말을 할 때, 어김없이 명품백 이야기가 나왔다.
여친에게 명품백을 선물했는데, 헤어지면서,
“샤넬 백도 하나 더 받았어야 했는데.”
라고 말했다 한다.
여성 분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해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안타까워 보였다.
가짜 수산업자 사건이라고 한때 떠들썩했던 사건 등에서 연예인에게 고가의 명품백을 비롯한 선물을 하고, 헤어질 때 그걸 돌려달라고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정말 좋아서 혹은 환심을 사려고 그리 선물을 했을 거고, 어쩌면 미래를 기약하려고 한 선물이었을 텐데 헤어지면 아깝긴 하나 보다 싶었다.
수천만 원 크게는 수억 원에 달한다고 하니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그럼 애초에 그런 선물을 하지 말지라는 생각도 한편으로 들었다.
하지만,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나도 예외일 수 없었다.
“누가 나한테 그런 명품백을 사줘요?”
예전에 여친과 백화점에 밥 먹으러 갔다가 백화점 산책을 하며 대화를 하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목소리가 제법 앙칼졌다.
누가 봐도 예쁘게 전시된 (display) 명품백을 보며, 한 말인데, 나에겐,
“우와, 오빠 이거 너무 예쁘다.”
즉, 이거 사줘라고 해석된다는 이 말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말이었다.
수더분하고 사치하지 않는 친구조차 이런 말을 하다니, 여친에 대한 실망보단 그냥 세상이 이렇구나 싶었다.
(물론, 명품에 관심이 없고, 고가의 명품백 선물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급한 일반화는 아니니 감안해서 봐주세요.)
그날 그 명품백을 사주지 못했는데,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여친의 실망감을 느낄 수 있었고, 나에게는 미안함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해외 출장을 가서, 미국 텍사스에서 이런 허허벌판 중에 이렇게 큰 아울렛이 있나 싶을 정도의 장소를 방문했다. 한국의 아울렛에서도 백화점보다 더 싸게 파는데, 그곳은 한국 아울렛보다도 더 싸게 팔았다.
한국 백화점 판매 가격의 1/3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백화점 입점 땅값과 운영비, 업체 마진, 수입 비용 등등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한국 백화점 가격과 차이가 있겠지만, 차이가 너무 났다.
비슷한 명품백이 있었다. 때마침 그 친구 생일도 다가와서 큰 맘 먹고 샀다.
복귀해서 선물했더니 그 친구가 반색했다.
너무 좋아해서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그 뒤로 신주단지 마냥, 소중하게 거의 ’내 새끼‘ 하며 챙기는 것 같아 재미있기도 했다.
사랑의 징표라느니, 사랑의 증명이라느니 하는 말들이 왜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 정도 생각하고, 그래서 돈으로도 이 정도 쓸 수 있다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건가 보다 싶었다.
출장 다녀오며 현지 특산품을 사 오면 시큰둥하며 뭐 이런 걸 사 오냐며 했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런 여친이 속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떤 소개팅 TV 프로그램에선가, 사업을 하던 친구가, 사업이 잘 되어 돈이 많아 잘 쓸 때는 여친도 잘 생기고 오래가는데, 사업이 잘 안 되어서 어려워 돈이 없을 때는 여친 만나기도 부담스럽기도 하고, 만남이 잘 되지도 않는다는 말을 한 걸 들었다.
여성이 남자를 보는 기준이, 성격과 외모보다 경제력이 더 높은 순위에 있을 때가 많다.
연애와 결혼도 현실이고, 의식주를 함께하는 것이 기본이다.
대출 없이 넓고 좋은 집에 살며, 건강에도 좋은 맛있는 음식 먹으며 깨끗하고 깔끔한 옷 입으며 사는 걸 누가 마다할 것인가. 어쩌면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것도 이런 삶의 수준을 높이고 싶어서인지 모른다.
좋은 차 타고 다니며, 맛있는 것 먹으며 호캉스도 하고, 때 되면 쇼핑도 하는 걸 싫어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그래서, 결혼하면 눈치 보고 살고 때로 험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걸 기사 등에서 보고 알면서도, 돈 많은 재벌가에 시집가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라고 하는 것 같다.
지고지순한 사랑. 서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단칸방에서 살아도 괜찮다라는 순애보.
과연 지금의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런 순애보로 원룸에서 평생 같이 살고, 차 없이 대중교통을 타고 걸어 다녀야 한다면 어느 여자가 선뜻 그러겠다고 할까.
사치까지는 모르겠지만, 화장실은 두 개 있는 집에서 살아야 안 싸우고 살겠다는 생각은 해본다. 그게 사치인가?
우리는 의식주라는 삶의 기본과 사치라는 허영을, 일상이 된 마케팅을 통해 기업의 이익으로 연결해서, 어찌 보면 웃기는 세상이 되어 버린 곳을 힘들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