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 Jun 04. 2023

모 그룹 팀장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473


요즘 연애수필 작가의 본분을 잠시 잊고,

‘타인은 지옥’이라는 모티브로 그동안 보고 들은 내용으로 힘든 회사 생활 관련 글을 썼다.


그 와중에, 공교롭게도 이런 안 좋은 소식을 또 접했다. 몽둥이 아저씨 이야기를 마쳤더니 이 분야에 소재의 끝이 없다니. 안타깝다.


이 분을 본 적도 없지만,

얼마나 힘드셨을지, 주위 분들이 왜 그렇게 허망해 하고, 화가 나셨을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어릴 적 이런 생각을 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서,

고시에 합격하던,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좋은 사람들과 열심히 일하고, 인정 받아 보상도 받고, 임원이나 고위직의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


그리고, 성실히 일해서 허투루 돈 쓰지 않고 많이 모으고, 사회생활하면서 좋은 관계도 잘 만들고 나중엔 내 사업도 해봐야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무엇이든 해봐야겠다.


라고.


하지만, 모두들 다 아시는 것처럼, 세상은 그렇게 녹록치가 않다. 지극히 정상적인 루트의 길을 가는 것 조차도 쉽지 않을 때도 있다.


N포 세대라고, 연애, 결혼, 출산, 집, 인간관계까지 3포에서, 5포, 7포로 점점 늘어나는 세태를 길게 말하진 않겠다.


어쩌면 운 좋게,

좋은 대학 가고, 남들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입사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대출은 있지만 집도 사서 애도 낳고 팀장까지 된 사람도 이렇게 될 수 있다.


그보다 훨씬 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그만큼 이루지도 못한 사람도 많은데,

그 정도면 괜찮은 인생인데, 소중한 사람들을 남겨두고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나.

그럼 그보다 못한 사람들은 어쩌라고.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힘들 땐, 자신이 직접적으로 겪는 그 힘들고 지치고 아픈 것이 가장 크게 온다는 것을 먼저 염두해두자.


남이 손가락을 잘리는 걸 보는 것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프다

는 말이 있다.

오랜 세월 쌓여오고 회자되어 온 말은 이유가 있다.


동사무소 방위도 자신이 제일 힘들다고 한다

라는 우스갯소리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렇다면, 이 분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선망할 수 있는 조건에서,

다른 사람에 비해서 적은 고통에,

나약하게, 안타까운 선택을 했을까?


아니다.


직장의 동료는 내가 선택할 수 없다.

친목에 따라,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어서,

아닐 말로 손절할 수 있고, 잠수 탈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조직 내에서 정해진 사람들이 모여서 맞춰가며 일을 해야 한다.


일이 많아도, 편하게 보고하고 보완해주는 상사가 있고, 함께 나눠서 일을 해나가는 동료들이 있으며, 서로 배려하고 격려하며,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 머무는 일터에 있으면, 어쩌면 살 맛 난다.


함께하는 것이 인간이고, 그 안에서 인정 욕구가 있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회생활과 일자리가 중요한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게 오랜 시간 머물려야 하는 곳에서의 시간이 지옥같다면 어떨까? 안타깝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 정도까지가 아니더라도 공황장애, 고혈압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아마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하는 것들 중 하나가 강하게 혹은 복합적으로, 그리고 자신만의 사정까지 겹쳐서 그런 일이 있었을 것 같다.




신임 팀장이 되면, 관리를 받던 사람에서, 관리를 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들을 데리고 일 시킨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밑의 사람들이 실수를 하면, 챙겨서 바로 잡아야 하고, 사규를 어기는 등의 문제가 있으면 관리 소홀이라는 명목으로 같이 징계를 받기도 한다.


즉,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진다.

전에 내 몸만 챙기고, 내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팀원들의 잘못된 행동이 있으면 통제해야 하고, 팀원들을 이끌고 팀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도 진다.


그래서 꼼수로 서브 팀장같은 회사 직제에도 없는 것을 만들어 자신의 책임을 밑으로 떠 넘기려 한다. 하지만, 서브 팀장을 하는 사람들이 시키는대로 다 받아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보가 아니다.


직장 생활 오래 해보고, 같은 회사에서 오래 다니면서, 앞으로도 오래 다녀야 하는 사람들은 다 면피할 방도를 마련해둔다. 그래서 팀원이 너무 많아서 한 명의 팀장이 관리할 수 없다 싶으면, 회사에서 아예 서브 팀장같은 자리를 공식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더군다나, 요즘은 직장 내 괴롭힘을 막는다고, 팀장도 소속 팀원들에게 리더쉽 평가를 받는다. 예전처럼 평가 권한을 갖고 큰 소리 치기 힘든 구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팀장 해먹기는 힘들어졌다.


거기서 담당 임원을 잘못 만나면,

팀원일 때 팀장에게 괴롭힘 당하는 것보다, 더 힘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팀원은 그냥 팀원으로써 불편하게 지내면 되는데 (그것도 무척 힘든 일이지만)

팀장은 임원에게 찍히면 팀원으로 내려 와야 한다.


한 번 다룬 적 있는 비행기 비즈니스 석에서 이코노미 석으로 내려오는 것처럼,

팀장 수당이 사라지고, 법카 쓸 수 있는 허용 범위가 줄어드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자신이 밑에 데리고 지시하고, 평가하던 사람들과 같이 동등한 입장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때 척을 졌던 사람들은 보란듯이 앙갚음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밑에 데리고 있던 사람이 자신의 상사가 된다면?

더군다나, 그 신임 팀장이 자신과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겉으론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현재에 맞게 살면 된다고 말은 하겠지만,

많이 힘들거다. 그래서 타 부서로 이동을 하거나 이직 등으로 관두는 경우가 많다.


나이 든 팀장이 내려와도 문제지만, 사실 더 문제는 젊은 팀장이다.


나이 든 팀장의 경우 내려와도 앞으로 정년까지의 기간이 비교적 짧다.

보통 임피 (임금 피크제) 전후로, 50대 임금 피크 전이 많다.


임금 피크 이후에 그냥 별 생각없이, 열심히 (혹은 하는 척) 하면서 몇년 버티면 정년이다.

그런 분들의 경우 내려와도 퇴직 위로금을 받을 수 있으면 미련없이 나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젊은 팀장은 아니다.


30대 후반, 40대 초반에 팀장이 되는 등 요즘은 대기업에서도 팀장의 나이가 젊어지는 추세인데,

1-2년 하다가 미끄러지면 앞으로 10년 이상, 20년을 그렇게 버텨야 한다.


그냥 팀원으로도 그 긴 기간을 버터니는 것이 쉽지 않은데, 팀장이 되었다 내려와서 장기간 버티는 것은 정말 힘들다. 거의 버티다 못 버티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버티는 소수.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젊은 팀장의 의욕과 공명심을 이용하기도 한다. 되기 힘든 일을 맡은 팀장이 되기를 모두 싫어할 때,

젊은 팀장에게 마치 좋은 기회인양 밀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적극적으로 이용해 먹고, 안되면 책임을 뒤집어 씌어 팀장직에서 내려오게 하면서 모양새를 만들려는 나쁜 의도가 숨어있는 경우가 있다. 바보되기 딱 알맞은, 꼭 피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사회적인 지위가 올라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내려오면 역효과가 나기 때문에,

흔히들,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되는 것을 '달리는 자전거에 탄 것'에 비유한다.


잘 달려야 하고, 쉴 때 잘 쉬어서 잘 가야 하는데,

계속 페달을 밟는 것이 팀원일 때도 힘들지만, 본인 일만 하는 것이 아닌, 밑의 일도 봐줘야 하고,

위에서 내려 오는 일을 처리하며 비위까지 맞춰야 하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담당 임원이 양아치여서, 권모술수에 능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면피만을 생각하고, 나 몰라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되려 큰 소리로 다들 보는 앞에서 깨 버리면 멘탈 바사삭이 자신의 일이 된다.


“더러워서 못 해먹겠네.”

이렇게 당해보면 이런 말이 왜 튀어 나오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책임자로서 사내외 다른 팀이나 조직과 협업을 하고, 소통하며 막힌 곳을 풀어주는 일 또한 팀장의 몫이다. 부서 이기주의와 장벽이 높은 조직에선 당연히 더 힘들다.


그러면 낮에도 쉴 틈 없이 일하고, 저녁엔 소통을 한답시고 회식을 하며 늦게까지 술을 마셔야 한다. 때로 주말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골프도 치러 가야 한다. 술과 골프를 좋아해도 힘든데, 둘다 싫어한다면 고역이다.


그렇게 달리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외벌이에, 전세 대출이든 주택 담보 대출이든, 어마어마한 빚까지 발목을 잡고 있다면 어떨까?


공황장애가 오거나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는 것이 무리가 아닐 수있다.


어려운 업황에서, 회사 재무를 책임지는 자리에서, 보고자료가 revision 100을 넘기고, (100번 보고하고 까여서 수정했다는 뜻)


진정 완벽을 추구하는 것인지, 맘에 안들어서 돌려보내면서 길들이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결국 이전의 version으로 돌아가기도 했을거다. 그러다 내일 아침에 보자고 하며 새벽 3시에 사무실에 남아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말은 이겨내야 한다. 성장하는 과정이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쓴소리하는거다. 라고 달래기도 하겠지만,


‘나 싫어하나?‘


‘시켜준 지도 얼마 안 되는데, 써보니 맘에 안 드니, 힘들게 해서 지쳐서 나가 떨어지게 하려는건가?’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경쟁이고, 성장이고,

시기고 질투고 견제고 다 좋은데,

살만한 세상, 아니, 살 수만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전통적으로 ‘인화’를 강조하고,

젊은 리더쉽의 그룹에서 이런 일이 있어서 더 안타깝다. 하지만, 젊은 여성 임원의 갑질 사건을 보며 그래도 타 그룹보다 배려하는 곳이라고 여겼던 이곳도 전쟁터구나 라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아마 이번 일과 위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닌 분들도 이미 많을거라 생각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런 상황이 올 가능성은 낮다?

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왜 다른 나라에 비해 극단적인 선택 등으로 죽는 사람이 많고,

헬조선이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생각해보고, 구체적으로 알아보기까지 하는지.

이제는 많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극단적인 선택으로 공석이 된 그 자리의 다음 팀장이 될 후보군의 친구는 저 자리에 가서 나도 당하면 어떻게 될지 몰라 겁을 내고 있을지, 내심 저 사람이 갔으니 좋아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경우라도 너무 냉혹하고 아름답지 못한 세상인 것 같다.


열심히 하고, 달리고 싶은 사람은 맘껏 달리게,

잠시 쉬고 싶고, 적게 먹어도 좋으니 천천히 걸으며 살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왔으면 한다.


이 일도 안타깝지만, 덮기에 급급하고 곧 잊혀지길 바라는 사건이 아니라,

그런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한 한 계기가 되어 회사와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변화하는 momentum이 되었으면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난 척 하지 않고 남에게 배우려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